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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정 Oct 12. 2021

소설가 지망생 최대의 적

 글쓰기를 방해하는 최악의 악당이 무엇일까. 눕고만 싶은 게으름, 돈을 벌기 위한 시간, 밖에 나가서 놀고 싶은 욕구 등. 여러 강력한 악당들이 글쓰기를 방해한다. 일도양단으로 적을 물리치고 글을 쓰면 좋으련만 아직 수양이 부족하여 적에게 시달리면서 글쓰기를 이어 나가곤 한다. 수련을 하면 저런 적들은 쉽게 물리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잘 벼린 집중력의 칼로 글쓰기의 적들을 날카롭게 베어 내야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물리치지 못할 최악의 악당이 하나 있다. 집중력의 칼날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액체괴물처럼 달라붙는 이 악당을 상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악당은 괴롭히기만 하지 않고 달콤한 액체를 내뿜어 쾌락까지 선사하기 때문에 더욱 무섭다. 심지어 때로는 하는 일에 크게 공헌까지 해서 쉽사리 내칠 수도 없다. 내 곁을 떠나지 않고 글쓰기를 방해하는 최악의 괴물. 그 괴물은 바로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조그마한 기계는 정보를 끊임없이 뿜어낸다. 그 따끈따끈한 정보를 흡수하는 일에 저항하기 어렵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수많은 낚시 바늘과 엄지손가락을 한 번만 내리면 제공되는 호기심을 자아내는 끈끈이들은 내 시간을 낚아챈다.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는 세계. 모든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있고,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줄거리 요약이 있으며,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다양한 주제로 된 방송이 있다.


 예전 같으면 멍하니 기다렸을 시간도 지루하다. 지하철에 앉아 어디로 가는 길에서, 매장 계산대 대기 줄에서, 잠깐 누워 휴식하는 소파 위에서, 스마트폰은 어김없이 나를 사로잡는다. 스스로 생각을 하기보다 온라인에 제공된 기사를 보며 기다림의 시간을 채운다. 정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어찌나 빨리 가는지. 눈을 감고 생각을 해봐야지 하다가도, 머릿속에 문득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싶은 무언가가 떠오른다. 지금 안 찾으면 잊어버리고 말 거야, 잠깐 그것만 보고 끌 거야, 그런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꺼내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에 결국 다짐은 무너진다.


 스마트폰 이전에는 기다리는 시간에 공상을 하곤 했다. 최근에 본 드라마가 다른 식으로 전개되었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호그와트에서 내게 부엉이 편지를 보내면 어떨까, 미래에 노벨문학상을 받으면 어떻게 수상 소감은 뭐라고 할까, 같은 여러 상상을 하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오색찬란하고 끝이 없는 온라인 세계가 내 상상을 대체했다. 내가 모든 걸 쌓아 올려야 하는 나만의 세계와, 때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내면에서 눈을 돌리고 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의 늪을 선택한 것이다.


 온라인 세계엔 모든 게 있지만 실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원하는 모든 것을 인터넷에서 얻지만 그 정보는 말초신경을 살짝 자극하고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어제 내가 찾아본 정보의 양은 엄청나게 많을 테지만 그중에 내가 기억하는 정보는 손에 꼽을 수 있다.


 블루베리 타르트를 만들다가 지쳐 침대에 누워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보던 어느 날, 창문을 투과한 햇살이 얼굴에 비쳤다. 눈이 부셨다. 인공적인 발광체가 만드는 빛이 아닌 가늠도 되지 않는 오랜 시간 지구에 쏟아졌을 자연의 빛. 따뜻했다. 커튼을 치러 가다가 그 따뜻함에 매료되어 창문을 열었다. 여러 냄새를 담은 바람이 집을 채우기 시작했고 바깥에 보이는 빛바랜 오래된 저택과 이글루를 닮은 새하얀 우체국, 그리고 푸른 하늘이 내 앞에 있었다.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걸까. 밖에 저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인터넷에 더 아름답게 찍은 파리가 있을지 몰라도 내가 지금 눈앞에 보는 세부는 그곳에 없었다.


 서둘러 타르트를 마무리했다. 오랫동안 신지 않은 러닝화를 꺼내 신었다. 오랜만에 에펠 타워가 보고 싶었다. 그쪽으로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가슴이 막히고 심장이 엄청 빠르게 뛰었다. 이렇게나 심장이 쿵쾅 거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구나. 하늘은 점차 분홍빛으로 물들었고 뜨겁게 익었던 공기가 식어가며 달큼한 향기를 냈다. 온갖 감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여러 감각에 휩싸인 나는 달리는 동안에 스마트폰을 꺼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마침내 도착한 에펠 타워 앞에는 해 질 녘 무렵을 즐기는 많은 사람이 모여 부드러운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진한 연분홍 하늘을 배경으로 선 에펠 타워는 아름다웠다. 손바닥만 한 스크린 속에 빠져 내가 그동안 놓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풍경들이 가슴 시리도록 아쉬웠다.



 그 여름날의 달리기를 계기로 스마트폰을 완전히 끊어냈다, 라는 식의 결말은 없었다. 여전히 나는 때때로 소파에 누워 간장게장 먹방을 보거나 지하철에서 보고 싶은 영화 리뷰를 보곤 한다. 스마트폰은 여전히 내게 최대의 숙적이다. 하지만 내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스마트폰을 꺼내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한 번 꽉 쥐고 빼는 일이 잦아졌다. 마음속 빈 공간을 많이 확보하고 그 안에 상상과 공상을 채워 넣는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매일 달리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일주일 한 두 번은 나가려고 노력한다. 풍경은 매번 달라진다. 같은 코스를 달려도 거리를 걷는 사람이 다르고 하늘색과 날씨가 다르고 내 기분이 다르다. 달리는 동안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내면의 나를 마주한다. 몸을 격렬히 움직이면서도 마음은 점차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그때 샘솟는 나도 몰랐던 감정과 기억들. 그 시간이 내게 너무나도 소중하다.


 달리기 덕분일까. 최근 단편소설 초고 하나를 끝냈다. 부단히 퇴고를 거쳐 탈고까지 노력해야 한다. 부디 스마트폰의 유혹을 이겨내고 탈고의 길까지 무사하고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도록 기원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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