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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각의 비망록 Jul 26. 2024

제리 초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김기림, 바다와 나비



 다만 설아에게. 어쩌면 이 기행문은 일견 공적으로 변용되었으되 혹 서운해 말기를. 이 또한 나의 모습이니. 넌 이미 짐작했겠지만, 내 감각의 비망록은 여전히 그리고 온전히 너만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랑도 그랬던 걸까. 그래서 결국 비참했던 걸까.

 변명처럼 몇 글자 너를 위한 문장을 적어 본다. 이 말들 또한 휘발되지 않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못하는 채로. 너를 이제껏 사랑하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채로. 글쎄, 적어도 세상은 그렇다. 세상은 내가 너를 아직 사랑한다는 걸 이쯤에선 한심하게 여긴다.

 설아야, 내가 돌아다닌 많은 걸음 속에 너에 관한 짐작이 없던 것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무수히 찾던 정답은 실은 모조리 너로 귀결될지 모르지. 난 너를 그리워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끝없는 시간의 늪에 던진 질문은 대체로 널 잊으려는 발버둥이었다.

 그래도 난, 이제는, 비로소 말이지. 널 잊고 싶다. 널 잊어야만 나도 더 넓은 세상의 기운을 머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널 담보로 한 많은 여신(餘燼)이 다 재가 됐어. 난 나아가야 한다. 불을 지피며, 다시 이제부터.


 비에이에 다녀오던 날 밤, 부타 헤이에서 나온 친구와 난 섭섭한 마음에 거리를 헤맸지만 헛일이었다. 상점들은 대부분 닫혀 있었고, 그나마도 열린 곳은 식객들이 와글거렸다. 우린 숙소 옆길을 전전하며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어느 가건물의 지하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눈에 들었다. 계단 아래로 빛이 묘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번뜩하는 기대감에 너나없이 밀고 들어간 그곳은 마치 도매시장 실내의 골목 같았다. 번쩍거리는 네온샤인들 사이로 암갈색 문 하나가 조용히 서 있었다. 도무지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문이었다. 우린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LP로 선반을 가득 채운 가게에 흡사 본 조비와 같이 긴 곱슬머리를 늘어뜨린 노인이 홀로 졸고 있었다. 문이 닫히며 뽀얀 먼지가 일었다.

 그곳은 알고 보니 일명 '제리 초,' 연인들이 백 년의 가약을 약속하는 곳, 무명의 재즈 뮤지션들이 일생을 걸어 갈구하는 오아시스, 굴지의 연금술, 여느 가객들이 타르티니의 계약을 완수하고 돌아와 여생을 정리하는 곳. 음악에 한 번쯤 사활을 걸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그 제리 초였다. 아, 그걸 깨달은 당시의 내 감흥을 어찌 부연할 수 있을까. 나는 물론이거니와 나중에 주변의 많은 악동들에게 이를 전했을 때 그들이 받은 충격을 일일이 전하자면 한이 없다. 왜냐하면, 제리 초는 우리 음악인들에게 일종의 전설적인 위명(威名),  순례의 성지였기 때문이다. 거트루드 스타인의 서가, 비틀스의 애비 로드, 릴케의 두이노 성, 정지용의 카페 프란스, 딥티크의 오르페옹처럼.



하늘문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박목월, 나무



 설아야, 어떨까. 제리 초, 그 불후의 이름을 너도 참 많이 궁금해했잖아. 기억하고 있단다. 물론 그게 다 나를 위해서였다는 것도 알고. 이 얘기를 그때 들었으면, 꼭 네 일처럼 기뻐할 것만 같아. 그럴 너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내가 잘못 짐작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겠지.

 우린 구석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인장이 눈치챌 때까지 기다렸다. 난 깨우려는 친구를 말렸고, 친구는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고마웠다. 이후의 꾸벅거림까지도 난 모두 고맙다고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 친구는 본디 음악을 사랑하지만 취미에 그치며, 제리 초를 영접한 내 감흥을 결코 알 리 없기 때문이다.

 그래, 내 몇 안 되는 독자들이여. 이해를 바라며, 제리 초는 정녕 나 같은 무명의 음악인들에겐 행운의 징표다. 당신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흥미를 잃었다면 이쯤에서 돌아가도 좋다. 하지만 난 또한 궁금해진다. 어느 누가 나의 글에 관심이나 가지겠는가? 이 망명도생을. 결국 무색하지 않은가. 당신은 나의 무정한 내일을 알고 있다. 그러니 마음 가는 대로 떠들련다.



너에게 말하면 넌 잊어가겠지

전언호, 나무 아래에서



 언젠가 황원이 내게 소개해준 노래. '나무 아래에서.' 연극의 이해 수업이었던가. 원이 형은 이 노래를 "고도를 기다리며"의 현대적 예시로 인용했다. 약 2만 명이 이 노래를 들었다지만 아무도 일명 전언호-아마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에 대입한 것이겠지-라는 사람이 누군지 관심갖지 않는다. 노래로 미루어 그 무명 가수가 기다리는 고도-노래 속에서는 '너'로 치환된다-는 오지 못할 것이다. 예술은 전장이다, 장군들 말고는 모조리 잊힌다······. 글쎄, 어쩌면 난 이 말을 영영 잊어버렸을지 모른다. 제리 초에서, 그 전설적인 제리 초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기 전까지는. 때마침 이 가게의 주인, 하시카와 제리 초는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난 세상의 모든 음악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습니다. 시대의 예술가라면 누구라도, 지상 어딘가에서 그의 노래가 흐르고 있을 거란 믿음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방랑자'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프랑스 감독인데, 아녜스······ 베르디인지, 바르다인지, 여하튼. 상관없겠죠. 한 여자가 방랑하다 죽는 영화인데, 아주 묘해요. 왜 떠도는지, 왜 죽는지, 왜 사는지. 영화가 끝나고도 그 여자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게 거의 없어요. 이건 뭐지, 황당한 채로 있는데 극장 미화원이 나가라고 합디다.

 그때가 1985년이었으니까, 벌써 40년 전이군요. 난 젊었어요. 마르세유에서 바를 운영하고 있었죠. 손님들이 틀어달라고 하는 음악이 마음에 안 들면 짜증도 냈고, 만취한 채 밤새 영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의 선술집은 특히 겨울에 인기가 좋습니다. 어떤 류의 사람이 오는지 종잡을 수도 없어요. 사람 마음이 다 비슷하죠. 날이 추우면 고적한 기분도, 사랑하는 기분도 다 한 곳에 모이는 겁니다. 난 영화를 본 직후라 상당히 몽롱한 채로 사람들을 둘러봤습니다.

 그때 웬 사내 두 명이 문을 쾅 열고 들어오더군요. 한 명은 호리호리한 체격에 왼손에는 장우산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레슬링 선수마냥 큼지막했어요. 생긴 거로 보아 이녁 사람은 아닌 것 같았죠. 자리를 잡고 앉아서 코냑을 시키더니 어찌나 크게 떠들던지, 아직도 그 덩치 큰 놈이 상대를 부르던 말은 기억이 납니다. 라비크. 이름은 프랑스 식이지만 아마 게르만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술을 마시니 코가 빨개지더군요.

 난 한창 혈기왕성하던 때라, 눈앞에 보이는 아무 술이나 병째로 들이키고 그들에게 다가가 대뜸 나가라고 말했죠. 덩치 큰 놈은 안 어울리게 당황하며, 이내 사과를 하더군요. 맞은편의 라비크는 시종 냉소를 보내고 있었어요. 난 기분이 상해서 대체 뭐가 웃기길래 입꼬리가 그렇게 기냐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라비크는 예의 그 냉혈한의 눈길로 나를 한 차례 훑어보더니, 천천히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 동양인 아니오? 우리도 이방인이오. 앉으시오. 한 잔 합시다.

 난 그 사람이 내가 가게의 주인인 걸 모르고 하는 소리인 줄 알고 화내려다, 그의 어투와 눈빛에 묘한 끌림을 느껴 그대로 앉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듣고 보니 그들은 아주 특이한 여정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더 늦기 전에 진정한 삶의 이유를 찾을 곳에 정착한다는 목적의, 아무튼간에 시한 없는 방랑이었습니다. 예상대로 라비크는 독일인이었고, 모로소프, 레슬링 선수 같은 양반, 은 러시아인이었는데, 둘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나 흘러흘러 이 마르세유의 허름한 재즈 바에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들과 나눈 정담의 끝이 어찌됐는지, 내가 다른 고객들을 어떻게 챙겼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불쑥 들이닥친 한 무리의 사람들 때문에 바 안은 아수라장이 됐고, 간신히 정신을 차려 보니 라비크와 모로소프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남기고 간 레포사도 반 병과 허름한 쪽지, 거기에는 대충 휘갈겨 쓴 단어의 조합이 들어 있었습니다.


 Journey, Evergreen, Range Rover, Yosemite, Carpenters, Hurting Each Other


 맞습니다. 두문자어로 제리 초(Jerry Cheo)가 되죠. 왜 그런 단어들을 적어놨는지는 모르겠지만, 요리조리 붙여 보니 꽤 그럴싸한 의미가 되더군요. 레인지 로버를 타고 카펜터스의 ‘상처입은 사람들’을 들으며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주유(周遊)하는 사철 푸르른 시절의 여정. 난 그 대단찮은 우연을 기억하는 동시에, 그날 두 번이나 마주한 방랑의 의미를 새기고자 제리 초라는 이름을 지어서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로 상점을 팔아버렸어요. 이후에는 피아노가 있는 어디든 돌아다녔고, 마음이 들면 그때그때 가게를 차렸다가 질리면 팔았습니다. 이 나이를 먹도록 한 곳에 머문 적은 없습니다. 그때부터 내 이름이 예술계에 퍼지기 시작하더군요. 내게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귀찮아서 더 도망다녔는데, 그게 외려 날 유명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온갖 영웅담까지 떠돌더군요. 하지만 진실은 내가 이야기한 바대로입니다. 내 이름이 방랑자의 초상이자 세렌디피디의 상징이 된 것은 모두 그날, 라비크와 모로소프를 만난 1985년 12월 7일부터의 일입니다. 나머지는 상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갖다 붙인 낭설들일 뿐이에요.

 그러니 젊은이들이여, 모르기는 하되 그대들의 앞날은 뚜렷하게 빛날 것 같군요. 늙은 탓에 내 눈은 전에 없이 현명하니 축복으로 받아들여도 좋습니다. 나를 만난 것을 긍정의 신호로 생각한다면 고맙지요. 하지만 거기에 기대지는 마십시오. 이 세상에는 스스로를 예술가라 주장하는, 우리에 갇힌 표범의 눈을 한 자들이 너무도 많아요. 끊임없이 움직이고 고심해서 결연한 눈매를 지니도록 하십시오. 오랜 세월이 지나 많은 것이 변하고도 그 눈만은 당신을 온전히 설명해줄 겁니다.

 아, 그 말을 안 했네요. 비에이에 갈 일이 있다면 내 오랜 친구에게 안부를 전해주십시오. 제루부 언덕 한가운데 무역풍이라는 이름의 산장이 한 채 있을 겁니다. 그곳의 주인은 나의 무척 소중한 벗입니다. 얼마 전에 실종 사건이 벌어졌다는데······, 주의해서 다녀오기 바랍니다.


 글쎄요.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오래된 삼단 논법이 떠오르는군요. 답을 구하려고 설원을 찾으려거든 그 속에 눈밖에 없다는 건 알고 가라. 폭풍우를 헤쳐도, 담장을 넘어도 오직 눈. 눈은 설원의 모든 것, 그러니 답은 눈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이 성냥통을 가져가십시오. 모든 시간에 행운이 깃들길······.


 김진훈, 방랑의 향방 - 제리 초를 추억하며



 이쯤에서 난 친구를 돌아봤다. 그가 전날 부타 헤이에서 한 말과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친구는 뚝뚝 고개를 떨구며 졸고 있었다. 난 일명 ‘눈보라 편지’에 담긴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제리 초는 그 이상은 자기도 모르겠다며, 되려 아직 꺼내지도 않은 오타루 여행 계획을 물었다. 본인의 쌍둥이 동생이 운영하는 데스페라(Despera)라는 바를 알려주며, 그 역시 안부를 전해달라더니 생맥주 제조기가 가득 든 창고로 들어가버렸다.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나도 피로해졌다. 친구는 벌써 꿈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흔들어 깨워 숙소로 돌아갔다.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Simon and Garfunkel, The Sound of Silence



 그렇게 다음 날이 밝았고, 난 전혀 예상치 못한 두 가지 의문을 안고 오타루행 해안열차를 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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