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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각의 비망록 Jul 19. 2024

프롤로그

Pat Metheny, Last Train Home



설아에게


 지난 여름이었지, 삿포로에 가기로 다짐한 건.

 늦은 답장을 용서하기 바란다. 네 편지를 받은 지도 벌써 2년이 넘어가는구나. 이기적인 구성이었어. 진솔한 글씨체에 카세트 테이프라니. 내 기억을 들추는 일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은 모양이더군. 하지만 괜찮아. 알다시피 난 널 잊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무척 반갑고 떨리는 일이었단다.

 기억하니? 언젠가 순천만에 가자던 약속. 아마 첫눈이 내리던 날이었을 거야. 자주 가던 식당 바닥에 눈자국이 찍히던 저녁, 넌 수줍게 내게 말했지. 전국에 눈 예보가 나면 순천만에 가자고. 그곳에서 노래를 불러 달라고. 내가 만든 노래를.

 난 아직껏 순천만에 가보지 못했어. 차마 가볼 자신이 없더라. 다행히 너의 마지막 편지를 받은 해 전국적인 눈은 한 번도 없었단다. 난 중부지방에 주로 머물렀는데, 남쪽에도 간간이 싸라기눈이 내린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쌓이는지는 몰랐어. 내가 보지 못한 걸까? 아니면 오지 않은 걸까. 아니, 어쩌면 우리나라에 전국적인 눈 예보란 없는 건지도 몰라.

 그러던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난 전국에 눈 예보가 나는 곳에 가야겠다는 우스꽝스러운 다짐을 하게 되었어. 너에 관한 생각은 이미 닳을 대로 닳아버렸지만, 난 가끔씩, 여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너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어. 그거야말로 우스운 일도 없을 테지. 삿포로에 간다는 건 그런 몽상의 연장선이었나 봐. 심지어 전역한 뒤에는 까맣게 잊어버렸어. 난 끊임없이 널 잊으려 노력했기 때문에 그 몽상을 떠올릴 겨를이 없었던 것 같아. 바쁘기도 했지. 바쁘면 잊힐 줄로 생각했단다. 난 너를 진심으로 잊고 싶었어.

 2024년 2월 중순, 마지막 한 주가 꽤 여유롭다는 걸 알았을 때 불현듯 삿포로가 눈앞을 스치더구나. 급하게 표를 예매하고, 사람을 구하고, 다행히 친한 친구와 함께 떠나게 되었어.

 여행에 관한 기록을 보내면 어떨까 싶네. 5일간의 짧은 여행은 갈대 같은 모험이었어. 어쩌면 너를 잊게 되었다고도 생각했지. 네가 내 여행하는 모습을 좋아했던 게 떠올라. 내키지는 않겠지만, 네가 가볍게 떠올릴 법한 나의 모습을 보내려니 부디 이해를 바라. 마지막이니까. 이건 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이자 일기이고, 참 오랜만에 쓰는 감각의 비망록이다.

 그 모든 시간에 쌓이는 눈송이. 뒤돌아보다, 아파하다, 그리워하다, 바라다, 기다리다, 미안해하다, 짐작하다, 슬퍼하다, 미워하다, 고마워하다, 나아가다, 만회하려다. 설아야, 잊으려는 건 아닌데 무뎌져 간다. 네가 내 하루에 깃드는 시간이 줄어든다. 덜컥 네가 잊힌다.



2024. 3. 4.

김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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