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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험미 Sep 06. 2024

입양을 준비하는 여자가 된 2

그녀를 지켜보는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

A의 말이 나는 고마웠다.


"그렇게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가 된 거지"


맞다. 나는 그렇게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가 되었다.


내가 했던 말들의 행간에 감춰져 있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었던 고통과 고민을 압축시켜 준 한 문장이었다.

나는 A의 그 한 문장이 고마웠고, 절실히 와닿았다.

나는 그녀의 말처럼 그렇게 아이를 낳지 않는, 2세를 포기한, 자녀를 갖는 것이 두려운 여자가 되었다.


앞뒤 재는 것 없는 B의 호탕함과 진솔함 위에,

증오와 연민으로 뒤섞인 나의 고뇌와 혼란 위에,

A의 질문이 내려앉았다.


"엄마는 도대체 어떤 점을 보고 아빠랑 사는 걸까?"


나의 이야기를 시의적절하게 끝맺어 준 A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A가 가진 이야기는 내가 풀어놓았던 가정사와  결이 달랐지만, 그 질문만큼은 내게 닿아 있었다.


"나는 항상 궁금했어. 아빠가 엄마에게 어필하는 점은 뭘까?"


내가 나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엄마에게도 직접 던졌던 질문이기도 했다.


 "엄마는 도대체 왜 아빠랑 살까?"


나는 아버지에게 증오와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 연민을 느낀다고 했고,

B는 나의 말에 동조하며 아버지가 감당했었을 그 지난한 삶에 연민과 짠함을 느낀다고 했고,

A는 아버지에게 증오도 연민과 짠함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그저 좋지 않게 생각하는 감정만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를 향한 나와 B의 감정에 연민이 존재하는 이유는 두 아버지 모두 한평생 정말 성실하게 일해서 돈을 벌어온 가장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정말 악착같이 일한 사람이고, 몸이 부서져라 가정의 생계를 책임졌다는 점이다.

술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긴 하지만, 그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A는 증오도 인간적 연민도 없다고 했다.


A의 이야기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언제나 가정에 경제적 문제를 불러오는 사람이었다.

일을 하지 않느냐면 그것은 아니었다.

A의 아버지는 이런저런 사업과 직업을 시도하며 열심히 노력하는 삶을 사셨다.

다만 벌린 일은 번번이 실패했고, 결국에는 남 좋은 일만 하다가(가정에 들어와야 할 돈이 엉뚱한 사람에게 가는 결과), 제대로 매듭을 짓지 못하셨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매번 그 끝에서 빚을 져 오는 데 있었다.


A가 느낄 답답함에, 나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꾹 참아야만 했다.

타인인 나도 급체를 한 것처럼 가슴에 바위가 얹힌 것 같은데, A는 오죽하겠는가.


A의 아버지가 져온 빚은 늘 어머니의 몫이 되었다.

어머니는 집안 생계를 책임지며 그 와중에 매번 아버지의 빚까지 갚아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A는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답이 없는 질문의 답을 구했다.


"도대체 엄마는 왜 아빠랑 살까?"


허공에 흩어진 A의 질문이 시끄러운 주점의 소음을 잠재운 것 같았다.

우리 테이블만이 적막으로 감싸인 둥근 원형 막 안에 존재하는 기분이었다.


알 수가 없다는 A의 한숨 섞인 말이 뒤따랐다.

나는 A가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듣고 싶어 하는 진정한 대답은 되지 못하겠지만, 내가 들었던 대답을 말해주었다.

내가 엄마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래도 한평생 죽어라 열심히 일만 했잖아. 불쌍한 인간이야."


끊임없는 언어폭력과 난동, 폭력과 칼부림에도.

엄마는 그래도 한평생 열심히 일 해 왔다는 말로 자신의 의사를 피력했다.

나는 A에게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어쨌든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있긴 한 거다. 내 생각에 우리 엄마는 열심히 가정을 부양했다는 그거 하나로 사는 것 같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이유가, 어떤 이유든 한 가지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납득시키듯, A에게 내가 내린 결론에 대해서 말했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포기한 걸 수도. 혹은 그저 오랜 관성에 의해서 그냥 사는 걸 수도. 아니면 가스라이팅처럼 그냥 그게 불합리한 지도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하고 거기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 나도 사실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모두 침울한 얼굴로 믿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여러 차례 비어 버린 맥주를 다시 시켰다.

이 갈급함을 해소할 시리도록 차가운 맥주가 시급했다.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며 A가 더 자세하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A와 만나면서 그동안 어렴풋이 지나가는 말로 띄엄띄엄 듣던 이야기의 상세한 내막이었다.


A는 오랫동안 연애한 남자친구와 결혼해 가정을 이룬 지 7년이 되는 유부녀이다.

결혼 초반에는 두 사람 모두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느라 아이를 가질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특히 3~4년 전부터 A의 일이 굉장히 잘 풀리기 시작했다.

A는 전문분야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고, 두 차례 이직 끝에 상당한 고액 연봉자가 되었다.


이 사실이 A에게는 축복임과 동시에 엄청난 걸림돌이 되었다.

바로 아이를 갖는 데는, 무시할 수 없는 장벽이 되었다.


A가 아이를 갖게 되면 현실적으로 얼마간은 일을 완전히 놓아야 하는 기간이 생기게 된다.

A는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의 일도 하고 있으며, 그 회사의 허락 아래 외부 회사의 프로젝트와 자문도 맡고 있고, 각종 강연과 도서 집필도 하고 있다.

또한 A의 연봉이 남편 연봉의 2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A가 출산을 해서 당장 몇 달이라도 일을 그만두게 되면, 갑자기 1/3로 줄은 수입으로 아이까지 키워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A의 아버지가 최근에 크게 돈과 관련된 상황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 문제까지 더해져서 A는 어떻게 해도 일을 그만둘 상황이 아니었다.

A의 남편은 낳아만 주면 자신이 전업 주부로 집안일과 육아를 전담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고 한다.

육아를 하지 않더라도 A가 일과 임신과 출산을 병행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결국 A와 남편이 내린 잠재적인 결론은 상황이 조금 더 나아지면 임신을 시도하고, 임신이 여의치 않게 된다면 입양을 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나는 초칠 생각은 아니라고 말하며 첨언했다.


"나이 40 넘어 초산에, 자연 임신으로 출산이 무사히 진행될 가능성은 10% 내외로 봐야 한다. 아이를 낳을 거라면 당장 시험관부터 준비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자연 임신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초산이 너무 늦은 나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 하다못해 산전검사라도 하려면 우선 병원부터 가라."


나는 뼛속까지 딩크이면서도, 이상하게 출산과 육아 관련된 정보에 집착하곤 하는(실제로 출산과 육아에 관한 욕망의 표출이거나 혹은 그런 정보에서 얻어지는 내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이거나) 면모에서 얻었던 지식을 줄줄 나열했다.


A도 알고 있다면서, 안 그래도 병원이라도 한 번 가봐야 하는지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시험관을 한다고 해도, 당장 앞으로 1~2년은 어떻게도 일을 빼기 어려운 게 문제였다.

그녀가 일을 하는 것에는 비단 두 사람의 가정 경제뿐만이 아니라, 아버지가 벌여 놓은 일의 수습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신중히 결정해야 할 문제였다.

시험관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해야 확률이 높으니, A는 절반쯤의 현실적 포기와 더불어 입양이란 선택지로 마음이 기운 상황이었다.


사실 입양은 A의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고 한다.

자신들의 아이가 아니더라도, 꼭 자식을 키우고 싶다고.

현실적인 여건으로 자녀를 낳지 못하게 되면, 입양을 고려해 보자고.


그래서 A와 남편은 입양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알아본 모양이었다.

시험관보다도 입양에 대한 A의 정보가 더 풍부한 것을 보고, 나는 A가 거의 마음의 준비를 마쳤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상황과 기회만 된다면 친자녀를 낳는다는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A의 결심과 표정은 단단해 보였다.


나는 입양을 준비하는 여자가 된 A를 보며, 말할 수 없는 경외감을 느꼈다.

정말 현실에서는 드물게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순수한 존경을 넘어, 그건 분명 숭고한 무엇을 바라보는 경외감이었다.


스스로를 한 인간의 부모가 되기에 너무나 모자란 존재인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내 친 자식이었어도 어려운 그 길을,

내 친자식이 아님에도 입양을 통해서라도 그 길을 가려는 그녀를 지켜보면서,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대단함, 존경심, 숭고한 자기희생의 정신, 단단한 심지, 성숙함, 아이가 주는 행복을 바라는 그 불가사의한 마음, 내가 가지 못하는 길을 선택하는 그 용기에 보내는 박수와 씁쓸한 자격지심까지.


오만 감정이 휘몰아쳤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입양을 준비하는 그녀를 보며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이들 부부라면, 어떤 한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믿음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이 세상에 나와 있는 아이 중에, 단지 단 한 명이라도, 불행한 아이 중에 그 하나만큼은 행복하게 자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도감과 더불어.

그 아이가 겪었어야 할 고통스러운 삶이 좋은 방향으로 바뀔 것이라는 긍정적인 고양감을 느꼈다.

아직 그래도 세상에 희망이 존재하긴 하는구나 하는.


 A는 씩씩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가능성들을 받아들이고 미래를 설계해 나가고 있었다.

마음 한 부분이 어딘가 과거에 묶여있는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불혹에도 나는 미숙한 어른이다.

이 나이에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것은 이제 온전히 나의 잘못이다.

어릴 때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던 것은 부모님의 탓으로 돌리더라도.

이 나이에는 다른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탓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나 자신뿐.


훌륭한 성숙함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나는 나의 미성숙함을 인정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입양을 준비하는 그녀처럼 성숙한 어른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 첫걸음은 인정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아닐까.

미성숙한 어른이라면 우선 자신의 미성숙함부터 인정해야 한다.

의외로 자신을 인정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쁜 점뿐만이 아니라 좋은 점도 그렇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그 무엇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나는 내 안에 방치해 둔 상처받은 어린아이를 인정하고,

몸만 큰 어른이 된 나의 미숙함을 성장시켜 보기로 했다.


이 글은 그런 미성숙함의 성장 일지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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