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훈이 Mar 27. 2017

흑석동 프랑세즈

따스한 공간에 나를 숨겨줘

내가 태어나기 전, 아빠와 엄마는 흑석동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래서 가보지 않았음에도 흑석은 참 익숙한 동네였고 괜시리 정이 갔다. 딱히 가 볼 기회가 없어 늘 상상만 했었는데, 그땐 몰랐다. 흑석이 이렇게 익숙한 동네가 될 줄은.




프랑세즈라는 동네 빵집 오픈 소식을 듣고 처음 흑석동을 찾았다. 역에서 멀지 않아 초행길임에도 찾기 어렵지 않았고, 먹고 갈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햇빛 쏟아지는 창가는 아니지만 살짝 어두운 분위기가 주는 편안함이 있달까.





계단 몇 개를 내려가 문을 열면 시작되는 프랑세즈만의 공간. 카운터 너머에서는 쉴 새 없이 오븐이 돌아가고 부지런히 빵을 만드시는 인자한 쉐프님이 계신다. 몇년 째 한결같은 모습으로 수줍은 눈 인사를 건네시는 인상 좋은 쉐프님. 고요한 분이란 생각이 들다가도 갈 때마다 쏟아지는 신제품들을 보고 있자면, 누구보다 열정 가득한 분이란 생각이 든다. 



진열대 자체가 그리 크지 않음에도 프랑세즈에는 다양한 빵들이 있었는데, 몇년 전 리모델링을 거친 후에는 그 종류가 더 화려해졌다. 과하게 딱딱하지 않아 누구나 먹기 좋은 하드 계열의 빵, 한 끼 식사로 너무나도 든든한 샌드위치, 고소한 버터향이 일품인 페이스트리도 생겼고 - 디저트 카페를 방불케하는 알록달록한 케이크들과 쿠키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계절 과일 올라간 달콤한 브리오슈와 담백한 하드빵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가까스로 주문을 하고,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는다. 그제서야 편안해지는 숨, 왠지 모를 안도감. 기나긴 환승역을 걸어 지하철을 갈아타고 꼬박 한 시간을 달려온 이유는 바로 이거였다. 빵과 커피,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 공간.





구석진 자리에 숨어 나는 오랜 시간을 보냈다. 대학생일 땐 근처 학교 학생인 양 열심히 레포트를 썼고 취업 준비할 땐 몇 시간동안 자소서를 써 내려갔다. 주말엔 지인과 함께 브런치를 즐기기도 했으며, 마음 힘든 날엔 캘리그라피 노트를 들고 가 무언가를 끄적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 않는 흑석동의 특성 덕분. 눈치 보며 자리를 비켜줄 일도 없고 토요일에도 어머님들이 많지 내 또래로 북적거리는 곳은 아니었기에 예쁘게 꾸미지 않아도 마음 편히 갈 수 있었다. 





촉촉한 브리오슈 한 입에 아이스 커피 한 모금. 고소한 호두가 매력적인 하드빵 한 입에 따끈한 커피 한 모금. 준비해 온 딴짓거리들과 함께 열심히 빵 접시를 비우고 나면, 배도 마음도 든든해지며 다시금 힘이 났다.



이 넓은 서울에서 어딘가로 숨고 싶은 날. 스스로가 너무 작은 존재인 것처럼 느껴져 반짝이는 사람들로 부터 벗어나고 싶은 날. 나는 프랑세즈에서 위안을 얻는다.






하나) 포카치아 식감이 다른 곳에 비해 유독 퐁신하고 쫄깃해요. 짭짤한 거 좋아하시면 드셔보세요 :)


둘) 여름이면 저 멀리 해남에서 올라온 팥을 직접 끓여 만든 팥빙수를 팔아요. 우유빙수는 아니어도 투박한 매력이 있는 빙수니까 놓치지 마세요.


셋) 느끼하지 않은 우유 생크림을 사용하는 곳이에요. 특별한 날 케이크가 필요하시다면 추천드립니다. 




이전 04화 자양동 뺑드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