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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Aug 02. 2019

자유로우나 자유롭지 아니하다

일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더 이상 직장인처럼 회사에 묶여 있지 않은데도

늘 어딘가에 묶여 있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대체 뭘까 생각해 봤다.

사람마다 좀 다르겠지만 -

난 주로 예상치 못한 상황, 뜻밖의 장소에서 급한 일이 들어왔을 때 유독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다.

말은 프리랜서지만 프리하지 않음을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불시에 일이 들어오는 건 직업적인 특성상 어쩔 수 없지만 저런 상황은 여전히 힘들다.


프리랜서가 되면 시간적인 면에서 훨씬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겪은 현실은 많이 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애매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하는 시간은 내가 조정할 수 있어도, 일이 들어오는 시점은 전혀 내 시간과 상황이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차 안, 약속 장소로 가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급하게 일을 처리한 적도 있지만

그 정도는 약과였다.

비행기 탑승구 앞에 앉아서 일할 때도 그랬고,

영화의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영화관 매점 옆에 쭈그리고 앉아 파일을 보낼 때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성격이 급해서 원래 해결해야 할 일은 그때그때 바로 처리하는 편이긴 한데,

아직도 뜻밖의 상황에서 급한 일이 들어오면 초조해질 때가 많다.

이런 일이 항상 생기는 건 아니다.

보통은 마감이 여유로운 편인데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왜 마음먹고 어딜 좀 가거나 해외로 나가려 할 때 저런 급한 일들이 더 많이 들어오는지-

참 희한하다.

도대체 무슨 법칙인지 모를 일.


아무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 근처가 아니고서야 외출할 때 노트북은 필수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숄더백에도 들어가는 소형 태블릿 겸 노트북을 늘 갖고 다닌다.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한 초반에는 혹시라도 메일 확인을 제때 하지 못할까 봐 늘 긴장 속에서 살았다.

휴가철이나 연말연초에는 휴가 예정이 있는지 미리 확인하는 업체들도 있고

발주가 예정된 일이 있으면 작업이 가능한지 내 스케줄을 물어봐주는 고마운 곳들도 있지만,

이미 납품한 번역물에 관한 클라이언트의 질문이나 수정사항 등 예측불가의 일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지금이야 연차가 쌓였고, 신뢰를 쌓은 회사들이 있어서 그런 걱정은 전보다 덜하지만

장시간 비행을 하거나 부득이하게 메일 확인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일찌감치 회사 쪽에 양해를 구해놨더라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연락이 오는 시간대도 그렇다.

일이 들어오는 시간은 이른 아침일 수도 있고, 밤늦은 시간이거나 모두가 잠든 새벽이 될 수도 있다.

시차가 있는 국가의 에이전시라면 더더군다나 그렇다.

9시간 정도의 시차는 그래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

새벽 4시에 메일을 받고 6시에 확인을 해서 일을 보내주고 나서는 딱히 괜찮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_-;


분명 매력적인 부분도 많은 직업이지만,

이런 면에서는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멀리 여행을 떠나거나

잠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더라도

불안한 마음을 잠재울 수 있는 프리랜서가 되는 건 여전히 내게 어려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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