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이가 양가 사촌들 중 가장 막내입니다. 그래서 임신을 하자 꽤 많은 육아용품과 아기옷을 물려받았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많았던 것은 아이 책이었습니다.
아이 방으로 마련한 방에 책들이 쌓여가고,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책장부터 사게 됩니다. 가장 높은 걸로요. 거의 천장 끝까지 닿아요. 아직도 집에 있는 이 책장은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높이 때문에 엘리베이터 태울 엄두가 안 나서요. 새로 산 아이 옷장에도 책을 집어넣습니다.
육아 블로그를 열심히 보던 중 국민책장과 전집의 세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전집을 꽉 채운 책장으로 벽면을 채운 방에서 아주 재미나게 책을 읽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이거 없으면 우리 아이 글자 못 읽고 책 못 읽을 것 같았습니다. 집에 있는 책 열심히 읽어서 엄청 똑똑해질 우리 아이를 상상하며 아이방에 5 ×3 국민책장들을 주문해 집어넣습니다. 넉넉한 책장이 생겼으니 책장에 채울 책을 구매하기 시작합니다.
각종 육아 블로그에서 꼭 사야 한다는 전집을 사서 집어넣습니다. 밤늦도록 개똥이네, 중고나라 섭렵하며 최저가를 찾아 헤맵니다. 당근마켓은 생기기 전이었어요. 전집의 세계는 아주 무궁무진했습니다. 동화 전집에는 세계 동화 전집, 창작 동화 전집, 옛날이야기 전집, 인성동화전집, 유명작가 전집 등이 있고요. 역사전집, 삼국유사 전집, 삼국사기 전집, 과학전집, 자연관찰전집, 수학전집, 영어전집, 노부영시리즈 등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예요.
아이방은 책이 빼곡히 꽂혀있는 높은 책장에 둘러 쌓이게 되었어요. 너무 답답하고 정신없어 저도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 졌습니다. 문제는 아이가 집에 있는 전집보다 엄마가 도서관에서 조금씩 빌려온 단행본 책들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책 많다고 아이가 책 많이 읽는 것은 아니었어요.
책이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중고로 판매도 하고 주변에 나누기도 하면서 책을 다 처분하고 국민책장들까지 없애버립니다. 그리고 난 후, 아이방이 꽤 넓고 쾌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아이방엔 책장이 하나도 없습니다. 책상 위에 붙어있는 2칸이 전부예요. 집안의 책장은 맨 처음 샀던 엄청 높은 책장 하나입니다. 맨 위 칸을 톱을 사서 잘라 볼까 생각했을 정도로 매우 답답합니다. 50평 이상 사시는 거 아니면 높은 가구는 정말 말리고 싶어요. 그 책장은 컴퓨터방구석으로 옮겨 책보다는 수납용도로 사용하고 있어요.
그 후 대부분의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봅니다. 또 읽고 싶으면 다시 빌려봐요. 신간 읽고 싶으면 희망도서 신청해서 읽습니다. 대출 중이면 예약해서 기다렸다 보고요. 기다렸다 읽으면 더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 없으면 상호대차해서 읽거나 산책 삼아 옆 동네 도서관 가서 빌려요. 집에 책이 없어서 책 못 읽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반납해야 할 날이 정해져 있으니 미루지 않고 읽게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동네 도서관을 열심히 이용했더니 도서관에서 연락이 왔어요. 지난 1년간 책을 가장 많이 대출한 가족이라고요. 뜻하지 않게 우리 지역 ‘책 읽는 가족’에 선정되어 상장도 받고, 도서관에서 상장 들고 기념사진도 찍습니다. 그저 ‘도서관이 우리 집 책장이다.’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