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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훈이 Mar 29. 2017

일곱번째, 망원동 샌드위치집 미아논나(1)

얼그레이와 홍삼이 만나던 토요일 밤 11시 32분



상호명 : 샌드위치 전문점, 미아논나 (mia nonna)

위치 : 서울시 마포구 망원로6길 61

메뉴 : 샌드위치, 오픈 토스트, 파니니가 주 메뉴지만 오늘은 얼그레이 무화과 머핀

음료 : 홍삼액에 뜨거운 물을 부은 달지 않은 홍삼차








혼자있기엔 조금 많이 외로운 토요일밤 11시 30분.

훈녀인 척 하루를 마무리해 보고자 스트레칭까지 마쳤지만 일찍 먹은 저녁 탓인지 배가 고팠다.


평소라면 2차, 3차로 이어진 술자리에서 생각나는 대로 말을 쏟아내고 있을 시간이지만, 종종 이런 혼자인 주말이 찾아오면 고민에 빠진다. 캔맥주라도 마실까, 아니면 얌전히 잠을 청할까. 일을 그만 둔 후 매일이 주말같았지만, 일찍 잠들기는 어쩐지 아쉬웠던 그 날은 토요일 밤이었다.




얌전히 잠들면 피부에도 좋고 위장건강에도 좋고 다이어트에도 최고일텐데 사람 마음은 왜 그렇지 못할까.

어제 사온 머핀과 냉장고에 잠들어있는 케이크가 자꾸 어른거렸다.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냉장고 앞을 서성이길 수 차례. 크림보단 밀가루가 낫겠지 싶어 머핀을 꺼냈다.






따뜻한 차 한잔 곁들이면 최고일 것 같은데, 카페인때문에 잠 못 드는 날들이 이어진 터라 어쩐지 겁이 난다. 마침 허브티까지 똑 떨어져 마실 게 없다. 방황하던 내 눈에 때마침 건강보조식품 홍삼액이 보였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냉큼 뜨거운 물을 섞어 본다. 쓴 맛 100%의 야매 홍삼차. 단 맛을 중화시켜주기에 충분한 것 같다.


그렇게 맞이한 토요일밤 티타임. 어설펐지만, 고요하기만 했던 내 방에 향과 온기가 더해지며 그럴 듯한 시간이 되었다.



샌드위치 전문점에서 파는 머핀. 어쩐지 낯선 조합


어릴 적 나에게 머핀은 대표적인 '카페 메뉴'였다. 계산대 옆 냉장고 가장 윗칸에 진열되어 있던 진갈색 초코머핀과 노란색 치즈머핀이 내가 본 첫 머핀이었고, 워낙 빵을 좋아했던 지라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하지만 달고 기름진 식감을 즐기지 않는 내게 머핀 하나는 너무 컸고, 어느 커피전문점을 가도 똑같은 맛을 경험하며 흥미가 사라졌다. 그런 내가 빵집도 아닌 샌드위치 전문점에서 파는 머핀을 사다니. 참 별 일이다.






미아논나에서 머핀을 산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메뉴 일곱개가 전부인 곳에서 샌드위치 하나만 맛보고 돌아서기엔 아쉬워서, 빳빳한 종이마저 빈티지 스러운 머핀의 속살이 궁금해서.





유산지마저 예뻐 보였던 건 린넨과 레이스, 바구니가 한 몫한 것 같기도 하다.




유산지 너머로 전해지는 머핀의 느낌은 출신지만큼이나 색달랐다. 틀이 닿았던 아랫 부분은 유독 색감이 짙었고, 심지어 단단했다. 촉촉하다 못해 끈적이기까지 한 시중 머핀과 달리 미아논나의 얼그레이 무화과 머핀은 손으로 집었야만 약간의 유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건조한 겉면 만큼이나 속살도 포슬포슬했으며, 어쩌다 안에 든 무화과라도 건들이면 파스스하고 부서졌다. 얼그레이 잎으로 콕콕 찍은 까만 점에서는 달콤한 꽃향기가 올라왔고 고급지고 충실한 단 맛에, 한 입 한 입이 만족스러웠다.



나의 돌잔치 때 썼다는 접시로 집에서도 빈티지한 척 해보기


입이 달달해진 순간 뜨거운 홍삼차를 한 모금 마셨다.

서양의 얼그레이와 동양의 홍삼이 만나 이룬 묘한 조합.

달고 쓰고 달고 쓰고 인생의 맛이란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가운데 부분으로 다가갈 수록 촉촉하고 향긋한 미아논나의 얼그레이 무화과 머핀을 먹으며 희망이 생겼다. 한동안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많은 것에 흥미를 잃은 채 무미건조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나의 내면 어딘가에는 얼그레이 향 같은 나만의 향기가 잠들어 있지 않을까. 톡톡 터지는 무화과 과육처럼 톡톡 터질 나만의 매력과 행복을 주는 달콤함도.





 

술이 없는 자리에 차가 들어왔고

사람 없는 자리를 머핀 한 조각이 채워준 토요일 밤.

기대 이상의 만족감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날 나는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불타는 토요일을 노래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술과 사람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나로 채우는 밤도 충분히 매력적인 시간이라고.










하나) 샌드위치 전문점답게 샌드위치가 참 맛있어요. 조만간 샌드위치 이야기를 들고 올게요.


둘) 빈티지한 소품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요. 화장실도 한 번 가보시고 조명, 물컵, 유심히 살펴 보세요!


셋) 아몬드 비스코티도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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