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에 균열을 내는 여행의 힘
누구나 자기가 만든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 작은 공간이 만들어 낸 조그만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내 좁은 세상이 빚어낸 잣대를 다른 영역에 들이대면 잘 맞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대개 내 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보다는 낯선 저 바깥 사회가 이상하다고 여길 때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내 손에 들린 것들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그것들이 그저 평범하고 보편적이라 여기며 지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안온한 날에 균열이 일어날 때가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잔잔한 내 세계에 파장이 일었다. 내게 존재하는 지조차 몰랐던 내 안의 편견과 마주했다.
동굴 플라멩코 공연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우린 동굴이라는 생소한 장소가 주는 아늑하면서도 비밀스러운 느낌을 더듬거리며 내부를 서성였다. 벽에 걸린 사진과 그림들까지도 찬찬히 살피고 나서 자리를 잡았다. 와인을 홀짝이며 재밌는 구경을 시작했다. 사람 구경. 하나둘씩 들어오는 사람들을 살폈다. 잘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풍경 삼아 그들의 표정, 움직임, 목소리의 톤 따위를 관찰했다. 그때 각각 아이 하나씩을 안고 두 커플이 등장했다. 내 시선은 단번에 그들을 향했다.
두 친구의 가족 모임으로 보이는 그 여섯 명이 내 눈길을 끈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일단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그 조합이, 컬러풀한 가족의 모습이 생경했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손을 잡은 부모의 뛰어난 패션 감각도 낯설었다. 아이를 안고 달뜬 얼굴로 신나게 이야기하는 엄마의 표정도, 음악에 맞춰 깡충깡충 뛰는 아이들 옆에서 그루브를 타는 아빠의 몸짓도 신선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가진 작은 세계에선 리듬 타는 아빠나 패셔니스타 부모, 다른 피부색과 머리색, 다른 색의 눈동자를 가진 가족이나 친밀한 모임은 없었다는 걸. 미드 ‘모던 패밀리’를 보고,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스타나 인플루언서가 제 아이와 다정하게 찍은 수많은 사진을 봤지만 여전히 그건 내 세상이 아닌, 저 너머의 일이었다는 걸.
초등학교 때였다. 학교에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다. 나와 같은 학년이었지만 같은 반이 되었던 적은 없었다. 기억이 온전치 않아 특수반이 따로 있었는지, 통합학급으로 운영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또렷한 사실은 그 아이는 많은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거나 기피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 아이를 피했다. 그 아이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그냥 왠지 무서웠다. 우리와 다르게 생긴 외모, 걸음걸이, 말투. 웃을 때마다 일그러지는 얼굴이 괴이하게 느껴졌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중증 장애인들이 무서웠다.
처음 일했던 직장에 장애 학생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내 수업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내가 가장 가깝게 지냈던 사람이 특수 교사였고, 내 옆자리는 또 다른 특수 교사였다. 여러 모로 장애 학생들과 자주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과 자주 인사를 나누었고, 그들이 가진 장애의 특성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제야 그들이 무섭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장애인을 제대로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을. 내 안의 막연한 두려움과 편견들은 내가 가진 좁은 세계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의 부딪힘을 통해 알아갔다. 스스로가 만든 작은 세계에 균열을 내는 건 새로운 존재와의 만남과 연결임을.
그라나다의 작은 동굴에서 만난 흥겨운 두 가족이 좁다란 내 세상에 길 하나를 내주었다. 다른 세상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통로가 하나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