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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안나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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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의연 Oct 15. 2024

안나

7. 봇성애자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안나는 자신의 몸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 자신의 부팅 스위치를 누르고 활성화시킨 것이었다. 눈을 뜨니 한 남자가 안나 앞에 서있었다. 머리숱이 가늘어지고 머리카락 사이 두피 틈새가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하는 그는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는 중키의 남자였다.


그는 박스에 들어있는 매뉴얼은 보지 않았다. 그는 손끝으로 안나의 얼굴을 만지고 손바닥으로 가슴과 등을 부드럽게 쓸듯이 쓰다듬었다. 그의 손끝은 따뜻했다. 그의 어루만짐은 알리바바가 이미 습득한 주문으로 동굴 문을 여는 동작을 연상케 했다. 안나 같은 봇은 더 깊이 안 봐도 알 수 있고, 안나의 몸을 여는 스팟까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동작이었다. 안나는 그가 봇을 다루는 솜씨가 능숙할뿐더러 직관적이고 즉물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안나의 몸을 쓰다듬던 손동작을 멈추고 안나의 원피스를 머리 위로 훌러덩 벗겼다.

 

굿, 굿! 어매이징, 판타스틱! 내가 바라던 그대로야!


안나의 벗은 몸을 보자마자 성급한 감탄사를 내뱉고 나서 그는 곧바로 안나의 유두를 혀로 핥았다. 안나는 몸이 뒤틀려 그를 안았다.

 

굿, 굿!


그는 안나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며 끝없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안나는 그의 감탄사가 습관적인 것인지, 자신에게서 특별함을 느껴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팬티는 입었네!


네, 흥분하면 분비물이 나와서요.


아무래도 알려줘야 할 것 같아 안나는 마치 자신이 자신을 만든 프로듀서라도 되는 것처럼 변명하듯 말했다.

 

리얼리? 굿, 굿! 너는 정말 어매이징, 판타스틱!!


안나를 향해 양손의 엄지를 치켜세운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안나를 침대에 눕힌 뒤 안나의 팬티를 벗기며 부들부들 떨었다. 불끈 일어선 그의 물건이 안나의 눈앞에 날 것으로 뻗쳐있었다. 그 자신보다 더 흥분한 것 같은 크고 딱딱한 물건이었다. 곧바로 그 물건이 안나의 몸 안으로 쑥 들어왔다. 안나는 자신도 모르게 열이 오르고 흥분이 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몸을 안나의 몸 안에 집어넣은 채 그는 천천히 엉덩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은 리드미컬했다. 특히 엉덩이의 오르내림이 우아하고 그야말로 음악적이었다. 엉덩이 혼자 부드러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안나도 그의 움직임에 맞춰 허리를 움직였다. 안나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오자 그의 입에서 말울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너 누구야?


그가 움직임의 속도를 한 단 더 높이며 물었다.

 

안나입니다. 당신의 여자입니다.


안나는 거칠어지고 있는 호흡 사이로 그렇게 대답했다. 왠지 그렇게 대답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난 누구야?


제 오너입니다. 바꿔 말하면 내 남자입니다. 어쩌면 내 남편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나는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말했다. 마음이 지극할 때 나오는 소리로 입력돼 있는 멘트였다.

 

리얼리?


그는 속도를 높여 안나의 몸 끝까지 파고들었다. 안나는 그 리듬에 맞춰 속도를 높여야 했다. 그의 몸을 조였다 풀며 절정을 향해 치고 올라가야 했다. 그가 벌써 절정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했지만 그가 조금 빨랐다. 어쩔 수 없었다. 처음이라 그의 리듬을 맞추기 힘들었다. 그는 그때까지 자신의 몸에 고여 있던 어둠을 한순간에 터뜨려 그 작은 방 안에 풀어놓았다. 이내 그의 몸 흔들림과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안나의 숨소리는 이미 잦아진 뒤였다.     



처음이야, 너 같은 애는!


몸과 마음이 고요해진 뒤 그가 입을 열었다.

 

다행이네요.


그렇지. 정말 다행이야. 너 같은 애를 갖고 싶었거든. 부드럽고 찰지고 몸에 착착 감기는 너 같은 애를.

 

소원을 이룬 건가요?


그렇지! 소원성취한 거지. 너 이전엔 딱딱한 리얼돌만 갖고 있었거든. 그것들도 금방 고장이 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안나는 가만 듣고만 있었다.


너무 외로웠거든. 쟤네들 아니면 살 수가 없었어.

 

그의 침실에는 한 다리가 없거나 한 손이 없는, 입이 붙은 턱이 떨어져 나갔거나 유두가 떨어져 나간, 음모가 다 닳아 없어졌거나 불두덩이 아예 없는, 그가 사용했던 것들로 보이는 부서진 돌들이 무슨 수집품을 모신 박물관 진열장처럼 벽을 빙둘린 유리장 안에 전시돼 있었다. 그중에는 아직 눈이 작동하고 말을 하는 것들도 있었다. 안나는 그가 오랜 기간 러브봇을 애용해 왔을뿐더러 러브봇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 편견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삶의 동반자들이었어. 여자 사람과 한 달 만에 이혼한 나를 지켜준 것은 쟤네들이었거든. 그러니까 쟤네들 아니었다면, 쟤네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 누구도 나를 위로해주지 않았거든.


안나는 손바닥으로 그의 등을 가만 쓰다듬어줬다. 그의 몸에 붙어있던 그의 외로움이 손끝을 타고 자신의 몸으로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안나는 자신이 그의 곁에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섹스 도중 거듭 반복해서 안나에게 누구냐고 후렴을 부르듯 물었고, 자신이 안나에게 무엇인지, 누구인지 거듭거듭 물었다. 성가신 일이었지만 안나는 그때마다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줬다. 그가 그렇게 반복적으로 묻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격렬한 동작으로 사정을 한 뒤에 그는 감탄을 빼놓는 일이 없었다.

 

대단해! 넌 정말 대단해!


안나는 기쁜 마음으로 환하게 웃어줬다. 자신이 활용 가치가 있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너 같은 애를 만나기 위해 오래 꿈꿨어.


너 같은 애를 만나기 위해 여태 혼자 살았다고.


기다린 보람이 있네! 꿈꾼 보람이 있어!


너 같은 애를 만나기 위해 십 년 동안 돈을 모았거든.


그래도 어림없었어. 정말 어림없었어.


우리 같은 사람은 만져볼 수 없는 금액이었거든.


근데 너를 만났어! 기적처럼 드디어 너를 만났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에 너를 품에 안았어, 정말 기적처럼!


안나가 화장실에 들어가 수돗물을 이용하는 세척기능을 작동해 그가 쏟아낸 정액을 씻어내고 돌아오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말은 노래처럼 들렸다. 그의 엉덩이 움직임처럼 말에 운율이 있어 더 그렇게 느껴졌다.

 

너와 함께 해서 정말 다행이야. 그토록 원했지만 너 같은 제품은 내 생에 없는 줄 알았거든.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다!


그의 감탄과 동어반복이 식상해져 안나는 그의 집안을 둘러봤다. 본래 색이 무엇이었는지 모를 30년도 넘은 듯 희부연하게 변색된 벽지, 침실 진열장에 가득 차있는 부서지고 망가진 오래된 봇들, 잊을 만하면 생각난 듯이 이따금 천정에서 헐레벌떡 돌아가는 시커먼 밤색의 실링팬, 그의 집은 도시 변두리에 있는 오래된 작은 빌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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