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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쥐 Apr 05. 2022

카레 파티

혼자 먹는 카레는 '카레'가 아니다.


어릴 때 엄마는 종종 토요일 저녁이면

카레를 한 솥 끓이셨다.


나는 이걸 ‘카레 파티’라고 불렀는데, 준비하는 과정이 꽤나 벅적지근한 축제 같았기 때문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굉장한 솥이 필요하다. 모든 잔치엔 큰 솥이 필요한 법이니까. 주먹 쥔 팔을 넣으면 팔뚝에 반절은 너끈히 들어갈 솥에 물에 갠 가루 카레를 붓는다. 거기다 돼지고기, 양파, 감자, 당근, 브로콜리 그 외에도 냉장고에서 놀고 있는 야채 라면 무엇이든 큼직이 털어 넣었다. 온갖 야채를 다듬느라 싱크대는 이미 난장판이다. 유독 큰 솥에 카레를 끓이실 때면 방에 있던 나를 불러 야채 다듬기 심부름을 시키셨다. 평소엔 안 들리는 척 컴퓨터를 두들기던 나도 ‘카레 파티’ 날은 어기적 방 밖으로 나와 엄마를 도왔다. 입으로는 툴툴거리는 소리를 하면서도 곧 카레를 먹을 수 있다는 설렘에 달뜬 얼굴로 감자의 묻은 흙을 닦았다.


모두가 힘을 모아, 온 재료를 넉넉히 담아내면 노오란 카레 물에 빠진 야채들이 찰랑찰랑 금방이라도 넘칠듯했다. 모든 게 준비되면 비로소 가스불을 올린다. 카레 조리시간은 ‘감자가 익을 때까지’였기에 가루 카레 봉지 뒤에 붙은 조리시간을 중요하지 않았다. 감자가 익을 때까지 카레를 끓이자면 졸아든 카레가 냄비 한 귀퉁이 머물던 흔적을 끈적하게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카레 파티’ 날에는 내 방에 있다가도 그득한 카레향에 못 이겨 부엌으로 나와 카레 솥뚜껑을 열곤 했다. 가끔은 뭉근히 끓던 카레가 눌어붙기도 했는데, 졸아든 카레에 놀란 내가 ‘엄마! 카레가 졸아들었어!’라고 소리치면 아예 안방에 계시던 엄마는 무덤덤한 얼굴로 ‘물을 좀 더 부어’ 별일 아닌 듯 말씀하셨다. 그렇게 몇 번이고 물을 더 넣고 끓여 내면 군데군데 뭉쳐있던 뭉친 카레가 풀어지고, 말갛던 카레 물은 감자 전분과 어울려 질어진 카레향이 온 집안 가득했다.


마침내 감자마저 포슬포슬하게 익으면 카레 파티의 클라이맥스가 시작된다. 엄마의 ‘밥 먹자’라는 목소리가 신호탄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파티원들의 움직임은 빠른 춤 같다. ‘통!’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밥솥 뚜껑이 열리면 막 지은 구수한 밥 내와 수증기가 얼굴을 덮는다. 한 김 달아나면 얼른 오목한 그릇을 꺼내온다. 투박스러운 나무주걱으로 뜨거운 밥을 납작이 퍼내어 국자를 든 엄마에게 건넨다. 그 그릇을 받은 엄마는 그보다 더 뜨거운 카레를 한 국자 푹 퍼서 올린다. 다시 내가 그 그릇을 받아 상 위에 올려둔다. 노련한 댄스팀의 축하공연 같은 유려한 움직임이다.


막 지은 밥에 카레는 별다른 반찬이 필요치 않다. 그렇지만 차가운 신 김치는 예외. 묵은 만큼 맛이 들은 차가운 파김치나 신 김치를 꺼내오면 파티의 화려한 정점이라 할 수 있다. 기다린 만큼 더 맛있는 카레 한 술. 노란 이불을 덮어낸 더운밥 위 차갑고 빨간 김치를 올린다. 입에 넣으면 차가움은 잠시, 입천장이 데일만큼 뜨거운 카레가 닿는다. 입안이 데이면 데이는 대로- 흥겨운 축제를 즐긴 영광의 상처가 된다. 감자를 으깨고 밥에 잘 섞어 먹다 보면 금세 비워진 그릇들. 설거지통에 쌓인 노랗고 오목한 그릇들을 닦아내는 걸로 축제를 마친다.  


축제가 끝나 모두가 일터로 떠난 월요일이 되면 홀로 남은 내가 며칠이고 남은 카레를 데워 먹었다. 신기하게도 카레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혹시 특별한 카레가 먹고 싶은 생각이 들면 계란 하나만 있으면 됐다. 작은 키 탓에 앉은뱅이 의자를 두고 올라서 프라이팬에 계란 프라이 하나를 굽는다. 계란 프라이 올린 카레를 먹는다. 계란 프라이 하나에 카레라이스가 더 근사해진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카레를 먹었다. 카레가 가득하던 솥이 비워지는 금요일이면 다시 돌아올 ‘카레 파티’를 떠올렸다. 그런 생각을 하면 홀로 남은 카레를 뜨고 있으면서도 엄마와 나란한 식사를 하는듯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좋아하는 카레를 언제고 사 먹을 수도, 끓일 수도 있는 어른이 됐다.

그렇지만 혼자 끼니를 때울 때 카레를 먹지 않는다. 어릴 적과 같은 카레 가루에 야채지만 싫증이 난다.

혼자 카레를 끓여 보기도 했지만 홀로 참여한 잔치 같아 영 기분이 나질 않았다. 카레가 먹고플 때, 카레 재료 거리를 사들고 엄마에게 향한다.


'엄마 카레 해 먹자'


엄마와 나란히 서 감자도 썰고

카레 가루를 물에 갠다.

새 밥을 올린다.


다시 ‘카레 파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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