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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Aug 17. 2021

내가 대작을 쓸 수 있을까요?

네 번째 시도와 그 이후

  얼마 전, 나와는 나이가 같은데 나처럼 석사 졸업하고 가만히 있다가 이번에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된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의 석사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교수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인정받고 싶어서 안달났던, 그러나 결국 스스로의 능력에 의심이 생겨 도망치듯 빠져나와야 했다고. 그렇게 회고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이겨냈고 박사과정에 들어왔다고 했다. 석사 이후 그의 논문을 고쳐서 투고하려고 했으나 7번이나 낙방을 했고, 여덟 번째에 눈을 많이 낮춰서 낮은 티어의 저널에 투고를 성공했다고 했다.


  그도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네 번째 떨어졌을 때는 좋은 저널 아닐거면 낼 필요도 없고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꾸 자신을 깎아먹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점점 자기 비하가 심해진다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또 포기를 하고 내려놓게 된다고 했다. 나에게도 말해줬다. 당신은 할 수 있다고. 이제 네 번째 도전이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그의 따뜻한 말이 나를 스르륵 녹였다.


  이렇게 박사과정에 다시 들어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논문 쓰기 강의였다. 누군가가 논문을 완성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너무나 스스로에게 멋있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그렇게 완성한 사람이 상까지 탔을 때의 희열이란. 책 중간중간에 나왔던 숙제를 낼 때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이렇게 가혹한 숙제가 어딨나. 어쨌든 시간이 많이 걸릴 작업 같은데 안 내주면 안되나. 미안하다. 안 낼 수 없었음을 이렇게 밝힌다.


  그렇게 나를 잘 따라와 준 학부생들이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처음 갖게 됐다. 그래, 나의 능력을 내가 의심하면 모든 일을 해낼 수가 없지. 나를 믿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때부터 해외 학술지에 투고를 하자고 작업을 계속 한 것이다. 이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고.


  방법론이나 논문 쓰기에 대한 생각은 사실 서론에 쓴 것처럼 거창하지 않다. 내가 예전에 했던 생각과 지금 나는 그 질문에 대답을 내 나름대로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적었을 뿐이다. 읽어보면 너무 별 게 없어서 실망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저 때 내가 저런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나는 없겠지. 강사 경험으로 한 번, 옛날의 나 덕에 두 번 이렇게 성장했다. 과거에 감사하다.


  얼마 전에 논문을 다시 고쳐가지고 다른 저널에 또 냈다. 지금 이제 제출한지 2주 정도 되었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 데스크 리젝을 할거면 빨리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냥 마음을 놓고 기다리게 되었다. 이렇게 높은 저널이면 분명 제출이 많을테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 그리고 여기서 몇 달 안에 또 탈락을 하게 되면 티어를 낮춰서 제출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대작이란 이런저런 논문이 쌓이고 쌓여서 쓰게 되는 것 아닐까.


  물론,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또 어느 때엔가 자기 자신을 비하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런 쓰잘데기 없는 논문밖에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앞으로 논문을 쓰다보면 또 이런 생각들을 마주하고 살아야할텐데, 걱정이다. 다만, 이제는 논문 쓰면서 내가 마주하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그것을 관리하면서 살 생각이다. 그리고 주위에 나의 논문에 대해 따뜻한 말을 해줄 사람을 찾으면서.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을까, 정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해서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학부생, 대학원생에게 논문 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게 교수라는 타이틀일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논문을 쓰고 시간이 지나다보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 그 타이틀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학부생, 대학원생이 스트레스받지 않고 자신의 논문을 완성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나의 가르침과 그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고 글을 쓴 적은 없다. 그저 나의 회고가 나의 행동과 지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쓰다보니 그렇게 한탄하던 그때의 내 행동이 나를 더 배우고 성장하게 만들었구나 느낄 수 있어서 신기할 뿐이다. 나는 앞으로 쓰게 될 나의 논문과 나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가끔 하게 될 고민, "나는 과연 대작을 쓸 수 있을까?"는 사라지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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