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제주 어느 작은 책방에 들렀을때, 이책위에 붙여둔 책방주인의 메모가 인상적이라 언젠가 휴가가 허락된다면 마음 편히 이 책을 읽겠노라, 생각했었다. 아마도 자신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책, 이라는 설명이었다.
무슨 일이든 글자로 쓰지 않으면 어떤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 어렵다는 하루키는 자신이 달리는 의미를 찾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싶은데 꾸준하지 못한 나 자신을 다독이기 위해 연휴 전에 <달리기를 말할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라는 책을 주문했다.
백만원넘는 gym을 등록해도 한달에 서너번 가는 것이 고작인 나는 운동에는 영 취미가 없는 편이다. 헬린이에게 짐센터는 지루할 수 있으니 요가와 필라테스를 가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주변인들에게 추천도 많이 받았지만 타인에게 가이드를 받으며 한시간 내외의 시간동안 레슨을 채워가야 하는 운동은 생각만으로 버겁다. 지루할 것만 같고. 그러나 내가 원하는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선 운동이 필수라는데 이견이 없기때문에 그나마 저항감이 덜한 석촌호수나 양재천을 걷거나 달리는 것 (간헐적으로)으로 운동을 대신하고 있다. 사실 운동이라고 하기엔 땀한방울 나지 않는 산책 수준이지만.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달리는 행위>에 대해 어떤 고귀하면서도 숭고한 의미같은 것이 부여되면 내 운동(달리기)의 패턴도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연애든 인간관계든 책으로 배우는 타입이니까) 보기좋게 예상이 빗나갔다.
왜냐하면 이 책을 다 읽고 달리는 일은 포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름 포기, 도 의미가 있기는 있는 결론이다. 어쨌거나 책을 읽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미련을 뒀을텐데, 포기라는 결론도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제대로 그 길을 가보지도 않고서 포기한 것이 조금 꺼림찍하기는 하지만 마라톤 코스에 도전하기까지의 하루키식 달리기는 내게는 버거울것 같다는 게,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살아온' 나의 결정이기에 리스펙한다.
대신, 트라이애슬론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보다 정확히는 햇볕에 그을린 트라이애슬론 체형에 관심이 있다고 해야겠지만 어쨌거나 수영,달리기, 싸이클에 도전하는 트라이애슬론에 도전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끝내 수영을 배우지 못한다면 듀에슬론(싸이클, 달리기)이라도. 트라이애슬론이든 듀에슬론이든 42,195km를 달려야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에 달리기 연습을 통해 근육을 만들고, 체력을 쌓고, 달리기 경험을 늘려야한다.
같이 도전해줄 누군가가 있다면 진지하게 고민해볼텐데 혼자서는 사실 아직 영 엄두가 나지 않기는 하다.
그럼에도 초보로서 익숙하지 않은 일에 도전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잘 알기에 언젠가 어느날에는 수영을 배우고 있지 않을까싶다. 익숙했던 일과 익숙했던 관계에 대해서 다시금 깨닫게 되면서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계기는 내가 늘 무언가 처음 배우는 일을 시작할때였으니까. (무엇보다 트라이애슬론 체형을 갖고 싶다!)
하루키가 74세 나이에도 소설을 계속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가 소설가로서만이 아니라 러너로서의 정체성을 꾸준히 지켜왔기 때문이라고 그는 이책에서 회고했다. 소설가로서의 명성못지 않게 수십번의 42.195km의 마라톤 코스 완주는 물론 100km 완주 + 트라이애슬론 완주까지 섭렵한 그는 러너로서도 리스펙할만한 인물이다. 내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일본을 대표할만한 위대한 작가의, 참으로, 위대한 루틴이 아닐 수 없다. 부럽기 짝이없는.
어떤 면도의 방법에도 철학이 있다(서머셋 몸).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매일 계속하고 있으면 거기에 뭔가 관조와 같은 것이 우러난다는 말이다.
나 자신에 관해 말한다면, 나는 소설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자연스럽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휴양이 정당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휴식이 되는가? 어디까지가 타당한 일관성이고 어디서부터가 편협함이 되는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되고 얼마만큼 내부에 깊이 집중하면 좋은가?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얼마만큼 자신을 의심하면 좋은가? 만약 내가 소설가가 되었을때 작저하고 장거리를 달리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내가 쓰고 있는 작품은 전에 내가 쓴 작품과는 적지않게 다른 작품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