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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Jun 17. 2023

지난 두 달간 '임꺽정'에 파묻혀 지냈다

남편의 추천으로 '임꺽정' 시리즈 (1권~10권)를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종종 나오는 한문이 어려웠고, 생소한 단어도 많았는데 읽다 보니 스토리에 빠져들어 버렸다. 

이름만 들어 알고 있던 임꺽정. 그냥 힘이 센 천하장사에 도적 대장쯤으로 알고 있었다. 사실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 시대의 양반, 평민 그리고 백정등 다양한 사회계층을 자세히 설명하는데 작가가 엄청난 공을 들였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정치상황, 왠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만 같은 상황 또한 매우 자세히 설명했다.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심했고, 백성들은 가난했으며 도적떼가 많던 시절이 시대 배경이다.  


권력은 돌고 돌아, 지금 권세가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거기에 따라붙는 세력이 생기고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만 곁에 두어 가난한 백성이나 바른말하는 정치인들이 어떻게 죽어나가는지 보여준다. 


그런 와중에 힘이 세고 잘생긴 임꺽정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는데, 신분이 천하여 나랏일에 쓰일 수가 없다. 전쟁 중 군대에도 뽑히질 못해, 혼자 전쟁터에 나가 위기에 빠진 우리 편을 홀로 도와주고도 상을 받을 수 없는 처지이다. 그런 신분 때문에 결국 도적이 되었는데..


중간중간 10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고? 하는 부분이 여럿 있었다. 예를 들어 임꺽정이 힘이 세고 호남형으로 잘 생긴 탓에 여자들이 주변에 많이 생기게 되는데, 결국 아내와 떨어져 지내는 틈을 타 첩이 세명이나 생기게 된다. 한 명도 아니고 세명 이라니.. 본처가 화가 나는 게 당연히 이해된다. 그리고 임꺽정의 본처는 백두산에서 나고 자라 조선시대 여인의 법도나 여자는 이레 이래야 한다 같은 건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니 당당히 따졌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고. 자신이 나가서 남정네와 바람이 났다면 임꺽정 당신은 '아.. 그런 일이 있었군..' 이러고 그냥 넘어가겠냐고 했다. 그랬더니 임꺽정 하는 말이, 남자와 여자가 같으냐 라면서 따졌다. 이 아내는 다를게 무어냐고 너도 나도 다 같은 사람인데 왜 너는 되고 나는 안되느냐 하고 대들다가 결국 남편에게 맞는다. 시대상황을 생각하고 읽는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리고 그 시대에 이런 글을 읽는다면 아내의 대사가 매우 도전적으로 들리고 누구는 속 시원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2023년에 살고 있는 나로선 주인공과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요소로 작용하기만 했다. 


그래도 1권부터 10권까지 다 읽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물 좋고 산 좋은 곳에 간다면 구경 다니고 맛있는 것 해 먹고 하는 것이 인생의 낙이라고 여기는 것은 마찬가지였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모든 남자가 기생과 함께 술 마시고 하룻밤 보내고 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시대였어도 아내에게만 순정을 바치는 멋있는 캐릭터도 작가는 잊지 않고 넣어주었다. (친구들한텐 엄청 놀림받는 캐릭터이지만 말이다.) 바로 임꺽정 아내의 남동생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니 옆에서 같이 책을 읽던 남편이 한마디 한다. 임꺽정 처남은 그 시대 엄청난 미인과, 그야 말고 김희선 같은 여자와 결혼해서 그런 거 아닐까?라고.. 그러면서 왠지 임꺽정은 작가가 남자들의 판타지를 생각하며 쓴 거 같다고도 했다. 남자주인공이 힘이 엄청 세고 남자답게 생겨 여자들한테 인기도 많고, 정부에 반감을 가지고 도적질을 하면서 사는 이야기가 왠지 그 시대 남자들이 재밌어할 만한 캐릭터 같다고 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했다. 


자신의 처지가 괴롭다고 하여, 본인보다 더 힘없는 백성들을 약탈해서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임꺽정 패거리 무리들이 호의호식하는 게 왜 요즘은 임꺽정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없는지 잘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간간히 정부 관료들을 골탕 먹이는 계획을 세우고 성공하기도 하지만 그다음이 없었다. 정부의 곳간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나 내가 주인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와는 별개로 이야기는 참 재밌었다. 그러니 두 달간 임꺽정에 빠져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엄마와 순천, 여수, 보성 여행을 갈 때도 들고 갔고, 얼마 전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도 들고 갔다. 병원에 예약을 했을 때도 들고 갔다. 어딜 가든지 조금의 시간이 생길 것 같다면 집에 두고 가지 않고 꼭 챙겨 다녔다. 심지어 아이들과 놀이터에 갔을 때도 '너넨 놀아라. 나는 이거마저 봐야 한다'라고 했다. 홍명희 작가는 임꺽정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중요인물들과 사건들도 참 재밌게 풀어놨고 지금으로 치자면 아침 막장 드라마 요소일 것 같은 마라맛 스토리나 캐릭터들도 많이 등장시켰다. 어디까지가 실존 인물이고 어디까지가 가상 인물인지 검색해 보진 않았지만 말이다. 


긴 이야기를 끝내고, 모든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고 나서 이 글을 쓰려니 중간중간 감탄하며 읽었던 대목이 생각나지 않아 아쉽다. 나도 밑줄 긋고 필사도 좀 하고 포스트 잇도 좀 붙이고 그러는 날이 왠지 조만간 올 것 같은 느낌이다. 



김득신作 반상도, 지본수묵담채, 27x33  북한평양조선미술관 소장출처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http://www.joongboo.com) 

위에 그림은 길 가다 양반행차를 만난 백성부부가 넙죽거리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이러한 신분제에 저항하는 캐릭터가 임꺽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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