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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훈이 Mar 30. 2017

아홉번째, 미니식빵집 롤링핀

내가 변한 것이든 네가 변한 것이든

빵집 : 롤링핀

위치 : ....전국 각지

메뉴 : 귀여운 미니식빵, 계절과일 패스츄리, 담백한 하드빵, 브런치 메뉴와 각종 커피







몇년 째 밥 대신 빵을 먹고 있지만, 식빵은 즐기지 않는다. 작정하고 샌드위치를 해 먹거나 브런치 만들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지 않는 편이니까. 이유는 단순했다. 이렇다 할 식감도 맛도 없는(무맛) 흰 식빵은 마치 반찬 없이 흰 쌀밥만 씹어 넘기는 느낌과 비슷해서 재미가 없었다.



지금이야 온갖 부재료를 품은 식빵 전문점들이 많지만, 처음 빵을 좋아했을 땐 식빵 전문점이 귀했다.그런 내게 롤링핀은 운명처럼 다가 온 베이커리였다. 손바닥만한 식빵 속에 쫄깃한 찹쌀(사실은 타피오카)과 달콤한 팥배기가 들어있는 작은 식빵. 평소 우유식빵과 옥수수식빵 밖에 몰랐던 내겐 큰 충격이었다. 이런 식빵이라면 매끼니 먹어도 좋을 것 같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었다.



압구정 식빵이 태어난 곳



압구정 어느 골목에 위치했던 롤링핀 본점. 따스한 갈색 실내와 우아한 글씨체가 어우러져 고급스러움을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유리 진열장 안엔 시간대 별로 각기 다른 빵들이 놓여 있었고, 단정한 유니폼 차림의 직원분들이 즉석에서 빵을 잘라 시식도 시켜주곤 했었다. 크기에 비해 가격대는 높았고 친절하고 정겨운 동네 빵집 느낌은 아니었지만 롤링핀에서 파는 빵들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이름부터 포스가 느껴지는 압구정 식빵을 시작으로 고구마, 블루베리, 치즈 등 다양한 식재료를 품은 미니 식빵들이 주 메뉴였고 버터 브레첼과 스콘도 인기 있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 같던 고르곤졸라 브레첼은 늘 품절이어서 끝끝내 먹어 보지 못했고, 고소한 하드빵과 크림치즈가 넘치게 든 치아바타도 유명했다.





버스 한 번이면 가지만 왠지 멀게 느껴져서 자주 가진 못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냈다.





백화점에 입점해 늦은 저녁 마감 세일을 하는가 하면 이름도 낯선 고덕동에 브런치 카페로 나타나기도 했고, 저 멀리 대구에서도 롤링핀 스타일의 빵이 등장했다. 빵집에 따라 다른 지역명이 들어가기도 했지만, 그건 누가봐도 압구정 식빵이었다. 찹쌀과 팥배기가 가득한 미니 식빵.






그렇게 롤링핀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고 대중에게 친숙한 빵집으로 자리 잡아 갔다. 그리고 최근에는, 압구정 본점이 자취를 감추었다.






동네 빵집의 프랜차이즈화. 어쩌면 처음부터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빵집이 아니었을 지도 모르지만, 롤링핀의 성장을 보며 나는 신기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가맹점과 가맹점 주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쩐지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어서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 전공 수업으로 프랜차이즈 경영론을 들은 보람이 없다.) 그렇게 롤링핀과의 거리는 줄었으나 마음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고, 발걸음은 더더욱 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롤링핀이 지방 소도시에도 입점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학창시절을 보낸 곳으로, 동네 빵집이 매우 귀한 지역. 언젠가 한 번 사다 드린 롤링핀의 빵을 맛있게 드시던 엄마가 생각났고, 새초롬하게 매장 문을 열었다. 서울에서 볼 수 없는 드 넓은 공간과 가지런히 포장된 빵들, 양손 가득 빵을 사가는 손님들을 보며 이에 질세라 트레이 가득 빵을 담았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갓나온 시그니처 식빵 하나, 이 동네에서 귀한 페스츄리도 하나, 나도 엄마도 좋아하는 크림치즈 치아바타는 두 개.







처음의 새침함은 어디로 가고 신이 나서 매장을 나서는 나를 보며 헛웃음이 났다. 그리고 동시에 전국에 지점을 갖춘 프랜차이즈의 장점을 알았다. 매장이 늘어난다는 것은 멀리 있는 이들에게도 같은 경험의 기회를 준다는 것을 의미하는 구나.



생각을 바꾸고 나니 나의 시선도 조금 부드러워졌고, 진정한 배움은 경험에서 나온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다만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려도 된다면, 압구정에 있을 때 가장 맛있었던 그 식빵 맛이 돌아왔음 좋겠다. (오랜 만에 먹은 롤링핀 빵은 조금 실망스러웠기에.)





저 멀리 부산에서 먹는 빵과 집 근처 백화점에서 산 빵, 사라진 본점의 빵맛이 같아야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의미가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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