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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Jan 25. 2023

17. 숙소만한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당탕탕 무계획 제주여행(17) 행복한 주택은 행복주택뿐?(230125)

오늘까지는 제주에 눈이 오고 한파주의보가 발령이 난 상태여서 방콕할 참이었다. 제주에 내려와서 연속 6일째 집콕이라니. 6일째 집콕이어도 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무엇보다 논문 한 파트를 마무리 지었으니 나름의 워케이션이라고 생각했다. 워케이션 중인데 어떻게 놀기만 하겠나. 숙소에서 연구도 했으니 된 거지. 어쨌든 일 하나 끝내서 마음 편하다 생각하던 차였는데 친구에게 그럴 거면 왜 제주도로 내려갔냐는 소리를 들었다. 


친구의 카톡에 악의는 없었다. 그 카톡에 기분 나쁘지도 않았거니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을 한 달이나 쪼개서 제주까지 내려갔으면 나가서 뭐라도 하는 게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은 합리적이니까. 그렇지만 난 합리적으로 여행하고 싶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워케이션이나 마찬가지니 일할 시간도 어느 정도 써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연구하는 시간을 배제하더라도 그냥 내 맘대로 살고 싶었다. 제주까지 내려와서 6일 동안 안 나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나는 적당히 생산적으로 살았지만 설령 그게 아니라 해도 괜찮다. 그냥 누워서 천장 무늬만 보고 있어도, 오후 2시에 겨우 눈떠서 핸드폰 좀 보다 보니 저녁 먹을 시간인 하루래도 괜찮다. 그곳이 제주든 한국이든 유럽이든 어디든 상관없다. 그냥 그 하루를 보낼 때 만족한다면 꽤 괜찮은 하루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여행의 목적이란 쉼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6일간 보낸 나의 집콕시간은 의미 있고 근사했다.


그렇게 의미 있고 근사했던 오늘은 어제 한 고비 마무리지었던 논문을 지도교수님께 메일로 전달해 드렸다. 어떤 식으로든 한 단계가 마무리되면 교수님께 메일로 전달해 드리곤 하는데 논문보다 더 어려운 게 메일 작성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번엔 논문 외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더 추가해야 했기에 단어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졌다. 그래도 어찌어찌 잘 마무리해서 메일도 보냈고 그 사이에 이전 직장에 전화로 원천징수영수증도 요청했다. 메일로 신청서를 보내준다던데 왜 아직도 안 왔는지는 모르겠네. 이번 주까지는 기다려봐야지.


그리고 문득 오늘이 행복주택 신청 기간이라는 게 생각났다. 지금 지내고 있는 오피스텔은 6월 중순이면 계약이 만료되는데 이번엔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할 생각이 없어서 새로운 집을 알아봐야 할 참이었다. 그때쯤 되면 다음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다음 집을 구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정부 대출을 끼고 들어간 집이라 상환하고 다른 대출상품을 알아보아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이사할 동네는 지금보다 더 가격이 높은 동네여서 보증금 마련도 고민된다는 점. 이것저것 생각할 게 한 둘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요즘은 전세사기로 시끄러운 마당에 개인에게 집을 얻는다는 게 불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행복주택과 같은 정부 공공임대를 알아봤는데 이것도 경쟁률이 너무 세서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고 행복주택에 신청하긴 했는데 이건 예비대기자니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6월에 바로 입주가 가능한 것도 아닐 테니 막상 당첨된다 해도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돈 떼일 걱정 없고 보증금이나 임대료도 저렴한 정부 공공임대가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류라도 제출할 수 있는 기회가 닿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신청을 마쳤다. 주거안정이 해결되어야 뭐라도 해볼 텐데 청년들에겐 이 문제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긴 미래를 약속한 요정님과도 이 얘기를 나누다 보면 걱정이 앞서지만 어쩔 수 없다. 모든 세대는 각자 가지고 있는 어려움이 있고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어떻게든 잘 헤쳐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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