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는 말에 대하여
요즘은 '사랑한다'는 말이 참 흔한 것 같아. 연인이나 친구, 가족뿐 아니라 처음 보는 '고객님'에게도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는 시대니까. 그야말로 사랑이 넘쳐나는 세상이야. 그렇지? 그런데 문득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어. 이렇게나 사랑이 흘러넘치는데,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은 메말라가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야. 사랑할수록 작은 일에도 고맙고 미안한 일이 늘어나기 마련이잖아. 오히려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고 미안하다는 말은 자주 하는 편인 나는 그게 참 이상했어. 가끔 사회 부적응자가 된 것만 같기도 하고 말이야. 언어는 사회성을 갖기 마련인데 내가 쓰는 말과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에 온도차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거든.
우당탕탕 성향이 꽤 짙은 나는 운전을 시작하면서 사고를 꽤나 자주 냈어. 그때마다 뛰쳐나가서 '죄송합니다'를 외치곤 했지. 물론 백 퍼센트 내 과실인 적도 있었고,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일단 미안했거든.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 상황에 연관된 사람들 모두에게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어. 그게 고의든, 실수든. 누군가의 평온한 일상에 균열을 일으킨 셈이니까. 그런데 그런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말하더라고. 앞으로 어떤 사고가 있어도 절대 '미안하다'는 말을 뱉어서는 안 된다고.
비슷한 말은 매일같이 너희들을 마주했던 학교에서도 들었어. 그 당시 우리 반에 자살 위험군 학생들이 꽤나 많았고, 그래서인지 이런저런 문제들이 끊이질 않았을 때였어. 매일 같이 머리를 쥐어뜯고 때론 눈물을 글썽이던 나를 보며 선배 교사가 조언을 했어. 무슨 상황이 와도 '죄송하다'는 말을 뱉지 말라고. 그 말을 삼키고 모든 상황을, 특히 내가 취했던 사소한 행동까지 상세하게 기록해 두라고 했어. 조금 놀랐지만 그런 내색을 감추느라 크게 고개를 끄덕였지.
두 사람 모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이들이었고, 지금도 그래. 그들이 내게 건넨 조언에 스민 애정과 배려도 알고.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스스로를 지키길 바랐을 거야. 그래서 그들이 내게 쥐어준 말을 손에 꼭 쥐었어. 그런데 말이야,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치는 거야.
'왜 그래야 하는 거지? 왜 사람들에게 미안하면 안 되는 거지?'
물론 그들은 내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 말라고 한 게 아니었어. 하지만 일반적으로 마음은 언어로 표현되어야 상대방의 마음에 가닿는 법이니 죄송하다는 말을 뱉지 말라는 건 죄송한 마음을 드러내지 말라는 의미였을 거야.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은 내가 상대에게 '빚'을 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들의 말이 틀리진 않아. 어른들의 세계에선 '마음'보단 '실리'가 중요하니까. 함부로 미안함을 내뱉었다간 내 발목을 붙잡힐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으니까. '미안함을 느끼는 걸 보니 네가 잘못했음을 인정하는 거로구나. 네가 책임을 져라.'라는 논리로 흘러가는 게 어른들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법칙이니까. 모두가 좋아할 리 없는 법적 혹은 경제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되도록 책임을 회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잘못을, 미안함을 인정하면 안 될지도 몰라. 그게 현명한 어른일지도 모르지.
그래서일까. 무슨 사건이 터지면 고위 공직자이나 기업 대표들은 미안함을 표현하는데 매우 인색해. 어른들의 세계에서 누구보다 잘 적응한 성취로 그곳까지 올라갔을 그들이 미안함을 인정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라. 미안하다는 말을 뱉는 순간 잘못의 책임은 본인의 몫이 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들의 당연한 논리가, 이 세계의 질서가 과연 옳은 것일까?
어른들의 세계는 실용과 논리의 법칙이 지배적이야. 애정과 마음으로 엮인 관계보다는 이해가 얽힌 관계가 더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지. 그래서일까? 하루종일 쏟아낸 수많은 말 중에 내 마음을 온전히 담아낸 언어는 많지 않을 때가 많아. 그저 의견을 전달하고, 상황을 브리핑하는 정보의 말들이 대부분이야. 간혹 감정을 드러낼 때도 있지만 그마저 섬세한 마음을 담은 문장보다는 분노와 짜증을 폭발시키는 짧은 단어에 불과한 경우가 많아. 내 마음을 일일이 설명할 시간과 여유가 없거나 그걸 들어줄 상대가 없을 때가 많으니까. 무엇보다 어른들의 사회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건 하수의 어리석음으로 치부되곤 하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에겐 '마음'이 필요해. 물론 국가나 조직이라는 시스템은 논리와 법칙으로 세워져야 하지만 그 안에서 움직이는 관료들은 사람의 '마음'으로 구성원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해. 모든 조직이 공정한 법칙으로 운영되더라도 그 안을 구성하는 '사람'은 각자의 맥락과 함께 섬세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것처럼.
나는 공허한 '사랑합니다'가 아닌, 애틋함이 담긴 미안함과 고마움을 말하고 싶어. 내가 당신의 세계를 흔든 것, 내가 조금 더 힘을 다하지 못한 것, 조금 더 당신을 섬세하게 대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뱉고 싶어. 내가 지불한 비용의 대가로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당연함을 조금 내려놓고, 당신이 그 자리에 있음에, 기꺼이 나를 위해 이 행위를 건네줌에, 그래서 내가 조금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음에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 이렇게 반복되는 미안함과 고마움은 사랑한다는 말과 동일한 무게를 가지지 않을까? 나는 아무런 마음이 담기지 않은, 그래서 쉽게 뱉어내는 텅 빈 사랑한다는 말이 아닌, 미안하다는 말을 원해. 내 잘못과 책임의 경중을 계산하기보다 상대가 지닌 아픔의 무게를 헤아리는, 그래서 그저 어찌할 줄 모르는 마음이 터져 나오는, 진정성 있는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해.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나는, 너희에게 미안해. 나이를 먹어갈수록 미안한 순간이 너무 많아져서 미안하다는 말조차 꺼내기 미안하지만, 미안해. 내가 너희 나이일 때보다 더 각박한 세상을 만들어서, 이전의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일들이 터지는 사회의 어른으로 자라게 해서, 아무 일 일어나지 않는 보통의 하루조차 쉽지 않은 시대를 초래해서. 그리고 고맙다. 살아줘서. 우리가 마음껏 미안한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