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입자가 이사오기로 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캐나다로 돌아갈 날은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집이 일찍 빠져버렸다. 월세든 전세든 물량이 남아도는 요즘인데, 끝까지 집이 안나가 보증금 돌려받는 걸 걱정하는 것보단, 한 달 일찍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차라리 더 나았다. 그리고 한 달이 생긴 김에, 우린 제주도에서 남은 시간은 보내기로 했다. 제주도는 우리가 한국살이를 계획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곳이었다.
2년 전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들어올 땐, 8개의 박스를 미리 보냈었다. 그러나 이번에 캐나다로 다시 돌아갈 땐, 박스를 보내지 않기로 했다. 최대한 비행기에 싣고 갈 수 있을 만큼의 짐만 남겨 가져가기로 했다. 결심은 그럴듯했으나, 새로운 세입자가 이사오기로 한 날까지 우리의 짐은 참 더디게 줄어갔다.
이사하기 두 달 전부터 당근을 붙잡고 살았다. 아끼던 화분을 가장 먼저 팔고, 티브이, 아이들 침대,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 식탁이 차례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안방에서 쓰던 킹 사이즈 침대를 팔아야 했는데, 아무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애초에 2년 전 당근으로 침대를 알아볼 때 킹 사이즈가 없던 이유를 더 깊이 생각해 봤어야 했다. 한국은 킹 사이즈 침대 수요가 많지 않았다. 이케아에서 60만 원 주고 산 침대를 20개월 쓰고 결국 10만 원에 팔았다. 아이들 싱글침대는 28만에 사서 13만 원에 팔았는데, 차라리 싱글침대 4개를 사서 쓸걸 그랬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더딘 듯했지만, 점차 34평 아파트는 빈 공간이 늘어갔다. 거실에 있던 소파와 TV장과 TV가 나가니 집이 휑해 보였다. 마지막 3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이 지냈다. 세탁기는 진작에 팔려서, 동네 24시간 세탁방에 두 번 정도 다녀왔다. 냉장고도 이사 나가기 3일 전에 나가서 아이스박스에 넣어둔 식량과 외식을 적절히 배분해 살았다. 마지막까지 아껴두었던 선풍기도 이사 나가기 이틀 전에 팔려 한낮엔 더위와 잠시 씨름하기도 했다.
이렇게 지내기 시작하자, 4년 전 토론토에서 칠리왁으로 이사 갈 때가 떠올랐다. 처음엔 5,000km 가까이 되는 두 거리를 장거리 이사회사를 섭외해 한 트럭 짐을 날랐다. 두 달이 넘게 걸려서 짐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자동차도 3주 전에 보냈었다. 그때 한번 짐을 줄였고, 2년 전 칠리왁에서 한국으로 이사 올 땐 한 트럭 되는 짐을 8박스로 줄였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면서 8박스 되는 짐을 5개의 이민가방으로 대신해 보려 한다. 일인당 25kg 무게의 가방 두 개까진 무료로 보낼 수 있으니, 그 안에서 해결하는 게 이번 이사의 목표이다.
바닥에서 캠핑 에어매트를 깔고 자는 건 불편했지만, 따뜻한 물도 나오고 가스레인지도 있고 싱크대도 있는 이곳은 굉장히 럭셔리한 캠핑장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원했던 제주도에 산뜻한 짐만 가지고 오지 못하고, 뒷자리 아이들 다리 밑에, 가운데 자리에 아직 다 정리되지 못한 짐을 이고 지고 와 버렸지만,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에 꼭 원하는 만큼 짐을 줄여보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