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그림엽서

내가 모르는 세계

by 정담아

“직업란에 뭐라고 썼어?”

“프리랜서.”

“응? 교사도, 작가도 아니고? 왜?”


비행기 안에서 질문을 던진 친구는 내 대답에 또다시 물음표를 띄웠다. 친구가 내비친 의아함에 재빨리 답을 할 수 없었던 건 나도 명확한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시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르는 나를 가장 멋지게 포장해주는 단어라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교사는 내가 내세우기 선호하는 정체성은 아니다. 모든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이 있지만 교사에 대한 이미지는 경험상 그다지 긍정적인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높은 도덕성이나 지적 수준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여행지에서까지 그런 올가미에 구속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작가는? 오랫동안 내가 꿈꾸던 정체성이다. 이따금 내게 주어지기도 하는 단어지만 여전히 낯설고 서걱대는 이름이라 영 내세우기 멋쩍었다.


“그럼 artist는 어때?”

친구가 말했다. 멋진 단어였지만 왠지 내가 갖기엔 어색했다. 하지만 그림 작가인 친구에겐 제법 잘 어울리는 이름 같았다. 내게 예술은 왠지 텍스트가 빠진, 그러니까 내게 친숙하지 않은 것들의 모음이었으니까. 그럼에도 꽤 멋진 그 낱말을 손끝으로 매만져보았다. 우리는 다짐했다. 이번 여행에선 교사는 지우고 작가 혹은 아티스트의 옷을 입어보자고. 그게 무언지도 잘 몰랐지만 여행 내내 친구는 제법 아티스트 같아 보였다.


“어떤 게 제일 마음에 들어? 하나 골라봐.”

본인이 그린 그림을 엽서로 제작해 온 친구는 언제든 그걸 펼쳐 보이며 말했다. 그림의 힘은 대단했다. 친구가 펼친 엽서 앞에선 낯선 눈동자에 호기심과 설렘, 기쁨이 맺혔다. 그 익숙한 표정 덕에 우린 조금 가까워질 수 있었다. 게다가 그림은 빈약한 우리의 대화를 풍성하게 해 주었다. bar casa Julio의 J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 결정적 계기도 바로 친구의 그림이었다. 상대에 대한 반가움만 앞세운 얄팍한 정보와 언어는 대화 소재를 금방 소진시켰고, 그때 친구가 펼쳐 보인 그림 덕에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게다가 친구가 직접 그렸다는 말은 J를 한껏 격앙시켰고, 무심한 듯 지켜보던 사장님까지 끌어당겼다. 결국 그날 우린 식당 문이 닫힐 때까지 이야기를 이어갔다.


식당을 나서면서 친구는 놀랐다고 했다. 그림에 대한 생각과 감상들을 꺼내 놓는 그들의 뛰어난 수준에. 사실 나는 그보다 서슴없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들이 신나게 떠드는 동안 나는 줄곧 침묵했으니까. 나는 그림을 잘 모른다. 텍스트가 주는 감동에는 민감한 반면, 이미지가 주는 감동에는 둔감한 편이다. 그림이 주는 재미를 알게 된 건 대학 졸업 후였고, 그림이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도 꽤 시간이 지난 뒤였다. 하지만 여전히 이미지보단 텍스트를 선호한다. 미처 알지 못했던 정보나 통찰을 만나면 가슴이 두근댄다. 막연하게 뭉개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던 감정을 단정하게 풀어낸 문장을 보면 마음이 좋아진다. 명확하게 정리된 내면 덕에 상쾌하기도 하고,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단 사실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단출한 획에서 나오는 오묘한 장면들과 단아한 자태로 깊이 파고드는 묵직함이 좋고, 그 힘을 믿는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친구의 그림이 맺어주는 만남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텍스트가 줄 수 없는 이미지의 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언어를 뛰어넘는 예술이 갖는 힘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서 왠지 내가 가진 도구는 무력해 보였다. 괜스레 의기소침해졌다. 동시에 궁금해졌다. 더 알고 싶어졌다. 내가 모르는 많은 세계에 대해서. 그림도, 음악도, 춤도, 스페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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