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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지몽 Jan 23. 2023

베란다 튤립

저는 매일 집에 있는 아이와 아내에게 영상통화를 합니다. 그날은 통화를 하면서 아이가 딸기 케이크가 먹고 싶다길래 퇴근길에 회사 근처에 생긴 케이크 가게에 들러 딸기 케이크를 하나 샀습니다. 가격은 만팔천 원. 파리바케트 케이크 보다 조금 비싸지만 아이가 좋아한다며 아내가 꼭 그 케이크로 사 오라고 신신당부를 한 먹음직한 케이크였습니다.


집에 있는 두 사람이 좋아할 생각에 가게를 나와 걸어가려는데, 바로 옆에 꽃집이 새로 생긴게 보입니다. 예쁜 꽃이 많아서 들여다 보고 있는데 아내가 좋아하는 튤립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내는 꽃을 참 좋아합니다. 봄에는 프리지어를 좋아하고, 여름 가을에는 장미를 좋아합니다. 겨울에는 제주에서 피는 동백을 좋아하고, 튤립을 참 좋아합니다. 저희 결혼식에서 부케를 분홍색 튤립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없을 때는 그냥 아무 날도 아니어도, 지나가다가 튤립을 발견하면 꼭 몇 송이씩 사다가 선물하곤 했습니다. 아내는 튤립을 거실에 있는 식탁에 올려놓고 볼 때마다 흐뭇해했었지요. 그런데 아이가 생기자 모든 게 아이의 기준으로 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꽃을 사는 횟수가 줄었습니다. 꽃을 사준지가 참 오래되었다고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데, 눈앞에 튤립을 보고는 바로 꽃집으로 들어갔습니다.


" 튤립 한송이에 얼마인가요?"


" 네 한송이에 오천 원입니다 "


" 오천 원이요?"


예전 같으면 한송이에 얼마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보기 좋고 넉넉하게 샀을 꽃다발이었지만, 요새는 아껴야 한다고 늘 강조하는 아내의 말이 생각나서 선뜻 몇 송인 지를 망설이게 됩니다. 꽃을 좋아하지만 너무 돈을 많이 쓴 것 같으면 싫어할 것 같아서 말이지요.


" 두 송이만 주세요 "

" 두송이요?"


가게 점원이 저를 위아래로 훑어 봅니다. 꽃을 두 송이만 달라고 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는 표정입니다.


" 포장비가 천 원이고 가져가실 때 종이백이 천 원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크지는 않지만, 배꼽이 만만치 않게 크다는 말이었습니다. 막상 점원이 들고 있는 두 송이를 보니 너무 없어 보이는 듯해서, 결국 한송이를 더 추가해서 꽃다발을 만들었습니다. 집에 가는 내내 한송이를 더 살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런 마음은 금세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은 금요일 저녁 퇴근길. 제가 타는 지하철 역은 신사역입니다. 서울에서도 손꼽히게 사람이 많은 구간이지요. 손에 든 케이크와 꽃이 망가질까 봐 불안하기 시작했습니다. 큰 마음먹고 산 것들인데, 꼭 지켜야만 했습니다. 저는 소중한 꽃과 케이크를 머리 위로 올리고 지하철에 간신히 올라탔습니다. 그리고는 벌서듯 30분을 아슬아슬하게 버텼습니다.


이윽고 집 앞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선물들은 무사한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케이크는 망가지지 않았는데, 튤립은 지하철 사람들의 열기로 예쁜 꽃봉오리가 많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막 튤립을 샀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게 선물에 신경을 쓰고 길을 가던 중, 길가에서 아내와 아이가 짠 하고 나타났습니다. 케이크를 기다리던 아이가 마중을 나가자고 했나 봅니다. 아내는 예상 못한 꽃선물에 너무 좋아했습니다.


" 미안해 꽃이 많이 벌어져서 "

" 오빠 이건 겨울꽃이라 원래 그래. 베란다에 잠깐 놔두면 금세 예쁘게 될 거야"


그렇게 튤립은 베란다에 두었습니다. 아내의 말대로 튤립은 예쁘게 봉오리를 닫았고요. 그런데 그 뒤로 아내는 꽃병을 식탁 위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여전히 꽃병이 베란다에 있는 걸 보고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왜 꽃을 밖에다가 계속 둬?"

"응 너무 아까워서. 오래 두고 보고 싶어서. 빨래하러 베란다 나갈 때마다 보이니까 기분이 좋아져."


식탁에도 두고 베란다에도 두고 부엌에도 두고 안방에도 두게 넉넉하게 사서 두고 보게 해 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베란다에다 두고 보는 꽃을 보고 행복해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꽃을 사 온 지 며칠이 된 건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꽤 많은 날이 지났지만, 꽃은 아직도 예쁘게 베란다에서 피어 있습니다. 외벌이에 늘 넉넉하지는 않지만, 다음에는 아내가 조금 잔소리를 하더라도 예쁜 꽃을 한 아름 안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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