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지방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이유
지방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이 도시로 향하는 이유는 단순 일자리 때문은 아니다. 연고가 있는 지역에서 안정된 직장을 가질 수 있어도 한 번쯤은 도시 생활을 동경한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가는 이유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평가’를 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평가에 익숙하다.
10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을수록 칭찬을, 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을수록 질타를 받는다. 획일화된 교육시스템에서 ‘점수’란 자신을 ‘평가’하는 수단이 된다.
교육시스템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오게 되면, 자신을 평가해줄 곳이 없어지게 되자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존재 증명’의 시대이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주길 바라며 지방을 떠나 도시로 향하게 된다.
지역에서 호평을 받으며 자라왔지만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라며 더 넓은 곳에서 경쟁을 자처한다. ‘100명 중 1등이었다면, 1만 명 중 나는 몇 등일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더 넓은 곳에서 경쟁의 상위권을 차지하겠다는 야망 있는 사람만이 도시로 가는 것은 아니다.
평가에서 자신의 ‘등수’는 상관없는 이들이다. 이들은 그저 자신의 ‘점수’를 알고 싶을 뿐이다.
자신의 점수를 알아야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목표는 어느 정도로 세워야 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젊은이들이 불안과 무기력에 빠지는 이유는 그저 ‘높은 점수’가 자신의 ‘사회적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정밀도 높은 평가를 원한다면 ‘스펙’과 같은 객관적 비중을 늘리면 된다. 하지만 객관적 평가가 과잉되면 사회는 다양성을 잃어가고 규격화된 청년들만 남게 된다.
인터넷에 자기소개서 모범답안이 알려지게 되자 한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청년들은 자신의 주관은 뒤로한 채,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규격화되는 것을 자처하고 있다.
반면에 자신의 ‘존재 증명’의 수단이 ‘객관적 평가’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남들이 하는 평가와 점수에는 관심이 없다.
남들이 다 하는 것과 그 안에서 경쟁의 우열을 가리는 것에 흥미가 없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알기에 남들이 하는 평가에는 관심이 없다.
사회는 이루는 구성은 규격화된 사람들이 아닌, 각자의 개성이 모여있는 곳이어야 한다.
더 이상 객관적인 평가와 점수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도시를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지금 한국에는 러스틱라이프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가제) 러스틱라이프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