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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각의 비망록 Aug 15. 2024

첫사랑

꿈결처럼 사랑했던 모든 날

신지훈, 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 되어



 봄이어서, 스무 살이어서, 으스대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게 설아여서 좋아했다. 우리가 만나기는 어느 교양 강의가 처음이었지만 난 전부터 그녀를 찾고 있었다. 예비소집 날, 중간쯤 앉아 길고 검은 머리를 묶었다, 풀었다, 하며 어색해하는 설아를 보자마자 반해버렸다. 이름까지는 엿들었지만, 학과가 어디인지, 몇 살인지는 몰랐다. OT가 끝나자마자 뛰쳐나가던 설아의 수수한 옷차림과 분위기를 난 아직 기억한다. 나중에 같이 연극을 보고 이화마을 골목길을 걸을 때 그녀는 물었다.

-만약 너 나랑 같은 대학 아니었으면 누구 만났을 것 같아?

-음······, 음대생?

-아니지, 그래도 어떻게든 날 찾았을 거라고 해야지.

-말도 안 돼.

 만일 그 장소, 그 시간이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만나게 될 일이 있었을까? 만나더라도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지 않았을까? 환경이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던 난 설아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한사코 우리가 어떻게든 한 번은 사랑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늘이 지켜보다 '얘내 아직도 안 만났나' 하고 이어줄 거라나. 그녀는 내 대답에 잔뜩 토라지기도 했다.

 이제는 동의한다.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만났더라도 난 그녀에게 반했을 것이다. 시야가 그녀에게 비네팅되고, 주변이 조용해지고, 가슴이 은하철도처럼 덜컹거려서 잔뜩 당황했을 것이다.



자판기 커피를 내밀어

토이, 좋은 사람(feat. 김형중)



 난 서관 왼편의 라일락 덤불에서 북문까지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좋아한다. 어수선한 하루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거길 지날 즈음에는 내 시름도 무던해지곤 했다. 걷다 보면 분수를 끼고 왼편에 잔디가 잘 깎인 교수회관 정원이 있다. 정원 입구에 우두커니 선 플라타너스도 참 정겹다. 플라타너스는 이제 죽어서 여름에도 잎이 다 타 있지만, 난 기억한다. 술에 취해 휘적이며 걷던 밤, 소나기를 피하려 나무등걸에 바싹 붙어 있던 오후, 모두 내 마음 어디엔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사귀기 전에는 꼭 설아와 동선이 겹쳐서 얼굴이라도 한 번 보던 곳. 그래서 난 그 오르막을 '풋내길'이라 부른다.

 우리가 어쩌다 친해졌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강의의 이름은 '낭만파음악산책'이었고, 루빈슈타인이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간간이 틀린 음정으로-연주하고 있었고, 강당 가운데 두 번째 자리에 앉은 설아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이 어렴풋하다. 난 한참 뒤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졸았다. 꿈 속으로 들어온 별똥별 같은 선율에 기대어 설아와 손을 잡는 상상을 했다. 영문 모를 용기가 생겼고, 그날, 클래식을 좋아하냐는 물음은 진부하지만 그럴싸했을 것이다. 그때의 용기는 여자를 얻겠다기보다 생각나는 건 해야만 하겠다는 새내기의 성미에 어울린다. 같은 상황이 또 생기면 절대 못할 거다.

 설아도 일명 풋내길을 좋아해서 기숙사에 갈 때 항상 그쪽으로 간다고 했다. 난 맞장구치지는 않았지만 내심 기뻤다. 설아는 참 성실했다. 낭만파음악산책 강의는 월, 수 1교시였는데, 난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 일삼았다. 모범생인 설아는 결석하는 일이 없었다. 효성이가 알려준 말이다.



돈 키호테도 괜찮을 거야

버즈, 비망록 (스물의 노래)



 손효성은 청주에서 올라온 기숙사 룸메이트다. 국어교육과인 그는 맨날 앉아서 공부만 했다. 항상 누군가를 마음에 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았고 만남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효성이는 쾌활하고 정감 있었다. 우리는 이따금 저녁을 같이 먹었고 나는 술을 마시러, 그는 공부를 하러 헤어졌다. 2학기에 설아까지 셋이 친해지기 전까지는 나도 효성이와 크게 가까웠던 것 같지는 않다. 효성이는 내가 설아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설아의 출석 여부를 내게 전해주었다.


 어쩌다 설아와 부쩍 친해졌지만, 난 그녀가 어려웠다. 스물의 봄이 지고 여름이 휘파람을 불어도 난 그녀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설아는 내 연락을 기다리는 듯했지만 여전히 더 나서지 않았고, 나중에 셋이 친해지고는 효성이와도 연락을 꽤 주고받는 듯했다. 우린 늘 손짓으로 작별했고, 난 꼭 그 손짓의 일렁임처럼 그녀가 혼란스러웠다.

 5월 말, 난 축제 분위기에 반쯤 얼이 나가서 그만 그녀에게 우를 범했다. 설아는 문득 왜 자기에게 까칠하게 구냐고 물었고, 난 좋아해서 그런가 보다고 답했다. 다음 날 제정신으로 사과하니 그녀는 괜찮다고 말했다. 난 미안한 한편 설아의 능숙함에 놀랐다. 마음이 놓이면서도 아팠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우리는 각자의 장소로 돌아갔지만, 난 곧 설아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 학과의 농촌 봉사활동 장소는 설아의 본가와 가까웠다. 설아가 자꾸 알 듯 말 듯한 얘기를 해서 난 얘가 어디가 이상해졌나, 생각했다. 그러다 마지막 밤, 설아는 불쑥 내가 있는 곳에 찾아왔다. 와서 밥 떨어지지 않았냐며 쌀을, 그것도 세 공기 정도나 될 양을 던져놓고는 툴툴거렸다. 그날 그 모습이 참 예뻐서 난 슬펐다.

 7월 7일, 난 사회학과 동기들과 자주 가던 단골집에서 생일 파티를 했다. 마침 학교에 볼일이 있어 와 있던 설아도 느지막이 찾아왔다. 난 설아의 존재를 아는 종성이와 은정이에게 나머지 친구들을 부탁하고, 설아를 터미널에 데려다 줬다. 설아는 어떻게 구했는지 전람회 2집 테이프를 선물했다.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원서를 넣고 돌아가던 차 안에서 담임 선생님께서 틀어주신 음악이다.



쉴 곳을 찾아서 결국 또 난 여기까지 왔지

전람회, 이방인



 장대비가 쏟아지던 어둠 속으로 설키던 이방인의 선율은 분명 나의 어딘가를 바꿔놓았다고 그녀에게 이야기했었다.

 설아가 좋아하던 동물원 8집은 이제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내가 본 마지막 테이프를 그녀가 나에게 주었고, 난 그걸 라일락 덤불 깊숙이 전람회 2집과 함께 넣어두고 먼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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