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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훈이 Feb 08. 2017

우면동 소울브레드

무반죽으로 천천히 태어나는 건강한 빵






도시도시한 서울에 이런 곳이 있을까 - 싶을 정도로 조용한 지역. 산 아래에 있어 나무가 많고 아파트 간 거리가 꽤 되는 보기 드문 지역 우면동. 늘 그랬듯이 오직 빵집 하나를 위해 연고도 없는 동네를 찾았다. 포털사이트의 지도는 버스 환승 한 번이면 된다 쉽게 말하지만, 서울에서 가장 혼잡한 논현 - 강남 - 양재 라인을 통과하는 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로에 갇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을 때쯤 초록이 보이기 시작하고 방송에서 나오는 정류장의 이름들이 아파트로 바뀌면 재빨리 내릴 채비를 한다. 아파트 상가에 입성하는 순간 땀 한 줄기가 등을 타고 흐르지만, 잘 찾아왔다며 위로를 건네는 듯한 고소한 빵 향기에 그 간의 고생은 벌써 잊었다.





주말이면 밖까지 줄이 이어지는 작은 동네 빵집, 소울브레드





빵집 치고도 꽤나 작은 규모의 소울브레드. 성인 4-5명이 서면 꽉 찰 것 같은 공간 너머에는 가지런히 빵들이 진열되어 있고, 구석에는 작은 테이블이 하나 있다. 앉아서 먹고 가기보단 잠시 짐을 올려두는 용도로 더 적당할 듯싶어 냉큼 가방을 벗어두었다. 무엇을 살지 정해두고 왔으면서도 꽉 찬 쇼케이스 앞에서 신중해지는 건 빵순이의 본능. 우습지만 어쩔 수 없다. 순간의 선택이 한 주의 밥상을 결정하니까.






 그 날은, 사려던 빵이 조금 늦게 나와 가방 대신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았다. 그러고선 음악과 오븐 소리, 사장님의 차분한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여유로움에 빠져 홀린 듯 빵 만드는 사장님의 손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시로 오븐을 들여다보며 온도를 체크하고 빵이 구워지면 꺼내어 식히고, 유산지를 정리하고 판을 닦고.

재워둔 반죽을 깨워 덧가루를 뿌린 후 다시 오븐에 넣는 일련의 과정.





새로운 손님이 들어와도 계속되는 그 동작들은 의식에 가까운 것이어서- 보는 이의 마음을 경건하게 했다.

늦다며 불평할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손님 대부분은 나와 같은 마음인가 보다. 조용히 일이 마무리되길 지켜보거나 행여 방해가 될까 밖에서 기다린다. 저 먼 곳에서 찾아오는 것도 모자라 택배를 시키고, 사비를 들여 아이스커피를 사 오는 손님들. 빵 만드는 사람만큼이나 정성 어린 고객들을 보고 있자니 이 베이커의 하루는 빵과 사람으로 빈 공간 없이 꽉 들어찬 것이겠구나 싶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렇게 몇 팀이 다녀가고, 오븐의 문이 열리고 닫히기를 몇 번 반복한 끝에 예약해 둔 빵이 나왔다. 갓 나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맛 볼 기회는 흔치 않으니 한 조각 잘라달라 부탁드리고, 먹으면서 길을 나선다.



시큼한 맛이 매력적인 사워도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사워도우. 담백한 속살과 크랜베리, 치즈, 무화과 등 부재료가 잘 어우러지는 것이 사장님 손길만큼이나 정갈하고 깔끔한 맛이다. 마음 같아서는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식은 후에 더 안정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사장님의 설명을 되뇌며 인내심을 발휘해본다.

 


입가심을 했으니 다음 빵을 먹을 차례. 만들자마자 먹는 게 가장 맛있는 미니 크림치즈 바게트 혹은 생크림 치아바타를 꺼낸다. 느끼한 걸 즐기지 않는 내 입에도 과하지 않아 갈 때마다 꼭 하나씩 주문하게 된다. 사워도우에 익숙지 않은 이들을 위해 시작하셨다는 이 메뉴들은 생긴 것만 보면 '크림 맛으로 먹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크림을 뚫고 나오는 빵 맛을 한 번 느끼고 나면 위장이 하나인 게 아쉬울 거다. 커다란 바게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바삭함과 고소함이 있고 셰프님의 고민이 담겨 한층 더 섬세한 맛을 뽐내는 부재료가 매력적이다. 






모든 메뉴를 섭렵했고, 방문하기 까다로운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소울브레드를 찾게 되는 건 셰프님과 공간이 가진 힘도 한 몫하는 것 같다.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게 해주는 곳. 사장님과 손님의 교류가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베이커리 소울브레드. 집을 향하는 길은 여전히 복잡하지만, 명상하듯 잠시 머문 그 시간 때문인지, 손에 든 빵빵한 봉투 덕분인지 마음은 전과 같지 않다.


 냉동실도 비고 마음도 비는 날, 다시 채우러 가야겠다.



미니 바게트와 국산 수제 팥, 질 좋은 버터가 들어간 앙버터.







하나) 사워도우(sourdough)는 이름처럼 시큼한 빵이어서 조금 낯설다 느끼실지도 모릅니다. 마늘바게트나 치즈빵 등 친근한 맛부터 시작해 보세요.

둘) 계절 과일이 들어가는 생크림 치아바타, 도톰한 크림치즈가 인상적인 미니 바게트 시리즈는 요즘 인기가 너무 많아요. 예약하고 가세요.


셋) 개인적으로는 소프트 마늘바게트, 바게트로 만든 앙버터, 팥빵과 고대 곡물 식빵을 좋아합니다. 뭘 먹을지 고민된다 하시는 분들 한 번 드셔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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