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두기 전 큰아이를 미술학원에 한참 보냈었다. 그림만 그리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만들기와 창작미술을 재밌는 방식으로 접하게 해주는 곳이었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 한번, 학원에 아이를 데려다줄 때마다, "엄마도 가고 싶다~ 너는 이렇게 재밌는 미술학원에 다녀서 좋겠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다 토론토에서 칠리왁으로 멀리 이사를 하면서 미술학원은 더 이상 다니지 않게 되었다. 다만 딸아이 대신 내가 하고 싶어 하던 미술학원을 팬데믹에 걸맞게 인터넷 수강을 하면서 몇 달 수채화 초기반 수업을 들었다. 그것도 꾸준히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다 작년에 한국으로 이사 오면서 이곳으로 오면 막연히 나도 미술학원에 다닐 수 있을 거라 상상하며 왔다. 이번 기회에 한국에 살면서 배우고 싶었던 거 실컷 배워야지라고 결심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미술보다 운동을 더 먼저 챙기게 되었다. 월, 수, 금 수영과 화, 목 요가를 하다 보니 벌써 한 달에 들어가는 학원비가 2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여기에 미술학원까지 추가하려니 학원비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수영은 처음 제대로 배워본다. 초보반으로 시작해 지금은 중급반에 다니는데 수영이 익숙해지려면 캐나다에 다시 돌아갈 때까지 쭉 다녀야 할 것 같다. 요가는 남편이 먼저 시작했는데 같이 한번 가보고 이렇게 훌륭한 요가선생님은 캐나다에 간다면 만나기 힘들 것 같아 요가도 꾸준히 다니고 있다. 이렇게 수영도 요가도 쭉 할 생각이다 보니 미술학원을 추가하는 건 고민이 더 필요했다.
그러던 중, 우리 동네에 민화 그리기 학원이 있다는 걸 당근 광고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거다! 싶었다. 흔한 수채화 말고, 한국적인 민화를 배워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배워서 캐나다 돌아갔을 때 민화 그리기 달인이 되어 내 작품을 인터넷으로 팔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취미생활을 돈 벌기와 연관 짓지 않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무얼 도전하든 내가 이걸로 수익창출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너무 자연스럽게 든다. 생활비 걱정 없을 수준의 재산이 있다면 그런 생각을 자동으로 하지 않게 될 건가? 창작활동을 통해서 돈을 벌어보고 싶은 나의 소망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으므로 (아, 킨들에 출간한 인스턴팟 요리책으로 소정의 인세가 까먹을때쯤 천원 이내로 들어오고 있긴하다) 생활비 걱정이 없더라도 어떻게 하면 내 작품을 돈과 바꿀 수 있게 될 건지 계속 상상하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운동을 시작할 땐 내가 수영강사가나 요가강사가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는데, 그림 그리기는 왠지 내가 잘하게 되면 돈 주고 사가거나 주문해 주는 사람들도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들었다.
민화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 가고, 두 시간 수업을 듣는다. 그렇게 한 달에 4번가는 수업료는 12만 원이다. 한 달 동안 알바 열심히 해서 번돈의 거의 절반이 요가, 수영, 민화수업 학원비로 들어간다. 민화 그리기 수업을 두 달 넘게 고민하다 당근 채팅을 통해 수업을 듣고 싶다고 연락드렸다.
첫날부터 친절한 민화 선생님은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나를 인도해 주셨다. 선 그리기로 손을 푼 다음, 한지 밑에 밑그림을 놓고 먹물로 선을 그려 나갔다. 나는 첫 작품으로 연꽃을 택했다. 명상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선물로 주려고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