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읽는 헤드헌터 Jul 08. 2020

나를 스쳐간 직장동료들 III

네번째 회사. 스타트업? 스타트업! 스타트업.......


전편에서 소개한대로 세번째 회사는 다시 첫직장이었다.

엄마의 뇌경색 재활치료를 돕기위해 잠시 프리랜서 기자로 전향했는데  사이 종이잡지가 폐간되면서 졸지에 직장을 잃었다. 원래도 잡지팀에선 매출이 없어서, 부동산 투자자문팀에서 번돈을 여기에 투자하는 구조였지만 아마도 더는 버티기 어려웠으리라. 그렇게 우리팀은 해산됐다. 엄마는 회복되었지만 돌아갈 직장이 없었다. 아직도 가끔 여름휴가 악몽에 지곤 한다. 여름휴가를  보내고 돌아왔더니 일터가 사라진 경험이 두번이나 있었기에.

무튼, 그러다 어느 괴짜 기자 선배의 소개로 스타트업이었던 네번째 회사에 합류하게 됐다.


1 면접에서 합격점을 받고, 그날 바로 내가 다른 기회를 보지 않게 점찍어 둬야한다며 두분의 면접관이 교대 어느 허름한 순대국집으로 데리고 가서, 밥과 술을 사주고, 출근일을 못박으셨다.


그때  분이, 지금은 고인이   대표님과, 지금은 거의 연락을 하지 않지만 나를 헤드헌터 세계로 이끌어준 S상무님이다.


여타 다른 스타트업이  그렇듯 호기롭게 우리도 사무실을 얻고, 앱을 개발해서, 버그 테스트하고, 런칭한  마케팅과 영업을 시작했다. 대표의 친누나와 사촌동생 남매, 홍대영업에 특화된 신치. 영엽팀 네명과, 홍보팀장 , 서비스 기획  총괄 대표,  개발 서포트 남자직원, 사무실 운영총괄 S 상무님 포함 8명이 주축이 어 회사는 꾸려졌고, KT 사내벤처투자팀에서 근무했던 대표님 주변 지인들이 컨설팅  자문역할을 해주었다.


스마트폰이 할인쿠폰 역할을 해주는 앱.

LBS(위치기반서비스) 어플이라 GPS로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고 제휴되어 있는 업체들을 소개하는 서비스, 였다. 영업팁은 제휴를 위해 업체를 찾아다니며 우리 어플을 소개해야했고, 나는 어플을 쓰는 유저를 늘리기 위해, 앱을 알리는 마케팅을 하는데 주력했다. 당시엔 돈만 내면, 안드로이드마켓이나, 앱스토어에서 앱순위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투자금이 없었다. 대표님도 가난한 집에서 용된 케이스라, 서포트받을 데가 없었다. 마케팅 비용을 전혀 쓸수가 없어서 내가 직접 발로 뛰며 블로거와 기자를 만났다. 이때 알게 된 고마운 인연들이 너무나 많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이렇다고 읍소하자, 댓가도 받지 않고 자기 일처럼 홍보글 써준 블로거들, 보도기사 써준 기자님. 우리 앱 다운로드 수와 순위를 올리는데 역할을 해준 써준 특정인이 생각나는데 혹시라도, 지나가다 이글을 읽는 누군가 서운할 것 같아 일일이 열거는 못하겠다. 모두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이때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에서도 초대됐었다. 어둠속에 벨이 울릴 때, 라는 코너였던 것 같은데. 연하킬러의 꺽소리 상담소였나? 연하남 꼬시는 법에 대해 라천민 불나방 언니들에게 강의아닌 강의를 했었다. 사실은 라디오를 활용해 앱을 홍보하려는 속셈(?)이었고 방송 후 앱 다운로드 숫자가 꽤 늘었다. 강한발목님이냐며 알은체 해주고, 내 비법에 대해 메모도 하면서, 열심히 들어준 혈님과 라천민들 덕분에. 그때 그 2010년 방송분이 어디 돌아다닐텐데....무튼 오글거려서 본인인 나는 못들을법도 한데 열번넘게 들은 것 같다. 하하하.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앱은 그루폰과 위메프, 티몬 등의 어마무시한 경쟁업체 홍수 속에서, 버텨내지 못했다. 6개월만에 사업을 접었다. 3개월 차에 이미 우리 사업의 흥망성쇠를 직감했지만, 대표님은 마무리까지 같이 하자고, 내가 우리 앱의 아.이.덴.터.티 라며 붙잡았다. 시작도 끝도 같이 하고 싶어했다. 인정이 차고도 넘치는 인간이라, 온갖 것들 (금목걸이, 금팔찌, 금반지)을 팔아서 연명했다. 처음 약속했던 기본급 외 주식 및 인센티브는 애저녁에 물건너갔고, 교통비조로 10만원씩 받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생활이 어려웠다. 근데 왜 때문인지 새벽세시까지 일했는데도 행복했다. 사업을 접기로 결심하고 마무리까지 한두달은 또 그만큼 힘들었지만. 패기있게 시작했을 때나, 힘들게 마무리할때나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술마시려고 개인 사업을 시작했나 싶을 정도로 대표님은 매일 술이었다. 당시에 만나던 5살 연하남한테도 차였다. 매일같이 술먹고, 서너시에 들어오는 애인을 이해못했을 수도 있고, 더 좋은 여자를 찾았을 수도 있고. 그와 헤어진 틈을 비집고 들어온 대표님 사촌동생이자, 우리 앱 영업담당자이자, P군과 2개월 정도 짧게 연애를 했다. 왜 했을까. 그 시기에 공교롭게도 나의 소중했던, 나를 뻥찬, 5살 연하남이 돌아왔는데, P와 연애중이라 다시 돌아온 그를 만나지 못했다. 이렇게 글로 쓰니 내가 꽤나 자유연애주의자처럼 보이는데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27살에 처음으로 모쏠을 탈피했고, 서른살-서른한살 무렵 스타트업 시절에서 홍보를 할때 이런일이 생긴거지, 2011년 7월 이후, 현재까지 십년째 솔로다. 썸도 하나 없는, 솔로!!!!!  연애운은 그때 다 썼나 싶을 정도였나 싶은데, 그 정도오 다 썼다고 하기엔, 내 인생에 연애운이 꽤 희박하게 들어있던 모양이다. 박하기도 하지;


무튼, 그렇게 앱을 접고, 회사를 철수하고, 싱가폴로 여행을 갈까, 직장을 알아볼까 외국으로 도망가려던 시점에 S상무님으로부터 헤드헌터 두분의 명함을 받았다. 한분은 IT전문, 다른 분은 반도체 전문인 헤드헌터. 헤드헌팅을 통해 입사하리란 기대는 안했지만, 헤드헌터라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 궁금해서, 취재하는 심정으로 그곳에 찾아갔다.

(이미 고인이  스타트업 시절의 한대표님은 내겐  은인이었다.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 다시....하기로 하고)



다섯번째 회사는,

유럽에 본사를  서치펌이었다. 여기서 나의 , 헤드헌터 경력이 시작된다.

그러고 보니 스타트업에서 재직했던 6개월을 제외하고는 나의 리포팅라인은 모두 여성 리더였다.

지금 나의 팀원도 전부 여자.....


무튼 헤드헌터 입문 이야기부터는 내일 다시,

to be continue ...




나를 스쳐간 직장동료들 1편

https://brunch.co.kr/@jennifernote/296


나를 스쳐간 직장동료들 2편

https://brunch.co.kr/@jennifernote/297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스쳐간 직장동료들 I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