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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훈이 Mar 22. 2017

도화동 프릳츠 커피 컴퍼니

커피랑 빵이랑 오손도손 살아요



오래 전 합정 골목 가에 오븐과 주전자라는 빵집이 있었다. 빵 만드는 셰프님을 상징하는 오븐과 커피 만드시는 사모님을 상징하는 주전자의 조합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크랜베리초코통밀빵이 맛있었고 겉은 바삭 속은 쫄깃한 깜빠뉴 시리즈를 정말 좋아했었는데, 갑작스러운 영업 종료로 나는 갈 곳을 잃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븐과 주전자는 거짓말처럼 돌아왔다.

전혀 생각지 못한 위치에. 생각지 못한 형태로.




지금은 너무나도 유명한 브랜드가 된 프릳츠커피컴퍼니. 동네 카페, 장보기 플랫폼에서도 이곳의 원두를 쉽게 만날 수 있어 별 감흥 없을 수 있지만, 처음 프릳츠가 등장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카페가 이렇게 화제성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빈틈없는 브랜딩에 충격을 받았다. 


 공덕역과 마포역 사이의 주택을 개조한 그곳은 입구부터 남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90년대에 태어난 내가 익숙하지 않은, 나보다 훨씬 이전의 느낌이랄까. 대문을 들어가는 순간 서울을 벗어나 다른 세계로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생경했다. 


 첫 방문은 신장개업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추운 겨울이었는데, 볼거리가 많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밀가루 반죽에 귤 한 알을 통째로 넣어 노릇하게 튀겨낸 후, 설탕에 돌돌 굴린 도나쓰도 봐야겠고 감각적인 손글씨와 빨간 조명 아래 놓인 빈티지한 가구들도 보고 싶고. 이색적인 메뉴와 풍경에 기분 좋은 현기증이 밀려왔다.





고요한 프릳츠커피컴퍼니는 가본 적 없는 중국의 오랜 건물을 연상케 했다. 나무 벽에 약간 붉은기가 도는 조명,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테이블과 의자, 빈티지한 접시까지. 참으로 옛스럽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였으나 그 안에 담긴 배려는 어느 곳보다 세련미 넘쳤다. 동색의 콘센트와 본 적 없는 세면대 모양의 식수대. 모든 게 과거를 지향하는 이곳과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지만, 청결함을 보장하는 최신식 물비누까지 갖춰진 모습을 보며 센스란 이런 것이구나를 제대로 느꼈다.





주문한 빵과 음료를 받아 자리로 향했다.

시작은 늘 먹는 크랜베리 깜빠뉴. 파사삭하고 부서지는 바삭한 크러스트 사이에 쫄깃한 크럼, 고소한 호두와 달콤한 크랜베리가 만난 빵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조합이지만 이상하게 맛있고 유독 고소하다. 은은한 달콤함이 들어 있어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고 담백함이 돋보이는 메뉴라 한 개를 다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부드러운 빵에 더 부드러운 생크림이 들어간 생크림빵도 집었다. 크림빵은 좀처럼 사먹지 않는 하드빵 매니아이지만, 이 곳은 프릳츠니까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차가운 냉장고에서 크림을 끌어안고 있던 생크림빵을 한 입 베어무는 순간 느껴지는 부드럽고 촉촉한 빵결. 포근하고 말랑한 식감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적당히 간간한 빵에 입에 닿자마자 녹아내리는 순수한 생크림이 만나니 고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쩐지 아쉬워 곡물 루스틱도 하나 담아본다. 아담한 사이즈에 딱딱하면서도 쫄깃한 식감, 겉에 각종 씨앗이 붙어 있어 고소함이 인상적인 메뉴다. 속은 약간 시큼하지만 쫌쫌한 매력이 있고 빵 사이사이에도 각종 씨앗이 들어있어 씹는 맛이 좋다. 


어떤 메뉴를 먹어도 크림은 조금 남기는 편인데, 남은 생크림을 루스틱에 쓱 발라먹으니 또 다른 매력이다. 시큼하고 고소하고 짭짤하면서 달콤한 맛. 바삭하고 질깃한 식감 너머로 느껴지는 크림이 너무나도 부드러워서 예상치 못한 조합이 주는 즐거움이 컸다.




빵을 먹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힘들었던 지난밤도, 오늘의 나도, 어쩌면 내일의 나까지 -

한 입 한 입 음미할 수 없다면 적어도 체하지는 말자고.

덜 익은 렌틸콩의 습격을 받는 순간도 있겠지만 그래도 계속 씹다 보면 그 안에 단맛, 짠맛, 고소한 맛도 느껴질 테고 언젠가는 생크림 같은 순간도 만날 거라고.

그게 사람이 될지, 이벤트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꼭꼭 씹어 삼키며 기다려 보자고.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지만 마지막 한 조각까지 깨끗하게 먹었다.

빈 접시를 보니 어쩐지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것 같고 슬쩍 흘려보낸 눈물에 기분도 정화된 것 같다.


그래. 시끌시끌 모두가 행복한 이 곳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 또 어떤가.

나의 표정을 감춰주는 어둑한 조도와 분위기, 그게 프릳츠의 매력인데.







하나) 개인적인 입맛에는 모든 빵이 다 맛있어서 딱 잘라 추천하기가 어려워요. 크로와상도 좋고 소시지빵도 맛있고 하드빵이 최고예요. 하나하나 드셔 보시면서 취향에 맞는 걸 골라보세요.


둘) 커피는 산미가 강해서 호불호가 좀 갈리는 편이에요. 산미에 약하시다면 라떼류를 드셔 보세요!


셋) 프릳츠 커피 컴퍼니의 마스코트, 물개가 참 귀여워요. 콜드 브루, 드립백, 에코백 등 다양한 MD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니 구경하는 재미도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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