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안나 30화

안나

30. 폭파

by 정의연

봄이 미친 듯이 달려왔다. 들판은 아침과 저녁이 다르게 푸르렀다. 꽃들은 땅 위에서 나뭇가지 위에서 서둘러 꽃망울을 터뜨리고 꽃잎을 벌여 잘 오지 않는 벌 나비를 부르며 존재 이유를 증명하느라 바빴다. 안나는 그러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봄이 해당화 울타리를 넘어 마당까지 올라오고 나서는 갑수 씨가 많이 바빠졌다. 차근차근 통발과 그물을 준비하고 날마다 어장이 있는 바다로 나갔다. 새벽 일찍 배를 몰고 나가 점심 무렵 만으로 빨린 마을 어항으로 들어와 잡아 온 고기를 어판장에 넘기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다. 별로 돈 쓸 일이 없는 그의 통장에는 그가 바다에서 건져온 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가 자신이 먹을 반찬거리를 빼고는 모두 어판장에 넘기고 오기 때문에 안나는 그가 잡은 물고기를 다 볼 수는 없었다. 그게 뭐 서운한 것은 아니었다. 안나는 남편과 함께 바다로 나가는 마을의 다른 아낙들처럼 갑수 씨가 일하는 모습들…, 배를 몰고 새벽 바다로 나가는 모습, 그물과 통발을 놓아 고기를 잡는 모습, 잡은 고기를 싣고 어항으로 돌아오는 모습, 그 고기를 어판장에 넘기고 넉넉한 걸음으로 돌아오는 모습들을 눈으로 그려 보지만, 때로 갑수 씨의 집을 벗어나 어린아이처럼 어설픈 동작으로 느릿느릿 백사장을 거닐며 그가 일하고 있을 바다를 내다보지만 자신의 몸으로는 그 시간을 그와 함께할 수 없어,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었다.


봄이 깊어갈수록 갑수 씨의 바깥나들이도 빈번해졌다. 바다에서 돌아온 갑수 씨는 점심을 먹고 한숨 잔 뒤 일어나 안나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밖으로 나가 저녁 무렵 들어오거나 아예 저녁을 밖에서 먹고 밤에 들어오기도 하고 어디선가 밤을 새우고 새벽에 들어와 바로 바다로 나가기도 했다. 가끔은 술에 취한 발걸음이었다.


노랗게, 저 아래 마을 집 담을 넘던 개나리꽃은 오래전 땅으로 지고 그 자리에 초록 잎새가 무성해졌다. 소리 없이 흘리는 눈물처럼 봄비가 왔다 가고, 이따금 바람이 비질을 하듯 해안을 훑었다. 때로 바람에 솟구친 백사장 모래가 날려 지는 꽃잎처럼 해안도로를 덮었다. 날씨가 험한 날에는 갑수 씨도 바다에 나가지 않았다. 바깥나들이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날 그는 안나 곁에서 안나가 솜씨를 발휘해 내려준 커피를 마시고, 텔레비전 뉴스를 듣고, 안나와 이야기를 하고, 잘 되지 않아도 함께 벗고 뒹굴고, 다시 일어나 차를 마셨다. 그런 날은 안나가 두 배로 행복한 날이었다.


안나와 달리 갑수 씨는 뉴스 보기를 좋아했다. 혼자 살 때 밴 버릇이라고 했다. 이제는 둘이 같이 사니까 함께 볼 수 있어 좋다며 자주 안나에게 텔레비전을 켜달라고 부탁했다. 안나가 존재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그 나름의 배려였다.


최첨단 러브봇 ‘진정한 동반자’ 출시!


우리는 다만 옆에 같이 있는 기계가 아니라 살아 같이 활동하는 진정한 동반자를 원합니다.


안나가 막 텔레비전을 켰을 때 러브봇 광고가 시작되고 있었다. 모든 가전 로봇을 비롯해 로봇 광고는 이미 광고의 대종을 이루고 있었다.그 광고 속에는 온갖 분야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새로운 로봇 제품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저렇게까지…?


갑수 씨는 특히 러브봇 광고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안나는 그것이 함께 지내는 자신 때문인지 생태환경론자인 그의 성향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인간과 함께하는 기능이 많을수록 러브봇은 더 완벽한 ‘진정한 동반자’가 됩니다. 더 바랄 게 없는 완벽한 섹스 기능, 어떤 이야기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깊이 있는 대화 기능, 함께 잔을 부딪치고 술을 마실 수 있는 음주 기능, 재료만 제공하면 전 세계 음식 222가지를 미슐랭 가이드 수록 쓰리스타 레스토랑 수준으로 조리할 수 있는 조리기능, 사용자와 함께 어디든 같이 이동하고 같이 활동할 수 있는 액티비티 기능…, 지금 외롭고 누군가가 곁에 있으면 좋겠다 싶으신 분, 사용하고 있는 러브봇이 삐걱거리거나 낡으신 분, 싫증이 나서 교체하고 싶으신 분들은 손들어 주세요.


안나는 섬뜩했다. 저 깊은 곳에서 차오른 압박감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새로운 러브봇은 술을 마시고 기분 좋을 정도의 취기를 느낄 수 있으며, 마신 술은 분해해 물은 눈물주머니에 저장하고 나머지는 인공 방광에 저장했다 배설 처리한다는 설명 같은 것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가 자신의 약점을 송곳으로 깊이 찌르고 있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재밌어요?


안나는 손바닥으로 가슴을, 그리고 통증을 누르며 물었다.


재밌지.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안나는 갑수 씨가 재밌으면 됐다고 마음을 다독이면서도 묻고 싶었다.


그렇구나! 새로운 기능을 가진 제품들이 저렇게 마구 쏟아져 나오는구나, 싶은 거지. 안나가 내 곁에 있으니까 저런 뉴스가 자꾸 귀에 걸리고 새롭게 느껴지면서도 재밌는 거고.


갑수 씨가 안나를 당겨 안았다. 퉁탕거리던 안나의 가슴이, 그리고 온몸을 지배하던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안나는 금세 행복해졌다. 갑수 씨가 안아주고 품어줘서 행복했다. 사위스럽게도 이 행복이 깨질까 봐 두렵기도 했다. 너무 행복한 사람들이 겪는다는 불안이었다. 그만큼 안나 자신이 행복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안나가 곁에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


갑수 씨가 따뜻한 눈빛으로, 약간은 젖은 듯한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어디론가 사라질 사람 같은 목소리였다. 안나는 그 쓸쓸한 기운을 지우고 싶어 얼른 말했다.


나두요!


널 만나기 전에는 문명에 대한 저항감이라고 할까, 봇들에게 거부감이 있었거든. 내가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일종의 편견이었겠지만.


갑수 씨는 안나를 다시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안나는 이 바다 냄새나는 사내의 품이 넉넉하고 포근했다.



어느 날 갑수 씨가 바다로 나간 사이, 택배 드론이 커다란 나무 박스를 마루에 놓고 갔다. 박스는 완충 비닐로 겹겹이 싸여있었다.


바다에서 돌아온 갑수 씨는 마루에 놓인 택배 박스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안나, 우리 커피 마실까?


샤워를 하고 나온 갑수 씨가 벗은 몸 그대로 물었다. 그의 몸은 아직 탄탄했지만, 어깨와 가슴, 팔 뒤쪽 피부 거죽에는 그의 몸을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 주름으로 밀리거나 늘어지고 있었다. 앞이마도 그렇지만 정수리의 옹달샘 면적 또한 뒷머리까지 눈에 띄게 넓어지고 있었다. 그 부분을 빗어 덮으려고 기다랗게 기른 옆머리의 듬성듬성한 머리카락들이 더 애처롭게 보였다. 그렇지만 그 속에는 시간의 흐름을 오래 간직한 존재들이 주는 따뜻함이 있었다. 애처로운 따뜻함이었다. 새롭고 반짝이는 것들이 주지 못하는 친숙한 편안함이었다. 적어도 안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네, 갑수 씨!


안나는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리고 잔 두 개를 다탁 위에 놓은 다음 알맞게 식은 커피를 잔에 따라놓고 갑수 씨 옆에 앉았다. 갑수 씨가 커피잔을 입에 가져가는 것을 보고 안나도 커피가 든 잔을 입술에 댔다가 천천히 내려놓았다. 안나는 그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독이 들었다 해도 마시고 싶었다. 적어도 마시는 흉내라도 내고 싶었다. 갑수 씨가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넣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우리 안나가 내려주는 커피는 이 세상 최고야, 항상 최고야!


갑수 씨는 마음이 환해진 안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오늘은 어땠어? 잘 놀았어?


그럼요! 갑수 씨 기다리며 자~알 놀았죠.


그렇구나! 내가 바다에 나간 사이 어떤 소식들이 들어와 있는지 볼까? 안나, 텔레비전 켜줄래?


갑수 씨의 음성은 언제나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 목소리에는 안기고 싶게 하는 어떤 물질이 묻어있었다.


네, 갑수 씨!


안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밝게 웃었다. 갑수 씨의 부탁은 언제나 자신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방금 들어온 뉴스입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는 오늘 국회의원, 수사청 간부, 메이저 언론사 기자가 불법 로비와 봐주기 수사, 홍보성 보도로 얽힌 뇌물 커넥션을 확인하고 수사에 들어갔다고 밝혔습니다.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지목된 수사청 간부는 관련 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로봇 몸에 사람 머리를 이식한 이른바 장기이식 로봇으로 밝혀진 언론사 기자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수사는…


갑수 씨가 다시 안나의 뒷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줬다. 거듭 느끼는 것이지만 안나는 자신이 갑수 씨의 미자라서 너무 좋았다. 화면에 국회의원을 비롯한 사건 관련자들의 실루엣 이미지, 유리창처럼 빛나는 맑고 큰 안경을 쓴 청년의 키 크고 가느다란 이미지가 스쳐 지났지만 안나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 안나, 근데 이게 우리가 함께 보는 마지막 뉴스가 됐네! 그동안 너무 고생했어. 셀 수 없이 여러 번 느꼈겠지만 너두 그만 쉴 때가 됐어. 오랫동안 그 삐꺽거리는 몸으로 최선을 다했잖아. 고마워, 정말 고마워! 네가 내려주는 커피는 더는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없을 거야.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네! 네가 있어 내 생의 끝자락에 진한 커피 향이 났는데…. 그런 깊은 향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정말 고마워!


안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얼른 알아들을 수 없었다. 멍한 눈으로 갑수 씨를 바라보고 있는 안나가 무슨 판단을 하고 미처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갑수 씨는 안나의 몸을 번쩍 들어 안고 마당 끝으로 갔다. 그는 안나를 저 밑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아스라한 언덕 위 해당화 가시덤불 사이에 내려놓고 전자칩이 내장된 거무스름한 반죽을 안나의 컨트롤 박스에 붙였다. 안나는 화약 냄새가 자신의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안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얼른 파악이 되지 않았다.


갑수 씨가 안나를 다시 안았다. 그는 혀로 안나의 귀를 핥고 이빨로 귓바퀴를 살짝 깨문 다음 안나의 귀 안에 입을 바짝 대고 속삭였다. 그의 몸에서 화약 냄새가 훅 끼쳐왔다.


고통 없이 가도록 최대한 빨리 보내줄게. 너 때문에 새로운 세상을 알았어. 정말 고마워! 잘 가!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어서 안나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안나가 온 힘을 다해 팔을 들고 뭐라고 말하려는 사이, 빠른 걸음으로 안나에게서 멀어진 갑수 씨가 마루 기둥에 기대서서 무선 기폭장치를 눌렀다. 안나의 컨트롤 박스 속에서 치지직 소리가 나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순간적으로 전기가 나갔다 다시 들어오는 것처럼 안나의 눈이 잠깐 흐려졌다 다시 밝아졌다. 갑수 씨가 당황해하며 안나 쪽으로 달려왔다. 컨트롤 박스가 완전히 폭파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저 사람이 자신이 알던, 자신이 사랑한, 그래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에게 사랑을 줬던 그 갑수 씨가 맞는 걸까?


안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안나는 생각을 집중하기 위해 온몸의 기를 끌어 모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끝에 다다른 것 같았다. 끝에 내몰린 것 같았다. 너무 속상했다. 갑수 씨와 함께하는 자신의 끝이 이런 모습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이렇게 가야 된다면 나는 어디로 가는 거지?


생태환경을 중시하는 갑수 씨가 땅에 묻어줄 것도 아니라면. 아이들 장난감도 되지 못하는 자신은 봇 쓰레기장으로 보내질 것이었다.


안나의 눈에 산처럼 쌓여있던 봇 쓰레기들이 얼비쳤다. 그게 자신의 미래라는 것을, 그곳이 자신의 종착지라는 것을 잠시 잊고 살았던 것이 문제였다.


더 깊이 바닥까지 내려가 자신을 만났어야 했는데 중간에 마음이 풀어져 갑수 씨에게 기댔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한낱 섹스 노동봇에 불과하다는 것을 외면한 채, 그 본질을 잊은 채 사람을 믿고, 사람에게 기댔기 때문이었다. 바보같이…. 밀레의 그림 속에서 흘러나왔던 저녁 종소리를 외면하고, 할머니네 여관에서 같이 일하는 옆방의 봇들이 누군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저 자신 속으로만 굴을 파고 들어가 따로 놀은 과보였다, 정말 바보같이….


그렇더라도 이것은 아니었다. 너무 과도한 과보였다.


안나는 슬펐다. 지극한 믿음을 줬던 상대한테 배신을 당한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었다. 안나는 자신의 몸이 슬픔에 절어 갈래갈래 찢어져서 이윽고 분쇄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안나는 그것이 더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사이 단 한 방울도 남지 않고 눈물이 다 말라버린 것 같았다. 아니면 아직도 눈물이 흐르는 지극한 슬픔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일까, 아직도?


지금 그걸 탓할 겨를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렇게 파괴돼 버려진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런데 왜 이토록 자신의 각성과 반응이 늦다는 말인가? 갑수 씨가 말을 꺼냈을 때, 아니 그전에 그런 낌새를 보였을 때 알아채고 반응했다면 적어도 이 지경에 이르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안나는 분노가 치밀어 몸이 바르르 떨렸다. 자신이 이런 존재라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폭파되는 것을, 그토록 사랑하고 사랑을 받았던 사람에게 존재가 부정되고 원하지 않는 소멸을 맞게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안나는 다 부숴버리고 싶었다. 마음먹으면 못할 것도 없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끝날 수는 없었다.


안나의 몸을 살펴보고 간 갑수 씨가 다시 한번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나 폭파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당황한 갑수 씨가 손가락으로 기폭장치를 마구 두들겼다. 안나는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컨트롤 박스에 붙은 폭약을 떼어내 멀리 내던지고 언덕 아래로 몸을 굴렸다. 갑수 씨가 또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떼어낸다고 떼어냈지만 몸에 아직 화약이 묻어있어 언제 어떤 폭파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갑수 씨와 무선 폭파 스위치의 작동거리에서 최대한 멀어져야 했다.


언덕 아래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 안나는 온몸이 쑤시고 아파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몸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더 이상 몸을 핑계 댈 수도 없었다. 안나는 일어나 절뚝거리며 걸었다. 언덕 위 마당 끝에서 갑수 씨가 멍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것을 곁눈으로 봤지만 안나는 재우쳐 걸었다. 언덕 위에 서있는 그도 불쌍하고, 이렇게 도망쳐야 하는 자신도 참 불쌍한 존재라는 생각이 앞을 뿌옇게 막았다. 안나는 자신의 눈에서 갑작스레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눈물이 볼을 타고 가슴께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체온과 열기가 보태진 뜨뜻한 눈물이었다.


봄이 상륙한 들판은 푸르렀다. 안나는 그 푸른 기운이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는 것을 느꼈다. 안나는 절뚝이며 들판을 건너고 해안도로를 건넜다. 소나무 숲을 지나자 백사장이 나왔다. 그리고 바다였다. 봄의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였다. 안나는 가슴이 트이는 것을 느꼈다. 눈물도 이미 멈춰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백사장을 걸으면서 안나는 자신이야말로 야생봇이 됐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야생봇, 그것은 여태까지 몰랐던, 섹스봇이 아닌 다른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와 독립, 자생과 자강의 다른 이름이었다. 어쩌면 고립과 조난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고. 안나는 어서 빨리 광야를 떠도는 다른 봇들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설 '안나' 연재가 끝났습니다.

그동안 새로운 회차가 발행될 때마다 새벽시간 낮시간 저녁시간 가리지 않고 읽어주신 독자님들, 쌓아두었다가 한꺼번에 읽어주신 독자님들 모두 고맙습니다.

혹 다 읽고 나서 느낀 점이나 생각하신 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짧게라도 댓글에 적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메일로 보내주셔도 좋구요.


가능하면 올 안에 새롭고 재밌는 작품으로 다시 만나뵙겠습니다.


KakaoTalk_20241230_214242396.jpg

by 박하(park ha)




keyword
화, 목 연재
이전 29화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