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지 3년이 지났다. 뚜렷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우선 저질러 보고 생각해 보려 했다. 그러나 여전히 조금은 안갯속을 헤매는 것 같다. 최근 정유정 작가의 소설 <내 심장을 쏴라>를 읽었다. 결국 결론은 '너는 왜 사니?'였다. 주인공은 그 물음에 답을 할 수 없었다. 소설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듯 살던 주인공이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왜 사는 걸까'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퇴사 후 3년간 하고 싶은 것은 최대한 많이 하고, 해야 하는 일(돈 버는 일)은 최소한으로 하며 살았다. 캐나다 안에서 살아보고 싶은 곳으로 이사가 2년 가까이 살아봤다. 한국으로 오기 전엔 캐나다 캠핑장 1년 회원권을 끊어 원 없이 캠핑도 다녀봤다. 한국으로 이사 온 지난 1년 반 동안은 '아이들 영어 가르치기' 알바를 하는 중간 중간 온갖 도시를 여행 다녔다. 그리고 한국에서 배우고 싶었던 글쓰기, 민화 그리기, 수영, 요가 등을 배우며 지냈다.
한국살이를 정리하고 캐나다로 돌아갈 날짜가 다가오니 잠재워놨던 나의 쓸모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된다. 회사를 다니며 월급을 받을 땐 나의 쓸모란 회사일 잘하고 돈 잘 버는 일이라 여겼다. 아니 사실 그런 고민 자체를 잘하지 않으면서 살았다. 아침이면 온 가족 도시락 4개를 싸고, 어린아이 둘을 유치원과 데이케어에 내려주고, 회사로 튀어가 일을 하다 다시 아이들을 차에 태워 집으로 왔다. 그럼 다시 저녁을 차려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책 읽어주고 재우면 하루가 끝나 있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과 함께 하는 육아지만 그래도 힘들었다. '나의 쓸모'를 고민하는 시간은 사치였다.
그렇다고 퇴사 후 시간이 많아졌으니 이젠 고민이 해결되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왜냐면 3년간 '나의 쓸모'에 대해 또다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민하는 시간이 사치여서가 아니었다. 그 시간에 그냥 하고 싶었던 것들에 도전하며 언제 또다시 주어질지 모르는 이 시간들을 충분히 즐기고 싶었다.
3년간 다양한 경험을 하고 보니 점점 나의 취향이 더 확고해졌다는 장점은 있다.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가족들에게 요리해 주기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글 쓰기와 책 읽기를 좋아한다. 이 것들 중 돈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처음 퇴사하고 느꼈던 일종에 월급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죄책감'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는 듯하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나가서 돈을 벌어야지 뭐 하는 거냐는 무의식의 소리가 퇴사한 지 3년이나 지났는데도 들려오는 듯하다. 그 안에 돈은 못 벌었지만, 뭐라도 열심히 해서 이뤄낸 게 있었더라면 괜찮았을까 모르겠다. 최근 쓴 브런치 글 몇 개가 연속으로 잘 되었다는 건 무언가를 이뤘다고 생각해도 될까 잠시 고민해 본다.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면 '나의 쓸모'를 잘 찾아가야 할 시간이 올 텐데. 어떤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될지 떨리는 마음으로 맞아보려 한다. (몇 달 전부터 다시 취직할 마음의 준비를 혼자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