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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험미 Oct 25. 2024

나의 엄마에게

언제나 건강과 행복만을 기원하며

영영 부모가 되지 못한 미숙한 어른이라 그런 질문을 했을 것이다.

20대의 어느 날 엄마에게 물었다.


"나를 왜 낳았어."


원망 섞인 말투는 아니었으나, 숨길 의도가 없는 질타는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자식을 왜 낳았냐는,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는 질문에도 엄마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동요가 없는 눈동자는 맑은 빛을 띠고 있었다.


"세상 구경 시켜주려고 낳았지."


엄마는 가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천진난만할 때가 있는데, 그때의 대답이 그랬다.

무슨 그따위 질문이 있느냐는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소녀 같은 대답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일견 순진하게까지 느껴지는 대답을 하는 엄마의 얼굴은 꾸밈없이 순수했다.

나는 그 그늘 없는 아이 같은 얼굴에, 그저 조금쯤 헛웃음만 흘리고 말았다.


비장한 질문에 너무 예기치 못한, 예상에 없던 대답이었다.


'세상을 구경한다.'


이 삶의 시작 연원을 알게 된 그때부터, 나는 종종 궁구 했다.


세상 구경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보다도 자주,

세상은 과연 구경할 가치가 있는 곳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은 온갖 끔찍한 고통과 온갖 아름다운 것들이 공존하고 있는 기이한 테마파크다.

누군가는 귀신의 집이나 모골이 송연해지는 놀이 기구에서 겪은 쓰디쓴 체험에 기함한 채로 살아갈 수도 있고,

누군가는 진귀한 볼거리와 아찔한 재미에 마음을 홀딱 빼앗겨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모든 희로애락이 섞인 꿈과 모험과 환상의 세계이지만, 선뜻 입장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문득문득 삶이 고통스러울 때면 나는 냉소를 지었다.

세상은 전혀 구경할 가치가 없는 곳인데, 뭘 볼 게 있다고 낳았을까.

속된 말로 무슨 좋은 꼴을 볼 거라고, 이 따위 세상에서.

그 천진난만한 이유에 원망을 품었다.


남편을 만나 무탈한 하루의 끝을 안식처럼 맞이할 때면.

그래도 그렇게 고통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생'이 주어졌으니, 한 번쯤 살아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다.

간혹 '생'이 다채롭고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좋은 순간들도 있으니까라며 '삶'을 수용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세상 구경은.

나는 과연 세상 구경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제대로 잘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다만, 세상을 제대로 구경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세상이 구경할 가치가 있는지 궁리하는 것과 세상을 제대로 구경하는 것.

이 둘은 늘 세상을 뚜렷이 직시하라고 강요한다.


나는 이 일들이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둘은 대게 심력을 소모하고 사람을 지치게 한다.

지치고 힘들면 그냥 아무것도 붙잡고 싶지 않아 진다.

그냥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고 싶어 진다.

아무 생각도 없이, 저항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흘려버리고 싶어 진다.  


나는 긴 방황 끝에 직시와 타협 그리고 원망과 수용의 징검다리를 건너 어떤 지점에 도달했다.


이 지점이 징검다리의 건너편인 목적지인지, 징검다리 중간 어디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지점이 엉성한 징검다리의 어떤 단단한 디딤돌 위인 것만은 확실히다.


가끔 숨 막힐 정도로 꽉 막힌 올림픽대로에 구급차가 지날 때면 복받칠 때가 있다.

해일이 갈라지듯 양옆으로 길을 터주는 차들을 보았을 때다.

응급환자가 타지 않았는데도 구급차를 악용하는 운전자도 있다지만, 그건 만의 하나라도 환자에게 유용하다면야 비켜줘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각설하고.


그 많은 운전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마음을 발휘한다는 것이 나를 울컥하게 한다.

아직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고.

그래, 아직은...... 살아 볼만한 세상인 것이다.


가끔 이 모든 것이 이해하기 어렵고, 세상이 더럽고 고되게 느껴지면,

그저 이 요란하고 기상천외한 테마파크에 지칠 대로 지쳐 그런 것이니,  

숨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 흘려보내면 뿐인 일이다.


어렸을 때 나는 이 삶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내게 주어진 이 삶이 제발 내 삶이 아니었으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는 지금 내 삶과 화해했다.


엄마의 건강과 무탈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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