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ing의 달인
누구에게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있으니...,
하늘 아래 이 세상 사람이면 누구나 어린 시절의 꿈과 빛바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으며, 그것을 삶의 밑거름으로 활용하면서 인생의 여정에 큰 몫을 차지한다. 특히 고향을 떠나 삭막한 도시생활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지금의 사는 모습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묻어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자아내게 하는지도 모른다.
사회 초년병 시절 이곳 서울에서의 객지생활은 나에게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었다. 남들은 도회지가 신기루처럼 느껴졌는지 모르지만 사고무친의 타향살이인 나에겐 질경이 같은 삶으로 비쳤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서울로 발령을 받았을 때 심적인 두려움이 무척 많았다. 낯설고 물선 객지에 대한 이질감과 거부감이 작용한 것이리라. 마치 군대에 입대하는 미숙아적인 약한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고향을 떠나 올 때 어머님께서는 깊은 눈물을 자식에게 보이셨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상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도 속울음이 배어 나왔다. 몸이 편찮으신 어머님의 건강이 걱정되어서였다.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가세가 급격히 기울면서 건강도 많이 약해지셨다.
빈농의 자식으로 애당초 부모님 재산은 꿈도 꾸지 않고 자라났다. 자족을 바탕으로 자수성가를 하기로 굳게 결심한 터였다. 초임시절 방 구할 돈이 없어서 파출소 구석진 방에서 쭈그려 잠자면서 선배직원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그때가 어쩌면 정금 같은 귀하디 귀한 체험의 시간임을 반추해 본다. 혹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연습이 없다"라고...
나는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4개월의 더부살이 끝에 월세금을 장만해 부엌이 없는 그야말로 잠자는 방 한 칸을 구했다. 객지생활 10년의 세월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어머님께서는 당신의 옥체가 쇠잔할 즈음 당신의 며느리를 그토록 기다렸지만 못난 불효자식은 "때가 되면요"를 입버릇처럼 자만하여 그만 때를 놓쳐 버렸다. 자식의 기약 없는 대답을 기다리지 못하시고 좋은 세상을 눈물로 돌아가셨다.
계절의 변화 앞에 인간의 나약함을 느끼지만 항상 굶주린 야수처럼 정이 그리워 가끔 하늘만 멍하니 바라본다. 이제 토끼 같은 자식의 아빠가 되어 진정 부모님의 가없는 사랑을 알게 되었지만 무정한 세월은 나를 기다리지 않고 지나갔다. 그래도 현재 삶이 어렵지만 가내 걱정 없고 행복한 지금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과 불효에 대한 후회로 해동기 산허리에 희끗하게 남아있는 잔설처럼 멍에로 남아 있다.
얼마 전 모처럼 시내버스에 몸을 의지한 채 출근했다. 차창 밖의 아침 풍경은 그야말로 차량의 물결이었다. 양화대교를 지날 때 한강의 도도한 푸른 물결로 인하여 도회지 콘크리트 상자 공간에서 다소나마 해방감을 맛보기에 충분했다. 그 청량감도 잠시 지하철 공사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합정동 로터리에서 나는 갑자기 감전된 기분이 들었다. 어머님께서 살아생전 이름을 지어주신 '단지차'가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언젠가 어머님과 함께 가을걷이를 끝낸 저녁, 손수레를 끌면서 비포장도로를 걸어 집으로 향하는데, 뿌연 연기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차를 보시고 어머님은 그 차를 '단지차'라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나는 "깔깔깔...' 웃으면서 화답했었다. 그때부터 그 차를 단지차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단지처럼 생겼으니까..., 그 차는 바로 공사용 레미콘이었다. 세월이 흘러 벌써 불혹의 나이가 되었지만 지나간 세월만큼 확대 재생산되어 향수병이 4기나 되었다.
아! 어머니.
살아계실 때 잘해드려야 했는데, '주자십회' 중 不孝父母死後悔가 한이 된다. 지금 우리들의 고향에는 주름진 노안의 어른들께서 힘겨운 삶의 여로를 우리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쓰고 계신지 모른다. 꾸지람이 듣고 싶고, 매도 맞고 싶다. "부모에게 효도하면 장수하고 복을 받는다"라고 성경에서는 말한다. 참으로 언제나 행동하는 표상이 되고 싶다.
그때의 음성은 지금 들리지 않지만 어머님께서 지어주신 그 단지차는 언제나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마치 어머님의 한 없는 사랑을 각인시켜 주려는 듯이..., 명절 등 대소사가 있을수록 어머님의 손길이 더욱 그립다. '어렸을 때 먹었던 음식이 평생을 간다'는 옛말이 있듯이 어머님이 해주시던 음식이 먹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어머님 뵙고 싶습니다.
※ 이 글은 월간 수사연구 2000년 3월호 '열린 광장'에 실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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