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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차장 Oct 05. 2022

#3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난 인생 차

미팅과 우엉차

나름 열심히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늘어난 건 체력이 아니라 두려움

같은 회사에 다닌 지 11년.

몸담았던 부서 3개.

마케팅/영업 부서 영업직 4년 차.

한 해 평균 업무미팅 40회.


 여러 부서를 옮기며 쌓은 경험이 없었다면 결코 지금의 업무에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표님과 이사님의 권유로 시작한 영업직이지만 아직도 이 길이 내 길인지 의구심이 든다. 원체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영업직을 맡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딱히 잘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못하는 것도 없어서 이것저것 했던 경험이 여태까지 이 회사에서 살아남은 원동력이 되었달까.(물론 커피도)


 누구나 처음이 어렵지 맞닥뜨리고 나면 별거 아닌 게 된다. 난생처음 혼자 미팅 나갔을 때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분명히 전화를 몇 번인가 주고받던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들어가기 전 건물 앞 흡연실에서 줄담배를 태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담당자도 꽤나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약속시간도 늦은 녀석이 말도 더듬고 덜덜 떨고만 있었으니. 한번 긴장하기 시작하면 그게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커피? 차? 뭘로 드릴까요?


 미팅을 가면 보통 "안녕하세요" 다음에 "마실 것은 뭘로 드릴까요?" 물어온다. 지금은 일 년에 대략 30~40회 미팅을 나간다. 1년에 새로운 커피나 차를 마실 기회가 30~40회 되는 것이다. 미팅을 많이 가는 편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코로나19로 인해 직접 가는 일이 줄었다. 재택근무가 한창일 때는 비대면 미팅도 가끔 하고는 했다. 첫 대면의 긴장감은 다를 바 없지만 속내를 들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다.  자고로 미팅은 뭘 마실지 물어보면서 시작하는 게 관례인데 비대면에선 그런 것이 없으니 약간 허전하다. 비대면 미팅을 할 때는 일부러 커피든 차든 뭔가를 떠 놓고 시작했다.


 지금은 예전처럼 다시 대면 미팅을 나간다. 여느 때처럼 단골 고객의 미팅 요청이 있는 날이었다. 회사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고객이었는데 당일날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한 정거장밖에 안 되는데 걸어가긴 멀고 버스를 타긴 가까운 그런 곳이었다. 다행히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느긋하게 준비했다. 그런 날은 꼭 버스를 놓친다. 조금이라도 늦게 나온 내 탓이겠거니 하며 버스를 기다리는데 점점 마음속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초여름에 가까운 날씨였는데 등골이 서늘해졌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흡연할 새도 없이 뛰기 시작했다.


따뜻한 차로 주세요


 다행히 약속시간은 지켰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흥분과 긴장이 뒤섞여 나도 모르게 따듯한 차를 달라고 했다. 등줄기로 흐르는 땀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쨌든 담당자는 차를 내왔다. 적당히 따듯할 리 없었다. 보통은 매우 뜨거운 물에 차를 타니까. 컵 표면을 잡는 순간 물의 온도를 대략 알 수 있었다. 후~후~ 불어 표면을 식혔지만 여전히 먹고 싶진 않았다. 그때까진 알지 못했다. 그 차가 인생 차가 될 줄은. 담당자와의 대화에 집중할 정신이 아니었는데, 그 순간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향에 온 정신이 컵으로 쏠렸다.


  차맛은 익숙하지 않은 쪽에 더 가까웠다. 첫맛은 살짝 떫은맛인 것 같았는데 이내 구수함으로 바뀌어 혀에 착 달라붙었다. 보리차와는 또 다른 구수함이었다. 미팅을 나가면 보통 커피 아니면 녹차를 주기 마련이다. 사내에 비치돼있는 차 종류가 많지 않은 건지 아니면 접대용 차는 원래 정해져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처음 먹어보는 맛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담당자에게 무슨 차인지 물었더니 그냥 우엉차라고 했다. 처음이었다. 커피, 녹차 외에 다른 차를 준 곳은.  마실 수록 뭔가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흥분이 가라앉고, 생각이 차분해졌다.


 어찌 됐건 미팅은 적당히 잘 끝났다. 업무에 대한 두려움도 설렘으로 바뀌어 있었다. 차를 마시면서 긴장이 풀린 건 확실했다. 그렇게 우엉차와의 첫 만남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우엉차 맛이 독특해서 호불호가 강하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우엉 뿌리, 출처 : 위키백과

우엉은 국화과에 속하며 보통은 뿌리를 식용한다. 유럽에서는 이뇨제나 발한제, 독충의 해독제 등 약제로 많이 쓰이며, 한국에서는 김밥에 많이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엉차는 우엉을 말리고 덖어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는데 혈액순환을 돕는 사포닌 성분이 들어있어 혈압을 낮추고, 뇌질환, 심장병, 염증에 좋다. 찬 성질을 가지고 있어 찬기운의 사람이 과하게 마시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탄닌 성분이 아마도 떫은맛을 나게 한 듯하다. 약한 불에 제대로 덖어야 구수한 맛이 강해진다.



 지금도 가끔 릴랙스가 필요할 땐 우엉차를 마신다. 미팅 때 느꼈던 그 맛은 나지 않는다. 그 맛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는 적당한 긴장감과 두려움이 필요한 게 아닐까. 가끔은 내 기분에 따라 차 맛이 바뀌는 것 같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나를 맞추기 위해, 온전히 이 길을 달리기 위해 차로서 나를 달래 본다.


 간단히 효능을 적으며 마무리.

혈액순환 개선

당뇨 개선

여성질환 개선

뼈 건강

장 건강

피부미용

항암효과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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