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재재판매
어디선가 할머니의 아들이 나타났다. 그도 이미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였다. 그는 경찰서를 들락거리고 있는 할머니에게 이제 제발 여관 그만하라고, 이런 짓 그만하라고 소리쳤다.
이런 짓? 너 말 잘했다. 이런 짓으로 느덜 키우고 가르쳤어, 이눔아!
할머니는 속상해하면서도 가라지 세일을 하듯 봇들을 마을에 내놨다. 아들의 말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봇들과 함께 하는 삶의 무게, 그 불법 영업의 무게를 더는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제일 먼저 갑수 씨가 달려와 안나를 선택했다.
내가 빌려 갈게.
그냥 돈 주고 사가면 되지 왜 빌려 가?
할머니 아들이 뜨악한 눈빛으로 갑수 씨를 쳐다봤다.
나는 내 이름으로 뭘 사고 싶지 않아. 그냥 빌려 갈게. 돈은 사는 값 다 주고.
거 이상한 사람일세! 그럼 폐기처분은 빌려 가는 사람 책임이라는 각서 쓰고 가져가. 나중에 어머니에게 쓰레기 갖다 버리지 말고.
안나는 벗겨진 정수리에 팔 짧은 겨울 햇살이 미끄러져 반들거리는 머리를 거푸 흔들던 갑수 씨가 안나와 몇 번이나 눈을 마주친 뒤 한참을 더 망설이다가 각서를 쓰고 돈을 지불하는 것을 봤다.
자신이 머물던 방을 나서며 안나는 까치와 호랑이의 얼굴 표정을 봤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놀리며 짓궂게 웃고 있었다. 안나는 늘 그랬듯 그 웃음이 자신을 향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안나는 그들처럼 그들에게 자신의 웃음을 돌려줄 수는 없었다.
옆방의 봇들이 가장 먼저 팔려 나가는 안나를 문틈으로 내다봤다. 안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곳에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봤다. 끔찍했다. 안나는 자신이 그들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끔찍했다. 자신의 감옥에 갇혀 그들의 방문을 열어보거나 통방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더 끔찍했다.
갑수 씨는 자기 자신에게 소름이 돋아 어쩔 줄 몰라하는 안나를 번쩍 안아 자신의 픽업트럭 운전석 옆자리에 실었다. 차가 움직여도 이전처럼 숨도 쉴 수 없는 두통이 습격하지는 않았다. 안나가 모르는 사이 이동 제한장치가 풀린 것 같았다.
또다시 유랑이 시작되고 있었다. 안나는 울퉁불퉁 덜커덕거리는 마음을 내버려 뒀다.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그래도 자신을 데려가는 사람이 낯이 익어 다행인가 싶었지만 자신은 언제나 거래의 대상일 뿐이었다. 안나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불쑥불쑥 치솟던 불안과 두려움이 어딘가로 새어 나가고, 낯설고 그러나 조금은 익숙하기도 한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수치심 같기도 하고 분노 같기도 한, 그것들이 똘똘 뭉친 것 같은. 그것들이 솟구치듯 끓어올라 안나는 자신을 어디다 패대기치고 싶었다. 이제 정말 이 지긋지긋하고 거지 같은 유랑을 멈추고 싶었다.
by 박하(park 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