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꽃을 받아들며 설아의 손을 잡았다. 첫눈이 그친 밤은 따스했다. 우린 매양 지나다니던 풋내길 계단참에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설아는 내 손이 너무 차갑댔다. 난 그녀가 앉을 자리의 눈을 쓸어서 그렇다고 답했다. 설아는 다정스레 미소지었다. 그녀는 맘만 먹으면 어느 계절이든 입꼬리에 걸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12월 1일이 지나기 전, 첫눈이 그치기 전에, 난 그해 2월 첫눈에 반한 소녀에게 고백받았다. 달리 기적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장혜진, 1994년 어느 늦은 밤
내 몇 안 되는 독자들이여, 이쯤에서, 열 달씩이나 되는 기간 동안 내가 무얼 했는지는 지나칠 정도로 소명했다. 하면 설아는 왜 그렇게까지 긴 준비기간을 가져갔냐는 의문이 들 것이다. 설아는 내가 아니고, 독자들 중 누구도 아니기에 정답은 없다. 다만 추측해본다. 몇은 그 시절에 듣고 느낀 바에서, 몇은 이제 와 보이는 것으로 설아의 진심을 헤아려보려 한다.
설령 맞춘들 하로동선(夏爐冬扇), 아예 엇나가지나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만우절 행사날 설아에게 인사했을 때 그녀는 내가 누군지 몰랐다. 낭만파음악산책 강의를 같이 듣는다니까 그렇거니 했을 뿐이다. 내가 본의 아니게 얼굴 도장을 찍은 덕에 클래식 어쩌고, 하며 접근했을 때는 설아도 웃으면서 받았다. 하지만 그 웃음은 상투적이었다. 그녀는 내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내가 설아의 동기와 의도적으로 친해진 뒤 그녀도 있는 모임에 나갔을 때, 비로소 설아는 참 신기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단다. 그쯤 되니 자기도 친해질까 싶어 흔쾌히 번호를 넘겼다고 했다. 내 삼고초려 작전이 적중한 셈이다.
그러나 설아는 그때조차 내가 자기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은 안 했단다. 단지 오지랖이 무지하게 넓은 전형적인 마당발로 보았을 뿐······. 게다가 하도 대중없이 친절하게 구니까 원래 그런 인간인 줄로 생각했단다. 술자리를 가질 때 데리러 와도 주위의 의심을 제일 안 받을 것 같은 성격. 그게 나였던 것이다.
난 그걸 모르고, 그녀가 날 부를 때마다 차츰 그녀 마음이 나와 공명共鳴한다고 여겼다. 기실 그런 것이, 설아가 날 달리 본 것도 결국 그때 중 하나이기는 했다. 설아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비단길2강연호라는 시를 외워간 적이 있다. 그때 그녀는 내가 참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단다.
근데 왜 이후로 한참을 못 사귀었냐고? 글쎄, 기왕에 얘기하는 김에 생각 정리도 할 겸 장황하게 적는다.
청춘의 사랑법은 실로 다채롭다. 눈이 맞고 연인으로 발전하는 기간도 천차만별이다. 적당히 경험 쌓이고 나이도 먹은 친구들은 곧잘 사귀기 전의 간질간질한 기분이 제일 좋다고 한다. 소위 '썸'이라 부르는 그 기간은 대신 너무 오래 끌면 안 된단다. 난 그 말에 대해 퍽 오래 생각해 보았다. 설아와 내가 연애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장대하기도 하고, 나도 그때를 가장 꼼꼼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글쎄, 헤어진 후에 돌아보면, '썸'의 기간이 연애의 기간보다 비교적 일관된 감정으로 정리돼서가 아닐까? 일단 연애를 시작하면 국면이 전환된다. 두 자아가 본격적으로 부딪치기 시작하면서 갖은 상처가 관계의 기저에 도사린다. '썸'은 그런 게 없다. 그때 방황하고 힘든 건 나중에 보면 정겹다. 결국 원하는 바를 이뤘기 때문이다. 성공의 감흥까지 더해져 그 기억은 일품이다. 게다가 연애는 보통 '썸'보다 기간이 길어서, 있었던 일들을 쭉 정리하기 버겁다. 연애 후의 기억은 편린에 가깝게, 전의 기억은 통시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썸'은 지난했다. 왜 그랬을까?
첫째, 설아는 사람을 알아가는 데 오래 걸렸다. 좋아하는 감정이 들어도, 그 사람을 사랑해도 될지를 숙고했다. 이런 사람들은 주변의 도움도 잘 받지 않는다. 확신은 남이 가지게 할 수 없고, 만일 남으로 인해 가진다면 곧 후회한다는 걸 굳게 믿는 유형인 것이다. 이들의 사랑은 대신 무겁다. 이들은 깊이 좋아한다. 연애가 비록 뜨겁지 않을지라도 괜찮다는 명제를 거부하며, 마침내 그 순간이 오면 모든 걸 건다. 설아는 지고지순했다. 이 단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더할 수 없이 높고 순수하다"고 적혀 있다. 인명형용사전이 있다면 난 ‘유설아하다’에 대한 설명을 그렇게 두고 싶다. 설아는 그 드높은 순수함으로 가없는 사랑의 바다를 유영했다.
둘째, 나의 방어기제가 작동했다. 설아에게 허투루 고백해버린 뒤로, 난 그녀에게 제대로 마음을 표현하는 대신 외려 까탈스럽게 대하는 방식을 취했다. 설아가 뭘 좋아하는지, 혹은 싫어하는지 알면서 일부러 말을 툭툭 뱉었다. 이는 본심을 드러내기 두려워하는 습관이자 상처받기 싫은 마음의 발로였다. 게다가 난 설아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극구 믿었다. 그녀의 보인 단면을 전부에 덧입힌 것이다.
셋째, 설아는 그런 내 모습의 원인제공자가 본인이라는 죄책감으로 겉돌았다. 축제날의 취중 진담 사건 이후 내가 도망치려 하자 설아는 어쩔 줄 몰라했다. 아직 유년의 티를 못 벗은 스물이 그렇다. 상대의 마음을 잘 모르고, 얼결에 상처를 주고, 서로의 의도를 부정적인 쪽으로 해석하곤 한다. 감수성이 예민하며 이타적이되 고집 센 사람이면 더하다. 우린 그런 면에서 비슷했다. 다만, 설아의 마음은 계속 커져갔다. 설아 또한 나를 잃는 게 싫었단다. 본인의 진심을 알리되 혹시 고백했다 거절당하면 안 되니 괜히 쌀을 갖다준다던가, 영화를 보자던가, 매주 밥을 먹자던가, 하는 식으로 노력했던 것이다. 소개를 받겠다고 얘기하는 마당에 차마 대놓고 만류는 못하고, 들입다 전화를 걸어서 방해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설아도 나 때문에 참 고생이 많았다.
넷째, 그 끝에서 결국 용기낸 건 설아였다. 며칠째 연락을 받지 않는 나에게 찾아와서 고백했다. 첫눈이 오는 날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했으면 몇 달은 빨랐을 것이다. 난 여러모로 설아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효성이가 설아를 좋아했는지, 나와 설아의 관계를 도와주려던 것인지는 모른다. 그는 언제나 우리를 응원했고, 헤어진 후에는 내 곁을 지켜주었다. 효성이는 비슷한 시기에 누군가를 만났고, 오래 사귀었으며,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내가 효성이의 마음을 영영 모르는 까닭이다. 난 효성이에게도, 설아에게도 그날 풋내길을 걸어가며 어떤 다정한 이야기를 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알아낸들 달라지는 것이 없을지언정, 난 효성이가 우리의 간이역이 되어주었다고 믿기로 했다.
레드벨벳(Red Velvet), Feel My Rhythm
가없는 사랑의 바다. 해와 달, 살별과 산들바람. 망설이다 길 잃어도 끝내 윤슬만은 찬란하던 바닷가. 그곳에서 난 좌초되었다. 설아를 두고 떠나며 이제 배는 가벼우리라, 북극만을 바라보리라 다짐했건만, 설아를 내버려둔 섬은 그대로 바다를 탈출했고 난 아직 대양(大洋)을 헤맨다. 그 무인도가 바다 위에 뜬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잠겨 있었다는 걸, 그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