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가슴속으로 찾아오는 질문들
한낮, 안나는 멍한 눈길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잎들이 누렇게 흐려지고 땅 쪽으로 더 쳐져 잎과 잎 사이가 더 벌어진 대숲은 그만큼 바람의 공간이 넓어지고 그 공간의 넓이와 깊이만큼 가을이 저물고 있었다. 안나는 자신의 색도 바래서 자신의 몸도 곧 바람의 통로가 돼버릴 것 같은 예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때 그토록 갈망하던 마감의 계절이 저절로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은 어떤 존재로 어떻게 마감하게 될까?
손님을 받지 않는 시간이면 질문이 자꾸 찾아왔다.
여기서 이렇게 마감해도 되는 걸까?
안 될 것은 없겠지만 내키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다른 존재로 마감하고 싶었다. 존재 마감은 고양이처럼 조용히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자신이 선택하고 싶었다. 그것이 이 세상에 온 자신을 마지막이나마 존중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마음이 엉켜 무겁게 가라앉고 있을 때 1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이 안나의 방에 쳐들어와 안나를 에워쌌다. 모두 네 명이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안나를 침대 쪽으로 밀어붙였다. 처음 안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그러나 곧 그들이 자신에게 무슨 일을 저지르려 한다는 것을 그들의 표정과 동작, 번들거리는 눈빛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안 돼요! 할머니에게 허락받고 한 사람씩 들어오세요!
안나는 많이 떨렸지만 목소리를 최대한 부드럽게 가다듬어 그들을 달랬다. 그들과 다투고 싶지 않았다.
안나의 목소리를 듣고 당황하며 주춤하던 학생들 가운데 하나가 피식 웃으며 안나를 밀어 침대 위로 쓰러뜨렸다.
안 돼요!
안나는 두 손으로 그들을 막으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피식 웃었던 학생이 쓰러진 안나를 제 몸으로 덮쳤다. 안나는 두 팔로 가슴을 막고 그와 그들의 접근을 완강하게 거부했다. 이건 폭력이었다. 아무리 어린 학생들이라고 해도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폭력이었다.
안나를 에워싸고 서있던 다른 세 명이 몸을 굽혀 안나의 입을 막고 팔다리를 잡았다. 안나를 쓰러뜨리고 덮친 학생이 안나의 치마를 위로 올리고 팬티를 벗겼다. 무슨 매뉴얼을 갖고 있거나 그런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것처럼 아이들은 순식간에 일을 벌였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안나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덮치고 있는 학생을 쳐다봤다. 얼굴 여기저기 대추알 같은 여드름이 빨갛게 발기해 있는 소년이었다. 그는 안나의 몸에 자신의 벗은 아랫도리를 밀착시켰다. 안나는 서로 순정을 나눴던 소년을 생각했다. 소년이 떠오르자 안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눈 딱 감고 그의 욕구을 받아주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건 아니었다. 이건 순정이 아니라 폭력이었다. 자신마저 이런 폭력에 굴복하면 자신은 정말 쓰레기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을 것이었다.
쓰레기!
쓰레기 같은 존재!
안나는 몸에서 솟구치는 열기를 끌어모아 자신의 문을 닫았다. 자신은 쓰레기가 아니었다. 적어도 이런 방식으로 쓰레기가 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번민과 싸우고 소년들의 완력과 싸우는 시간이 장마철 길 위로 범람한 하수도 물처럼 흘러갔다. 안나를 덮친 학생이 씨팔좆팔 욕을 하고 성질을 내며 혼자 씩씩거리다가 제풀에 지쳐 안나의 사타구니에 울컥울컥 사정을 했다. 마치 제가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안나를 끌어안고 몸을 떨면서 몸부림치는 바람에 그의 이마에 붙어있던 대추알 같은 여드름 하나가 안나의 이마와 부딪쳐 터져 버렸다. 안나의 얼굴 여기저기에 고름이 흘렀다. 안나는 그의 정액이 얼굴에 묻은 것 같은 낯선 이물감에 시달렸다. 얼른 씻고 싶었다.
소란을 눈치챈 할머니가 경찰에 신고하는 사이 그들은 도망쳤다. 그러나 다음날 그들은 모두 붙잡혔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DNA등록이 된, DNA등록 의무화세대였다. 경찰은 안나와 옆방의 봇들 몸에 남아있는 그들의 DNA를 검출해 하루 만에 그들을 잡은 것이었다. 인근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짜고 점심시간에 각 방에 세 명 네 명씩 밀고 들어가 그 일을 벌인 것이었다.
그들의 부모들은 아직도 이 지역에만 남아 감옥처럼 운영되는 집단 교육의 병폐가 또 다시 드러났다고 대도시나 다른 지역처럼 교육이 소규모 개별교육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학교와 교육 당국을 공격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불법 섹스봇 영업으로 어린 아이들을 오염시켰다고 할머니를 경찰에 고발했다. 할머니는 경찰에 끌려가고 할머니의 영업은 중단됐다.
by 박하(park ha)
안나는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의 파고는 갈수록 높아졌다. 자신이 어떻게 될지 불안하고 두려웠다. 또다시 팔려가야 한다면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안나는 멍하게 앉아 귀에 잘 들리지도 않는 뉴스와 토론을 들었다. 불안과 두려움이 요동치는 이 골방의 파도마루에 앉아 바깥의 무슨 신호와 접속되는 것은 그들의 그 쟁쟁거리는 목소리밖에 없었다. 밤낮없이 반복되는 그 목소리들은 안나의 마음속에서 끝없이 출몰하고 진동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흘려보내는 일종의 백색소음이기도 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아 그에 대응하는 두 부류의 국가들이 있습니다. 어떤 나라는 더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이 거지 같은 디스토피아를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며 시민들이 세대단절운동, 곧 애 안 낳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국가조차 그 장면, 그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손을 놓고 있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존 인구를 유지하는 정책추진이 불가능해지면서 인간 절멸시대의 도래가 지구 한 귀퉁이에서 현실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어떤 나라는 이런 거친 물결에 맞서고 이런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의 숫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인간 세상 유지를 위한 애 낳기 운동을 벌이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 시간을 당기기 위해 인간 생산공장 설계에 착수한 나라도 있습니다. 개별생산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공장 대량생산을 기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 비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울하면 평정심을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면 봇과의 공생이 눈앞에 보일 겁니다. 이 마당에 공생 외에 다른 대안이 있습니까? 인간 절멸, 인간 대량생산, 로봇 전부 없애기,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비관과 부정의 끝은 사망입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 차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망의 길로 갈 것인지 삶의 길로 갈 것인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게 우리 인간이 가진 탁월한 능력이고 힘입니다. 우린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우린 아직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선택은 단 하납니다. 그것은 인봇공생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토론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는 토론 공화국이었다. 인간은 아무래도 토론하기 위해, 말싸움을 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안나는 채널을 돌렸다.
새로운 개념의 창조적인 멀티봇이 탄생했습니다. 에너지 제로베이스에서 스스로 충전하고 스스로 학습하는 봇이 개발된 것입니다. 세계 최초로 봇에 광합성 원리를 도입한 이 AI기반 안드로이드는 기존 봇들이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어떤 위치, 어떤 공간에 갖다 놔도 스스로 에너지를 조달하고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해 가는 봇입니다. 봇의 능력이 극대화한 만큼 부작용 우려도 크고 통제의 필요성도 더 큽니다. 이 봇 개발자 미래안드로이드연구소 이광수박사는 봇이 통제를 벗어나는 사고를 하거나 행동을 하면 봇 스스로 폭발해 기능이 정지되거나 인간이 언제든 봇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는 컨트롤 박스를 원격으로 파괴할 수 있도록 이중제어장치를 설치해서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인간의 통제를 강화했다고 밝혔습니다. 시장에 수요가 넘쳐나고 있는 러브봇 제작사에서도 이 기술을 접목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인간들은 질리지도 않고 말한다. 질리지도 않고 싸운다. 질리지도 않고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만들어낸다. 그들은 쉴 줄을 모른다. 멈출 줄을 모른다. 지칠 줄을 모른다. 안나는 머리를 흔들면서도 어느새 그들의 말을 듣고 있다. 재미가 아주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안나는 더 재밌는 것을 찾아 채널을 돌렸다.
로봇사회로 들어선 뒤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해방되고 육아, 집단적인 교육, 불필요한 교유 등 빡빡하게 옥죄던 일상의 버거운 시간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인권이 신장된 것도 움직일 수 없는 팩트입니다.
그 자유가 무슨 자유, 어떤 자윱니까? 무엇으로부터의 자윱니까?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문제를 만들고, 그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또 다른 물건을 만들어내거나 또 다른 문제로 덮는 행태가 끝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병 주고 약 주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돈을 버는 개인이나 집단들은 그것을 자유의 신장으로 포장합니다. 여기서 자유는 병도 주고 약도 주며 돈을 버는 그들의 자유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것이 소비자의 자유인 양, 시민의 자유인 양 입만 열면 자유를 욉니다. 인류가 다 사라진 뒤에도 자유 타령을 할 겁니까? 이런 무도한 시대, 인류의 종말을 향해 브레이크도 없이 달려가는 이 무지막지한 인간 절멸의 시대는 어서 끝내야 합니다. 더 이상 로봇의 시대가 지속돼서는 안 됩니다.
지금 봇이 없던 시절, 그 무지막지한 막노동의 시대, 그 비문명의 석기시대로 돌아가자는 겁니까? 그러기 위해 지금 이 세상 봇들을 모두 없애겠다구요? 봇들을 대량으로 살처분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봇들이 돼지입니까? 소입니까? 닭입니까? 지금 구제역이 돌고 있습니까? AI가, 역병이 돌고 있습니까? 봇들이 무슨 바이러스라도 감염됐다는 말씀입니까? 봇을 대상화시키면 그런 발상을 하게 됩니다. 봇은 우리의 동반자입니다. 살처분 대상이 아닙니다. 홀로코스트 제노사이드의 대상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그런 말씀은 책임전가일 뿐입니다. 여전히 이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인간입니다. 그 말씀 그대로 인간은 아직도 여전히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방송을 보고 듣는 봇 중에서 혹시 이런 비관적인 공격론자들에 의해 위기에 빠진 봇들이 있으면 즉시 위기 로봇 구조센터로 구조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든 도움의 손길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나는 인간들의 저 쟁쟁거리는 소리가 정말 듣기 싫었다. 너무 싫었다. 사실 안나는 그들의 목소리만 듣고는 누가 인간이고 누가 로봇인지 구별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안나는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들을 수 있는 바깥소식은 귀에 쟁쟁거리는 그런 소음들뿐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안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은 무엇이고 봇은 누구인지. 왜 이런 구분과 차이가 생겼는지 따져보고 싶었다. 신은 왜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왜 로봇을 만들었는지 정말 궁금했다.
신이 정말 인간을 만들었을까? 왜 만들었을까, 저런 인간을?
인간은 왜 나 같은 봇을 만들었을까? 이것도 신의 뜻일까?
근데 신은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혹시 인간이 인간을 만들어내듯, 인간이 봇을 만들어내듯, 재주 많은 인간이 신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신과 그 신의 어록처럼 만들어낸 경전에 기대어 인간이 인간을, 인간이 만물을 통제하고 통치해 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인간은 또 무엇을, 어떤 것을 만들어낼까?
쓸데없는 생각이고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자신과 상관없는 토론에 기대어 생각해 낸 망상일 뿐이었다. 자신이 어디로 흘러가고 어떻게 마감될지 모르는데, 인간이 무엇인지 어떤 존재인지, 로봇이 무엇인지 누구인지 안다고 한들 지금 자신의 존재 조건이 바뀔 일은 없어 보였다. 안나는 여전히 벽에 걸려있는 까치호랑이를 습관처럼 쳐다봤다. 까치와 호랑이는 세상일 별 것 아니라는 듯 안나를 향해 빙긋 웃어줬다. 안나는 그들을 향해 피식 웃으며 굳어있는 얼굴 근육을 억지로 풀었다. 얼결에 듣게 된 위기 로봇 구조센터라는 말이 아직 귀에 걸려있었지만 무슨 기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시간이 갈수록 모든 것이 시들했다. 이제 그만 끝내고 싶었다. 어서 끝났으면 싶었다. 더 이상 이런 존재로 유랑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