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생전 이런 날은 안왔으면 했다. 내 첫사랑이 결혼했다는 소식을 내가 알게 되는 날.
(나를 배려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소식을 그와 헤어진 날로부터 13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시점에 알게됐다는 사실이다.
헤어진 지는 13년이 훌쩍 지났지만, 불과 몇년전까지도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날이 맑으면 또 날이 맑아서 그를 그리워했다. 아무런 맥락도 없이 시도때도 없이 자주 울곤했던 그때 그시절에 그의 결혼소식을 들었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퇴근 후 아무 생각없이 <놀면뭐하니> 를 보다가 기어코 참았던 눈물이 났다.
조근조근 읖조리듯 노래하는 '박해일' 때문이었는지, 한음한음 진심을 꾹꾹 담아 부르는 '송중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눈물이 펑펑났다. 이제는 무의식 저 밑바닥으로 내려갔겠지 싶었던 그 감정을 기어코 수면위로 올려내어 나는 또다시 그와 헤어졌던 키노극장에서 처럼 그렇게 울었다.
비오는 명동을 걸었죠, 그대 생각이 많이 났어요.
문제가 된 가사는 그랬다. 비오는 명동을 걸으며 그대 생각이 많이 났다는 그 문제적 가사.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는데 아직도 눈물이 나는게 신기하지만 나란 인간이 원래 리히치로(연애의 시대 남주)만큼이나 체액이 넘치는 타입이다. 눈물도 미련도 과하게 많은 부류.
매순간 다정했던 그의 배려와 사랑을 고백하던 그날의 어스름한 저녁과 자전거를 타고서 시내에 나가 꽃을 사들고 왔던 날, 처음 만났던 펍, 털썩 털썩 아무데나 앉는 (무거운) 나를 고이들어 자기 무릎에, 자기 손수건을 펴서 앉게 해줬던 나날들, 함께 걸었던 람블라스 거리, 비오는 날의 허버트 애버뉴, 이름모를 맛있는 술한병을 사서 나눠마시던 테스코앞 잔디, 비오는날 나무아래서 먹었던 바게트와 맥주, 말도 안되는 이유로 싸웠던 종로에서의 새벽, 인터라켄... 짧았지만 강렬했던 그와의 기억들이 한번에 물밀들이 떠.올.랐.다.
https://www.youtube.com/watch?v=fDnjzsyPj9c
한달 전엔가 조카에게 말했었다. 이 조카로 말할 것 같으면 스무살이 훌쩍 넘었는데, 초등학생이었을 나이부터 나의 모든 연애사를 들어준 카운셀러였다. 그래서 시간 순으로 나의 연애 변천사를 꿰뚫고 있기도 하고. 거의 유일하게.
아마도 그녀석이 결혼한 것 같아
꿈에 나왔는데 왠지 그런 것 같네.
결혼을 한다고...하더라고.
에이, 이모가 그걸 어떻게 알아?
조카는 내 직감을 믿지 않았지만 그렇게 한달이 지난 후, 우연히 그녀석의 인스타를 통해 그가 결혼을 했다는 걸 알게됐다. 이쯤되면 예지몽이라 부를 수 있을까ㅡ 내꿈을?
부케를 들고 해맑게 웃는 녀석의 사진 아래 유부남이 된 걸 환영한다는 지인들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언제나처럼, 그의 sns어디에도 신부의 얼굴은 없었다. 나와 사귈때도 싸이월드에 내 사진 한장이 없다고 다투곤 했었는데 사람 참 안변한다, 싶고.
조카는 말했다.
"이모, 뭐하나 물어봐도 돼?
어.
"그런 건 어떤 기분이야? 첫사랑의 결혼소식을 알게 된 기분이라는 거 말야?"
(놀리는 건가 싶어 질문자를 빤히 쳐다보며) 진짜 궁금해, 그게?
"어, 그런 경험이 없어서 정말 궁금해서 그래. 시원 섭섭한 그런 기분인가?"
아니, 그런 기분은 아니야. 결코 절대로 시원하지는 않아.
그냥 뭔가 정리된 느낌이랄까, 글쎄
세상의 말로는 설명이 어렵겠지만 굳이 말하자면
이모 인생 삼분의 1 챕터가 끝난 기분같달까.
뭔가 인생 내내 남아있던 미련이 정리되는 느낌?
그리고 그런 생각도 들어.
이제 정말 끝이니까,
나도 이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말야.
이모도, 이제 진짜,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
슬프고 허무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어 이제 정말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