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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설픈 비건 Jan 27. 2020

사랑을 사랑하는 것

날 사랑하는게 아니고

평범한 직장인 유리는 요새 만난 지 얼마 안 된 연인 구슬에게 푹 빠져있다. 유리와 구슬은 만난지 이제 갓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풋풋한 커플이다. 하루종일 핸드폰을 붙잡고 사는 그들의 메신저 대화내용을 분석해보면 60%정도는 무의미한 스몰토크(오늘 넘 춥당 / 점심 뭐 먹었어? / 지금 뭐 하는 중이야 + 사진첨부)가 차지하고 나머지 30%는 사랑해/고마워/미안해/보고싶어 중 택1로 랜덤하게 채워져 있으며 10%는 대화라고 보기 힘든 웅앵엉앙 같은 울림소리와 이모티콘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둘의 관계는 대체 뭐가 그렇게 특별한 것일까?


남들 다 똑같이 하는 연애, 유리와 구슬도 처음하는 연애, 처음하는 사랑이 아닌만큼, 이 관계 역시도 흔하디 흔한 상투적인 관계라고 머리로는 생각했지만, 아니! 이번만큼은 정말 다른 것 같다. 이번만큼은 드디어 진짜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나의 평생을 함께하게 될 그런 영원한 사랑.. 지금까지 내가 했던 연애들과,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 뭐가 어떻게 다른 지 끝도 없이 묘사할 수 있는 그런 사랑 말이다.


사랑의 대상은 아주 구체적이고 특정하다. 유리는 구슬에게서 사랑하는 부분을 콕콕 찝어 나열할 수 있다. 기분이 좋을 때면 y좌표가 살짝 올라가는 눈썹의 앞머리, 홍채 주변을 따라 감도는 눈동자의 밝은 갈색빛, 물을 뜰 때면 넘치기 직전까지 가득 떠오는 습관 따위의 아주 작은 디테일들을 유리는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람의 모든 부분이 다른 모두와 그 사람을 구별시킨다. 구슬은 정말이지 완벽한 사람이다.


그런데 구슬은 정말로 '완벽한 사람'이기 때문에 유리에게 완벽하다고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유리가 완벽한 사람이라고 마음 속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완벽한 사람이 된다. 구슬은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완벽한 사람' 역할로 섭외되어 사랑이라는 무대로 던져진 셈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무대 위의 주역이 된 구슬은 늦게나마 서툰 연기를 배워간다.


'난 자기가 그렇게 날 쳐다볼 때 그 눈빛이 너무 좋아.. 자기의 눈빛은 뭔가 다른게 있어. 알아?', '자기는 항상 그렇게 물을 가득 떠오더라. 그래서 사랑도 가득 담겨있나봐.' 따위의 말들은 유리가 내리는 연기의 지침이 된다. 원래는 구슬에게 자연스럽던 행동들도 무대에 올라서고 나니 자꾸만 의식하게 된다.. 유리와 눈이 마주칠 때면 더 그윽하게 유리를 보려 애쓰고 물을 뜰 때마다 강박적으로 가득 컵을 채우게 되었다. 그렇게 둘의 연극은 순탄한 사랑 속을 항해한다.


유리는 이 순간, 오로지 구슬만을 사랑한다. 유리는 지금까지 한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의 연인을 만나왔고, 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데이트를 하거나 잠자리를 가져왔지만 오직 구슬만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할 것이라고 믿게 된다. 지금까지 했던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보자. 전남친을 만날 때도 유리는 같은 생각을 했다. 전전남친을 만날 때도 유리는 같은 생각을 했다.. 전전전남친과 전전전전남친과 전전전전전... 남친을 만날 때도 유리는 어느 순간 멈춰서 불현듯 이것만이 나에게 남은 유일한 사랑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모든 대상들은 유일했고 특별했다.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순간들이 되었지만..


유리에게 유일한 것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욕망이였다. 유리는 인간이 인간을 낳고 키웠기 때문에 비롯되는 불가피한 여러가지 요인들 때문에 자신만이 가지는 독특하고 유일한 결핍을 결정받게 되었다. 그 결핍이야말로 유리를 '유리'로 만드는 것이다. 그 결핍에 따른 욕망, 유리가 갈망하는 '완벽한 사랑'의 이데아가 건축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사랑'의 이데아를 구축하고 욕망한다. 사랑의 대상은 이데아를 투영해보이기 위한 도구일 뿐이며 대체가능하다.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얻는 사랑의 몸짓과 언어들로 나는 이데아를 상상하고 헤엄친다.


그렇다! 유리는 누구나 그렇듯 사랑을 사랑하고 있다. 유리에게 주연으로 지목받은 배우는 엄청난 호평에서 출발하였지만 몇 번의 대본실수를 지나 결국은 혹독한 혹평을 받으며 무대를 내려오게 될 것이다. 그렇게 연극이 막을 내리는 순간 유리는 참혹하게 찢어진 심장을 부둥켜 앉고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눈물은 사랑의 대상이 상실되어서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대상은 없어진다 하더라도, 사랑은 영원하니까. 사랑은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하는 영원하고 완전한 순환이 된다.


그렇게 유리는 또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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