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니의 지금라이프 Sep 02. 2024

5화) 무의식의 나를 마주하다

드디어 수업 첫 날.


남편은 자신이 수업을 들을 때처럼 방 안을 꼼꼼하게 세팅해주었다. 오직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창문을 닫고, 방 온도를 적절히 올려주고, 물 잔과 초콜릿을 챙겨주며 작은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주었다.



장장 4시간의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4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순수하게 무언가를 즐겨본 적이 언제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생각들, 그리고 현재 내 삶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들.

그 근원을 탐색하는 과정은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듯 했다. 

분명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기억이었는데도, 전혀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그 때 그 사건이 지금의 현실과 이렇게 연결된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관점이 열리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이해되지 않았던 조각들이 하나의 전체 그림으로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완전한 그림이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면, 내가 깊게 잠들지 못하고 항상 뒤척이는 이유가 어린 시절 할머니가 두 번이나 돌아가실 뻔한 일을 목격한 경험과 연관이 있다던가, 내가 특정 유형의 사람을 특히나 싫어하는 이유가 내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어떤 신념과 맞닿아 있다던가 하는 것들이 그러했다.


그러면서 내 안의 감각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무의식을 다루는 일은 과거의 사건들과 내가 깊이 묻어둔 기억들을 꺼내 마주하는 일이다.


오랫동안 열지 않아 삐걱거리는 창고 문을 열고, 그 안에 무수히 쌓여 있던 감정과 잊힌 기억들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아주 내밀하고, 때로는 아픈 이야기였다.

나는 초등학교 때 이후로, 누구 앞에서 광광 울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심지어 남편 앞에서도 없었다.

그런데 수업 첫 날, 생면부지의 선생님 앞에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그런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수업중에 몇 번이나 얼굴을 화면에서 숨겨야 했다. 


울음이 터져나올 때 마다 내 안에 깊이 자리잡고 있던, 내게 기생하며 나를 좀 먹고 있던 감정들은 자신의 실체를 들켰다는 듯 달아나버렸다. 

그리고 시원하고 기분 좋은 해방감이 찾아왔다. 


과거의 모든 내용을 여기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깊고 강렬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첫 수업이 끝나고 나는 약간의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방에서 나와 남편과 마주쳤을 때, 그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과연 나는 이 수업을 어떻게 들었을지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나는 수업 마지막 시간에 받은 충격 때문에 할말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는 말했다.


"와, 여보. 나는 내가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꿈에도 몰랐어. 아직은 좀 혼란스럽긴 하지만

분명한 건, 이제서야 진짜 나를 마주하는 느낌이야."


남편은 이해했다는 눈빛으로 나를 향해 미소지었다.



학창시절부터 나는 깊게 잠들어본 적이 없었다. 침대에 누워도 1~2시간은 지나야 겨우 잠들었고, 작은 소리에도 금방 깼다. 거의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기에, 내 체질이라 여기며 살았다.


첫 수업을 들은 그날 밤, 눈을 감자마자 나는 깊고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이전 04화 4화) 미지의 문을 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