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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안나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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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의연 Oct 22. 2024

안나

9. 선물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그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제법 큰 개나리 꽃무늬 종이가방을 안나에게 건넸다. 사각 종이가방 안에는 안나의 팬티와 원피스가 들어있었다. 노랑 빨강 파랑 세 개 들이 꽃무늬 면팬티 두 박스와 하늘색 노랑색 솔리드 원피스 두 벌이었다. 빌라 창밖에는 나뭇잎이 퍼렇게 공간을 넓혀가고 있을 때였다.


안나가 알기로 옷은 인간의 도구였다. 추위와 시선을 차단하고 피부를 보호하는. 오래도록 제도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고착된 인간의 시선이 요구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입지 않아도 불편한 마음이 없었다. 그때 옷은 윤리의 피부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사준 팬티와 원피스는 그런 윤리의 거죽이 아니었다. 그가 마음으로 건네주는 사랑의 내복이자 외투였다.

 

안나는 자신의 내부에서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던 감정의 줄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그에게 정말 잘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자신에게 그런 것이 내재해 있는 줄도 몰랐던 마음이었다. 안나의 몸에는 이런 것이 사랑의 감정이라고 기계적으로 정의돼 있었다. 잘해주고 싶은 마음, 무엇인가 끝없이 주고 싶은 마음, 그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그런 마음이 계속 솟는다는 것. 지금 자신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나는 자신 안에도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것 같은 그런 마음과 감정들이 장착돼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자신은 그저 기계가 아닌, 자그마치 사랑할 수 있는 기계였다.


나를 사랑하나요?


그럼에도 안나는 묻고 싶었다. 확인하고 싶었다.

 

사랑? 그럼, 사랑하지. 너는 내 현재이고 미래이고 무엇보다 내 각시인걸! 내 사랑은 너 없으면 견딜 수 없고, 살 수 없는 외길 마음이지. 사랑이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지.


안나는 신기했다. 가슴속에서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환희심이 차올랐다. 이제 세상은 자신 같은 존재도 살 만한 곳인 것 같았다. 

by 박하(park 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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