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훈이 Jun 29. 2017

순천 화월당

그곳엔 추억이 있다


나이를 떠나서, 누구에게나 추억 깃든 빵집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식물성 생크림에 통조림 체리가 올라간 케이크를 팔던 그 옛날 동네 빵집일 수도 있고, 프랑스 바게트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파리의 빵집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그 사람과 함께해서 괜스레 기억에 남는 서울 어딘 가의 빵집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순천 화월당이 그렇다.





어릴 때부터 슈퍼 빵이든 프랜차이즈 빵집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었던 내가 유일하게 못 먹는 건 크림 듬뿍 올라간 케이크였다. 건포도 콕콕 박힌 시트도 싫었고, 미끄덩한 기름 맛에 느글거리는 위장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촛불은 불고 싶었지만 먹을 자신이 없었던 나는 늘 케이크 없는 생일을 보내곤 했다. 


철도 씹어 먹는 여고생이 된 이후에서야 케이크와 좀 친해졌다. 이벤트에 굶주렸던 우리는 학급 구성원의 생일이 되면 반 전체가 한 푼 두 푼 모아 케이크를 샀고 자연스레 매 달 2회 정도 케이크를 먹었다. 고사이 프랜차이즈 빵집의 퀄리티도 많이 좋아졌고, 인 당 포크질 세네 번이면 케이크가 초토화되었기에 속이 뒤집어질 정도의 양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땐 먹을 거라면 뭐든 좋았어서 - 느끼하다는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처음 화월당이 등장한 게 누구의 생일날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야간 자율학습 쉬는 시간, 불이 꺼지고 프랜차이즈의 파란 상자 대신 등장한 아담한 빨간 상자. 화려한 무늬와 영어가 적혀 있었지만 지독하게 촌스러운 그런 상자였다. 그 안에 담긴 케이크는 카스테라 가루 듬뿍 뿌려진 고구마 케이크였다. 초콜릿 조각 하나가 데코의 전부인, 상자만큼이나 촌스럽고 수수한 케이크. 하지만 촛불 끄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여고생들에게 비주얼이 중요할 리 없었다. 그저 한 판에 만원이라는 매력적인 가격에 감탄하며, 도전정신 투철한 용사를 칭찬했을 뿐이었다




초에 불을 붙이고, 노래를 부르고, 형식적인 커팅식을 끝낸 우리는 초콜릿 한 조각을 주인공 입에 쏙 넣어준 후, 여고생의 진면모를 드러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포크 질의 향연. 석식을 먹었어도 위장은 언제나 비어있었기에 미니 케이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예쁘게 빚어낸 케이크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는 건 평소와 다를 바 없었으나, 케이크의 맛은 몹시 익숙하지 않았다. 묵직한 고구마와 포슬포슬한 카스테라 가루, 뒤 끝없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생크림과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 나는 그 날 처음으로 케이크가 '맛있다'라고 생각했다. 

바로 옆 곱창 골목은 줄기차게 드나들면서도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옛날 빵집, 화월당이 존재감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이후 화월당은 나의 단골 가게가 되었다. 14반 베스트 프렌드의 생일, 밤 11시에 시작되는 과외 수업에서 열린 생일 파티에서도 늘 화월당을 떠올렸고 빨간 상자를 소중하게 안은 채 셔틀버스에 오르곤 했다. 이 곳의 고구마 케이크에 길들여진 입맛을 안고 학교를 떠나던 날, 아쉬운 마음에 아빠를 졸라 화월당으로 향했다. 그날도 고구마 케이크 한 판을 샀고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케이크 한 판을 비웠다. 한 판이라 해봤자 조각 케이크 2~3개 합쳐진 양이었지만 그것은 역사적인 순간이자, 아빠 손잡고 케이크를 고르는 나의 오랜 꿈이 이뤄진 날이기도 했다. 



그렇게 성인으로써의 삶이 시작됨과 함께 우리 집에도 케이크의 세계가 열리는가 싶었는데, 그 날 이후 나는 화월당 케이크를 두 번 다시 맛볼 수 없었다. 






졸업 후 서울로 대학을 온 덕분에 다양한 디저트를 맛보았다. 여전히 단 것에는 취약했으나 커피의 세계에 눈을 떠 맛을 중화하는 법을 배웠고, 디저트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며 당분을 접하는 횟수 자체가 크게 늘었다. 그래서 몇 달 후, '나 이제 맛 좀 알지'라는 자만에 빠져 다시 화월당을 찾았는데, 이게 웬걸. 케이크가 있던 쇼케이스에는 오래된 찻잔들이 즐비했고, 단팥빵, 슈크림빵 등 단과자 빵이 있던 매대에는 누군가가 이미 예약한 혹은 전국 각지로 배송될 볼 카스테라와 찹쌀떡 상자만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원래 유명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부터 팥앙금 품은 볼 카스테라와 부드러운 찹쌀떡은 화월당의 시그니처 메뉴로 입소문 났다. 매스컴에 등장하며 전국에서 택배 주문이 밀려들었고, 낱개 구입 자체가 어려운 날들도 이어졌다. 


치즈처럼 쭉 늘어나는 묽은 반죽에 씹을 것 하나 없이 곱디 고운 팥 앙금이 든 찹쌀떡. 그리고 그 언젠가 먹은 고구마 케이크의 토핑이었을 듯한 노란 카스테라 가루로 고운 앙금을 감싼 볼 카스테라.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함과 유명세에 나 역시 순천 본가에 들를 때마다 한 가득 사 오곤 했지만, 묵직한 봉투를 들고 돌아서던 길 밀려오는 허전함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추억에만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는 법. 


몇 년 전부터는 나는 화월당에 새로운 기억을 덧씌우고 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지인이 순천을 방문하면 꼭 화월당의 볼카스테라와 찹쌀떡을 선물하는 것이다. 추억의 장소가 오래오래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도 있고(물론 지금의 인기가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진 않지만), 선물을 받는 이와 내가 훗날 멀어진다 할 지라도 '아, 그때 거기!'로 나와 순천, 화월당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방법이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순천 명물 화월당의 노란 상자를 받았던 사람들은 여전히 나의 지인으로 남아있고, 몇 년 간의 공백을 깨고 연락을 해오는 이들의 입에서 화월당의 볼 카스테라와 찹쌀떡이 꼭 한 번은 등장하기 때문이다.






허전했던 공간을 가득 메운 사람들, 나날이 치솟는 인기에 예약하지 않으면 구매도 힘든 볼카스테라와 찹쌀떡, 그리고 케이크 가득했던 냉장고에 가득 찬 집기들을 보며 혹시 내가 꿈을 꿨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술자리나 모임에서 일부러 화월당 이야기를 꺼내고, 친구들과 가족들의 공감을 받으며 진짜로 그런 시절이 있었음에 위안을 얻기도 한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소식이 닿지 않는 여고 동창들처럼, 추억으로 기억되는 빵집 화월당.

나 만큼이나 다른 이들 에게도 오래오래,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본다. 






하나) 평범한 맛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세상에 둘도 없는 맛을 기대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오랜 시간을 함께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둘) 찹쌀떡, 볼 카스테라 둘 중에 뭘 사야 할지 고민되신다면, 반반으로 주문하세요. 개 당 가격이 적용되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갯수를 정할 수 있어요. 


셋) 날이 더워 팥이 쉬이 상해요. 구입 후 냉동시켰다가 하나씩 해동해 먹으면 좋습니다 :-) 커피보단 우유를 추천드려요! 



이전 05화 흑석동 프랑세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