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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Oct 24. 2022

우리 집의 모든 물건을 사는 중이다

불과 3개월 전, 저 멀리 캐나다에서 우리는 '우리 집의 모든 물건'을 다 팔아 치우고 떠나왔다. 어떤 물건은 산지 2년도 안된 것도 있었고 또 어떤 물건은 자동차처럼 몇 년 쓴 것도 있었다. 물론 팔지 못하고 한국으로 가져온 것들도 있긴 하다.


지난달 4인 가족이 캐리어 3개만 끌고 한국으로 살러 왔고, 친정에서 한 달간 버틴 후, 새로 이사한 33평 아파트를 매우 빠른 속도로 채우고 있는 중이다.


https://brunch.co.kr/@jennifer008/235


한 달 만에 남편과 나는 당근에 중독되었고 우리 집의 물건들은 적절하게 중고와 공짜와 새것으로 섞여서 채워지고 있다. 이사 온 첫날 당근으로 쿠쿠밥솥 6인용 (8만 원), 유선 청소기 (5만 원), 토스터 (5천 원) 등을 샀다. 다음날은 둘째 아이 유치원 데려다주는 길에 아파트 단지 안에 분리 수거함 옆에 나와있는 소파를 주워 오기도 했다. 쿠션감은 매우 떨어지나 2년 쓰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침대는 나르는 게 일이라 아이키아에서 인터넷 주문을 했다. 식탁도 결국 원하는걸 당근에서 찾지 못해 새것으로 샀다. 70인치 티브이는 65만 원에 당근에서 구입했고, 소파 앞 커피 테이블은 3만 원에 장만했다. 세탁기와 건조기는 중고가전 가게에 가서 세트에 85만 원에 샀고, 냉장고도 같은 중고 가게에서 60만 원에 장만했다.


당근 하느라 세종시 여기저기 남의 아파트를 열심히도 다니고 있다. '아 이파트 주차장은 이렇게 생겼구나..' '우리 집이랑은 또 다르네..'라며 신기해하면서 말이다. 우리 둘째는 아파트라는 말이 생소해 자꾸 우리가 호텔에 산다고 말을 한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으니 호텔 같기도 했다. 이젠 완전한 가정집의 룩을 완성했지만 말이다.


작년에 잘 쓰다 망가져 못쓰게 된 마이크로소프트 surface 노트북도 여기 와서 고쳤다. 역시나 버리지 않고 들고 오길 잘했다. 왠지 한국엔 능력자들이 많아서 고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루 만에 고쳐주셨다. 그렇게 해서 노트북도 하나 더 생겼다.


예상은 했지만, 우린 마치 신혼살림을 차리듯 모든 것을 새로 장만해야 헸다. 그릇, 수저, 물통, 커피잔, 수건, 화장실 슬리퍼, 이불, 침대, 매트리스, 전자레인지 등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사면서도 2년 후엔 다 팔아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며 마냥 좋지많은 않았다. 막상 필요하니 사긴 사지만 또 다 팔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그래서 더욱더 중고를 먼저 찾게 되는 것 같다. 이미 한번 새 제품을 쓰다가 팔아본 경험이 있으니 중고 가격 시장을 알면 새것을 쓰기 어렵게 되는 것 같다.


가장 고심했던 아이템은 집 다음으로 차였다. 차도 남편이 떠나오기 전부터 엄청 중고시장을 보다가 왔다. 우린 엔카라는 회사에서 홈 딜리버리 서비스로, 집으로 배달받는 상품으로 골랐다. 열흘 타보고 마음에 안 들면 반납하기도 편한 시스템이라 맘에 들었다. 운에 맡기고 고른 차는 매우 맘에 든다. 뭐 아직 한 달도 안 탔지만 5만 km 탄 차니 새 차나 다름없다 생각한다.


집, 차, 가전, 가구를 얼추 해결하고 나니 이제야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한 달을 넘게 매트리스가 아닌 바닥에서 자다 보니 허리가 매우 아팠는데 아이키아 매트리스가 불편하면 어쩌나 걱정한 게 무색하게 그동안의 아픔을 한 번에 날려줘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아직 방에 블라인드는 없지만, 거실에만 셀프로 블라인드를 달았다. 블라인드가 없으니 어두워지면 잠들고 해가 뜨면 눈이 떠지고 있다. 남편은 앞으로도 없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럴 순 없으니 조만간 당근에서 적당한 게 나오면 살 생각이다.


우리가 하도 당근 당근 하니 둘째가 당근은 캐럿 아니냐고 한다. 그... 그렇지. 그러게나. 중고가게 이름을 왜 당근으로 했을까? 토끼 이모티콘이 많던데. 토끼들이 당근을 혹시 잘 나눠 먹나?


어제는 첫째 옷을 한 다발 샀는데 만원이었다. 이렇게 많은 옷이 10불 정도밖에 안되냐며 엄청 놀라워했다. 아이들이 새것만 좋아하는 게 아니고 중고지만 좋은 가격으로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것에 반감이 없어서 좋다. 새로 산 옷으로 한바탕 패션쇼를 한 후 하루를 마무리했다.


앞으로도 우리 집엔 당근이 많이 들어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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