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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의 지금라이프 Aug 31. 2024

3화) 변화의 종지부, 게임 중독에서 해방되다

남편의 변화는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그 변화의 종지부는 게임이었다.

사실 결혼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남편이 이렇게 자주, 그리고 중독적으로 게임을 하는 사람이었는지.

평일에 퇴근하고 나면 2~3시간 씩은 하더니, 주말에는 시간이 나는대로 게임을 했다.

그 게임은 바로 (모두가 예상하다시피) 롤이다.


남편이 훗날 고백하기로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게임을 쉬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너 그러면 여자친구랑 결혼 못한다'는 시어머니의 말에 매일 새벽에 일어나 몰래 했다고 한다.

(다 나중에 고백한 이야기이다. 부들부들)


남편은 롤을 11년 동안이나 해왔다. 롤은 일상에서 뗄 수 없는 취미 이상의 존재였다.

하지만 남편 스스로도 본인이 이런식으로 게임에 빠져있는 상태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스터디와 모임을 만들며 다른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보았지만, 그 때 뿐이고 시간이 남으면 다시 게임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런 남편이 롤을 끊었다.



남편이 자랑스러워 하며 보여준 롤 티어



남편의 롤 게임 기록을 보면, 놀라운 변화가 눈에 띈다.

수업을 들은 그 주부터 남편은 게임을 하지 않았는데, 이 주제를 수업에서 다루었다고 한다.


남편은 자신이 왜 매일, 집착적으로 게임을 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처음으로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를 알고 나니까, 더 이상 게임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됐어. 난 그동안 게임을 즐기고 있는 줄 알았어. 그냥 취미라고 생각했지. 근데 사실 나는 게임을 일처럼 하고 있었더라고. 그래서 그렇게 집착적으로 했던거야."


남편은 마치 직장에서 일하듯 보상을 받고 싶어서, 인정을 받으려고 게임을 했다.

어느 단계까지 올라가면 그 다음 티어, 또 그 다음 티어로 계속해서 목표를 성취하면서 인정 욕구를 채우려고 게임을 했다.


남편은 본인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고 했다.


"예전에 여보한테 말한 적 있잖아. 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성취감을 느낀다고."


그러면서 남편은 자신이 깨달은 바를 얘기했는데, 수업을 듣지 않은 당시의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종류의 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완전히 내면에서 깨달았어. '머리로 아는 것'과는 달라. 몸으로, 경험적으로 깨달음이 왔어. 그래서 내 상태가 그냥 바뀌었어.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그 이후로 남편은 정말로 게임을 하지 않았다.

무의식 속에서 게임을 할 이유를 계속 붙들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수면 위로 드러나자 더 이상 그 이유를 붙들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남편의 변화를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좋아할 틈도 없었다.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집안일을 갑자기 하고, 아버지와 화해하고 (1화, 2화에서 얘기한 바 있다)

거기에다 게임까지 끊다니.


'이게 정말 가능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인생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눈앞에서 가능해지는 걸 목격하는 순간, 그 충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내 머릿속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온통 뒤죽박죽이 되었다.


상식이 통으로 흔들리면서 새로운 현실을 마주했다.


정말로, 20년 동안이나 남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게임이 마치 마법처럼 그의 삶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 놀라운 변화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남편의 '상태'를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강력한 무언가가 작용했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나는 점점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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