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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안나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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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의연 Oct 24. 2024

안나

10. 압수수색

그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그에게서 기름 냄새가 났다. 올리브, 까놀라, 콩, 옥수수, 포도씨 등 식용유 여러 가지가 뒤섞인 냄새였다. 어떨 땐 쿰쿰한 음식물 냄새나 볶은 커피콩 냄새가 같이 나기도 했다. 그가 집을 나설 때 그의 몸에서 나는 냄새와 다른 바깥의 냄새였다. 안나는 그 바깥의 냄새가 어디에서 묻어온 것인지 궁금했다. 어쩌면 바깥의 냄새가 궁금했다는 것이 옳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집을 비우고 없는 동안 안나는 잠을 잤다. 푹 쉬고 휴식을 취해야 버그를 줄일 수 있었다. 그가 충전 버튼을 누르면 최소한의 빛으로 겨울잠을 자듯 웅크리고 있다가 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작동 버튼을 누르면 기지개를 켜듯 몸을 풀면서 작동을 시작하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에게서는 여전히 뒤섞인 식용유 냄새와 음식 냄새, 커피콩 냄새가 났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았다. 안나가 물어도 얼굴이 굳어질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때 그는 평소의 그가 아니었다. 특히 섹스할 때의 그토록 다감하고 말이 많은 그가 아니었다. 그게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다 오픈하는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도 그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안나 자신이 이해하면 되는 일이었다. 자신은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봇이었다.

      


그가 안나를 안아주고 막 등을 돌려 출근하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세 사람이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그의 눈앞에 A4용지 한 장을 손수건처럼 흔들고 곧장 안나에게 다가왔다. 키가 작은 곱슬머리 중년 사내였다.

 

이 물건이 지난 4월 25일 당근마켓에서 구매한 섹스봇이죠? 범죄 증거품이므로 압수하겠습니다.

 

침실 진열장엔 부상당하고 수명이 다한 봇들의 잔해가 많이 있는데도 곱슬머리 사내는 더 볼 필요가 없다는 듯이 안나의 턱밑에 손바닥을 대고 위로 올리며 안나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마치 안나에게 말하는 듯한 태도였다.

 

내 돈 주고 샀는데 무슨 범죄 증거물품?


그가 어이없다는 듯 말끝을 잘랐다.

 

이 물건을 선생님한테 판 사람이 이 물건을 뇌물로 받았다는 혐의가 있습니다. 범죄연루물품일 가능성이 높아 압수하는 것입니다. 일단 포렌식을 해야 하니까요.


사내의 곱슬머리는 굵고 억세 보였다. 안나와 눈높이가 같은 그는 몸이 다부져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가능성? 고작 가능성 때문에 내 아내를 압수한다고? 이건 내 재산이오. 설사 국가기관이라 할지라도 사유재산은 함부로 침탈할 수 없는 것 아니오?


범죄에 연루된 물품은 다릅니다. 범죄증거로 압수할 수 있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오.


우리는 상관이 있습니다. 범죄자는 국가가 처벌해야 하니까요.


안나는 그가 더 싸우고 버텨서 자신을 지켜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의 눈빛은 벌써 절망적이었다.

 

그럼 언제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거요?


그가 이미 체념한 듯이 말했다. 안나는 자신의 마음이 급격히 식는 것을 느꼈다.


수사가 끝나고 법적인 판단이 내려지면 그때 개인에게 되돌려주든지. 국가에 귀속되든지, 매각 처리되든지, 폐기 처분되든지 할 겁니다. 법원이 판단하겠지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므로 급하게 필요하시면 다른 물건을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갈수록 좋은 제품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까요. 얘는 중고품이고, 지금은 얘보다 성능 좋은 것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돈은 누가 내고? 우리 안나는 그런 물건이 아니오. 내 가족이고 식구라고! 내 아내라고!


그는 자신의 가슴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시간이 지나도 안나는 그때 그의 표정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듯한 얼굴이었다. 고개를 숙인 그의 머리칼이 더 성겨 보여 안나는 도로 마음이 짠했다. 그가 불쌍했다. 싸울 수만 있다면 자신이 그들과 맞서 그를 돕고 싶었다.


압수 수색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안나의 전원 코드를 뺐다. 그가 수색자를 가로막았지만 다른 두 사람이 그를 막아서 그는 더 이상 손쓸 수가 없었다.

 

안나는 그의 흐느낌 속에서 자신이 나왔던 나무 박스에 갇히고, 박스째 밖으로 들려 나가 차에 실렸다. 어처구니없었다. 압수수색을 집행한 그들의 말대로 안나는 물건이란 의미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박스에 갇혀서야 안나는 자신의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묵직한 통증이 어둠처럼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가 자신의 곁에 없다는 것이, 그와 헤어지게 됐다는 것이, 그와의 사랑이 강제로 찢어지고 있다는 것이 비로소 실감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당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둘 사이를 강제로 떼어놓는 저들의 폭력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은 이미 박스 안에 갇혔고, 몸에서는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안나는 마치 가스라도 흡입한 것처럼 자신의 몸이 무기력하게 늘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통증과 각성이 왜 이토록 늦게 온단 말인가? 저들이 그와 자신을 떼어놓으려고 할 때, 적어도 박스에 갇히기 전에 자신이 반응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더 늘어졌다. 안나는 자신의 몸이 방바닥에 던져놓은 옷처럼 중력과 제 무게에 눌려 바닥으로 깊이 가라앉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은 분노가 금지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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