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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시인 Mar 30. 2020

일상에서 만나는 아름다움과 기쁨. 12

내가 사는 소도시의 느티나무들

      1

     “다 비우셨네요!”

    “살다 보면 모두 내려놓게 되는가요?”     

    산책길에서 만난 느티나무 고목에게 건넨 말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놀을 배경으로 묵묵히 서 있었다.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연륜이 느껴지는 고목이었다. 아마 이, 삼백 년은 됨직한 그의 속은 텅 비어 있었다. 커다란 구멍이 여러 군데 나 있었다. 

    봄날의 해는 뉘엿뉘엿 지고, 서녘 하늘은 석양이 드리워져 있다. 길가에서 바라본 느티나무 고목은 마치 가슴이 뻥 뚫린 듯한 모습이다. 빈 가슴 너머로 붉은 해가 보이고 반대쪽으로 돌아서 보면 뚫린 가슴에 푸른 하늘이 담긴다.

향교에서 길 건너의 느티나무 한 그루

    빈 가슴의 느티나무는 내가 사는 아파트 인근에 서 있다. 노트북 배낭을 메고 저녁 산책을 나설 때 선택하는 코스는 둘이다. 그냥 직진해서 아파트 – 성당 – 교육청 – 카페로 이어지는 코스와 돌아서 아파트 – 향교 앞 – 벽화 길 – 사거리 – 카페로 가는 길이다. 돌아가는 길은 때로는 도서관 쪽으로 더 연장되는 경우도 있다. 

    직진이건, 연장되는 코스이건 늘 만나는 것은 느티나무 고목이다. 직진해서 갈 경우 서로 접해있는 성당, 교육청, 안법고등학교 주변에 열 그루 정도의 느티나무가 있고, 돌아서 갈 때는 향교에 네 그루, 그 앞에 한 그루가 있다. 또한 아파트 남쪽으로 5분 정도 걸으면 회전교차로 부근에도 아주 멋진 한 그루의 고목이 있기도 하다.      


    2

    내가 그들을 주목하게 된 것은 벌써 몇 년이 된다. 다들 몇백 년의 나이(수령)를 지닌 원로급 나무들이다. 그들 중 회전교차로 옆의 나무와 안법고등학교 맞은편의 두 그루는 안성시에 지정한 ‘보호수’ 신분이다. 팻말을 보면 수령 300 ~ 400년 정도 추정된다는 것이다. 자료를 검색해보니 안성에는 모두 128그루의 보호수가 있다. 그중 면 단위가 아닌 시내 인근의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는 모두 13그루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산책길에 만나거나 혹은 내가 사는 곳에서 걸어서 5~10분 거리 내에 서식하는 느티나무는 내 기억으로는 향교 주변 6그루, 성당과 교육청 부근 10그루, 봉남동 회전교차로 1그루 등 17그루나 된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수치가 아니다. 내 눈에 띄는 나무들만 세었기 때문이다. 아마 상세하게 조사하면 더 많은 수의 느티나무 고목이 서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3

안성 성당 울타리 옆의  가혹한 상태의 느티나무

    산책길에 만나는 나무들은 모두 흔한 나무들이 아니다. 적어도 2, 3백 년 이상은 살아온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도심에 서식한다. 시멘트로 봉합된 도로 곁 혹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살아간다. 고목이라서 그런지 죽은 가지, 부식된 나무둥치가 쉽게 눈에 띈다. 가뜩이나 공해에 약하다는 느티나무인데 서식환경까지 가혹한 탓인지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아마 올해를 넘기지 못할 나무도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물이 스며들지 못하는 차도와 보도 옆에, 건물과 담장 사이에 위태롭게 서 있다. 

    고목 느티나무가 서식하는 곳의 지명이 명륜(明倫)과 숭인(崇仁) 임을 보면 이곳이 유학적 전통이 서려 있는 장소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일찍이 선조들은 느티나무들은 가꾸고 아껴왔을 것이다. 몇 세대 전에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서동들이 천자문을 외고 무더운 여름날 선비들은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경을 논하거나 한시를 읊조리기도 했을 것이다.  

    느티나무가 자리한 명륜동과 숭인동, 구포동 일대에는 안성지역의 명소가 여럿 있다. 중종 때 건립되었다는 향교, 1901년 창설된 구포동 성당과 1922년 압록강의 목재로 지어졌다는 목조 성당이 있다. 그리고 산책길로 조성된 남파로, 박두진 시인의 호를 붙여서 조성된 혜산로, 안성의 역사를 벽화로 그린 명륜동의 골목길 등 다른 지역에 비해 안성의 지역적 전통과 연관된 유물과 문화 콘텐츠가 자리하고 있다. 아울러 구포동 성당과 숭인동 일대가 1900년 프랑스 신부들이 들여온 포도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재배되었던 곳이라는 역사적 유래를 지닌 장소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방안을 가끔 생각하고는 했다. 그러다가 떠오른 아이디어가 가칭 ‘느티나무길’이다. 이는 일종의 산책길, 둘레길, 문화탐방길이다. 향교에서부터 출발한다고 가정할 때 ‘향교 – 명륜동 벽화 골목 – 구포동 성당 – 혜산로 - 봉산동 느티나무 - 남파로 – 향교’로 이어지는 산책코스다. 산책은 느티나무와 명소로 연결되는 코스로 이어지면 대략 1시간 정도 소요될 것이다. 나는 이 구상을 안성시청의 정책 입안 담당자들에게 제안할 생각이다. 구상이 정책으로 입안되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향교 부근의 느티나무

    만약 이 구상이 실현된다면 느티나무에 대한 대우가 달라질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건물과 담장, 도로와 보도 사이에서 물마저 제대로 받아 마시지 못하는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영영 우리 곁을 떠나갈 것이다. 구포동 성당의 담장 옆에 서 있는 느티나무는 이제 거의 죽어간다. 그를 볼 때마다 신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을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신은 우리가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어느 신부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4

    오래된 이야기다.

    천등산 박달재 밑의 아주 작은 산골 마을에서 유년을 보낸 적이 있다. 할아버지가 적적하시다고 손자 하나를 보내라고 하셔서, 형제 중에서 간택(?)된 것이 나였다. 초등학교를 도시에서 다니던 나는 시골 학교로 전학을 했다. 운동화에 란도셀 책가방을 메고 전학 온 나는 늘 외톨이였다. 냇물을 건너고 상엿집을 지나 학교에 홀로 등교를 하고 다시 혼자 마을로 터덜거리며 걸어오고는 했다.

    동네 입구와 할아버지 댁 앞에 커다란 느티나무 고목이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면 노인들이 지팡이를 짚고 와 쉬는 곳이기도 했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내가 땀을 식히기 위해 잠시 앉아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인가 이 두 그루의 정자나무는 모두 사라져 버렸다. 동네 입구에 서 있던 느티나무는 베어지고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생겼고, 할아버지 댁 앞의 느티나무는 언제 왜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혼자 먼 길을 걸어 동네로 돌아올 때, 입구에 서 있는 느티나무는 마치 어머니처럼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산길을 돌아, 무섭게 느껴지던 상엿집을 지날 때 느티나무가 보이면 안심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그 나무가 그곳에 있다면 얼마나 정겹고 반가울 것인가? 이미 모든 것이 변해버린 곳이지만 느티나무 한 그루라도 변함없이 동네 어귀에서 반겨준다면 얼마나 고마울 것인가.

향교 부근의  비교적 좋은 환경의 느티나무

    내가 산책길에서 만나는 느티나무 모두는 내 어릴 적 동네 입구에 서 있던 정자나무와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의 추억 속에 서 있는 나무이고 많은 아이들의 미래와 함께 해야 할 나무들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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