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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Jul 28. 2021

첫 논문을 쓰다: 2017년

이 글은 Dobbs, Kirstie Lynn and Jeong Woo Lee, 2017, "Puzzling Policy Shifts: Fickle Western Support of Democracy Promotion in Economically Salient Countries", Politikon: IAPSS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Vol. 32, pp.42-59가 쓰여진 배경과 논문 구상을 담은 것입니다.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Political Science Students를 가입하다.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 독립 연구를 시작했을 때였다. 어느 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Political Science Students(IAPSS)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회 가입비는 당시 15유로라고 기억한다. 본부는 네덜란드에 있으며, 해마다 미국, 유럽 각 국을 선정하여 학술대회를 크게 연다. 정말 전세계의 정치학도들이 모여 같이 정보도 교류하고 공부를 한다. 학회를 알고 나니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나도 이런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회 가입비를 내면 누구든 가입할 수 있다. 그리고는 학회에 설치된 비교정치 연구위원회(student research committee on comparative politics)에 가입 신청을 했다. 이력서와 연구 계획을 보내야 했다.


  당시에 내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역사 서술을 중심으로 한 방법이었다. 직접 1차 사료를 읽고 해석을 하는 일. 특히 미군정 시기인 1945년부터 1948년 사이의 한국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그 시절을 공부하면서 교과서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내가 파악한 사실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에게 주장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일본에서의 연구 지도교수 역시 이런 방법론을 통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이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덕분에 외교사료관 등, 한국에서 외교사 연구를 위한 사료를 얻을 수 있는 곳에 익숙해졌다. 그 당시에 수집한 사실과 정보로 학사학위논문을 쓸 수 있었는데, 그 논문의 글쓰기 방식에 후회는 남지만 열심히 썼으니 (홀로) 자랑스럽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비교정치 연구위원회에 가입할 수 있었고 2015년에는 이 학회에서 열리는 학술대회를 위해 프라하로 향할 수 있었다. 당시 편입을 준비하라고 하는 엄마와 싸우기 싫어서, 일본에서 엄마에게 보낸 카톡을 여전히 기억한다. "엄마, 내가 앞으로 공부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을테니까, 나 마지막으로 프라하에서 논문 발표할 수 있게 도와줘. 여기서 논문 발표하면 나 더 이상 떼쓰지 않을께. 비용 한 번만 도와줘." 이렇게 보냈더니 엄마에게서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나 홀로 프라하에 다녀오는 모습을 보면서 당시 엄마는 "아들이 정말 많이 컸구나"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리고 2016년이 되었고, 1년마다 새로운 연구위원회 위원장을 선출했다. 나는 부위원장으로 출마했고 당시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던 사람이 나의 공저자이다. 그 때의 나는 민주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권위주의 정권이 어느 순간에 도달하면 민주화가 될까? 시민들의 직접적인 불만 때문일까? 무슨 이유에서일까? 한국의 민주화 사례를 돌아봤다. 그 당시 읽었던 책이 바로 그렉 브레진스키의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이다. 브레진스키의 주장은 바로 1980년대 후반에 형성된 한국의 중산층이 민주화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몇몇 기업은 1985년도 이후 한국에 진출했고, 만약 민주화가 되지 않는다면 그들의 기업 활동이 안정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이 미국을 자극했고, 따라서 민주화를 미국 또한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논문을 쓰기 시작하다


  1985년도와 1986년도의 외교 비밀 문서는 당시에 해제되어 있었다. 외교문서는 해당 연도 이후 30년 뒤에 비밀이 해제된다. 연구하던 2016년 당시에는 1986년도가 마지막으로 해제되어있었다. 당시 1985년도 문서에 보면, 미국으로 망명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미국 정부가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한 한국 정부의 기록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나는 당시 권위주의의 한국 정부가 다른 정부의 반응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이런 요인을 바탕으로 연구 계획을 작성했고, 논문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이때가 2016년 3월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교정치 연구위원회는 비정기적으로 위원들을 소집하였고, 위원장 취임이 얼마 되지 않아서 서로 인사를 할 겸 온라인 회의를 시작하였다. 다만, 나 홀로 동아시아에 사는 학생이어서 다른 시간대에 맞춰 새벽에 접속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각자 어떤 연구를 할 것인지 이야기를 하다가 위원장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어서 연구 계획을 보내고 회의 이후 개별적인 면담을 요구했다. 나의 연구 계획을 읽고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내가 혹시 공저를 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위원장도 긍정적으로 답변을 했다. 다음 온라인 회의 일정을 잡았다. 그 다음부터 한 달에, 아니 2주에 한 번씩 만났다.


  위원장은 비교 연구를 제안했다. 그의 전공은 북아프리카 정치였고, 주로 튀니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최근까지 튀니지의 젊은 사람들의 정치 참여에 글을 쓰고 있다. 그럼 튀니지와 대한민국이 무슨 차이가 있고, 무슨 공통점이 있길래 비교를 할까? 나는 방법을 전혀 몰랐다. 그가 나에게 논문을 하나 보내주면서 읽어보고, 이것을 통해 어떻게 대한민국의 사례를 설명할지 생각해달라고 했다. 그 논문은 저명한 정치학자 레비츠키와 웨이의 논문이었다 (Levitsky and Way, 2005). 레비츠키와 웨이는 민주화에 대한 외부의 압력에 주목을 했다. 외부에서 특정 국가에 민주화에 대한 압력이 있으면, 다른 국가와의 교류가 특정 국가의 민주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도 1980년도 이후에 미국이나 어느 곳으로부터 민주화에 대한 압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럼 미국은 한국과의 여러 방면의 교류를 할 것이다. 그러한 교류들은 민주화를 이끄는 데에 요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교류에는 미국과 한국의 관료 집단 간 교류, 정보 교류, 경제적 교류, 정부간 교류가 포함된다 (Levitsky and Way, 2005). 이러한 교류들이 어떻게 민주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분석틀을 보는 순간, 그럴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문을 쓰면 재밌을 것 같았다. 기존의 연구는 군부의 선택이 어떻게 민주화를 이끌었는지, 혹은 시민들이 어떻게 군부에 저항했는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연구가 차별화를 갖고 있다는 점은 있으니 비교 연구를 통해서 외부의 압력이 어떻게 민주화를 도출하는가에 대한 가설을 만들고 일반화를 타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분석틀이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위원장의 밝은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그에게 이래서 박사과정이 대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일개 학부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 뒤까지 각자 연구의 토대가 되는 기존 연구 분석을 쓰기로 하였고, 위원장이 그 둘을 합쳐서 하나의 글로 만들었다. 그 뒤엔 각자 이론 부분도 쓰고 튀니지 사례는 위원장이, 한국 사례는 내가 쓰기로 하였다. 그렇게 글을 2016년 7월쯤이 되어서 완성할 수 있었다.


학술지의 동료 심사가 도착하고 수정하다


  해외 학술지의 논문에 대한 동료 심사(peer review)가 길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길 수 있을까. 6개월이 넘게 걸렸지만 시간이 더디게 갔다. 나의 첫 논문인지라 너무도 애착이 커 매일마다 이메일을 확인했다. 그런데 어느 날, 드디어 심사가 도착했다. 요지는 수정 이후에 게재를 해도 좋다는 것. 요지는 두 사례를 통해서 어떻게 일반화를 시도할 것인지를 정당화하라는 지점과, 그리고 가설은 네 개이지만 그 네 가설 중에 어떤 것이 가장 설득력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공저자와 나는 온라인 미팅을 정말 금방 잡고 이틀 안엔가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차피 연구는 두 사례만으로 이뤄져있고 사례 선택에 편향이 있을 수 있지만, 우선 두 사례를 통해서 가설 생성(Hypothesis-generation)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가설이 생성되고 그 이후에 일반화를 위한 사례를 충분히 수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는 지점을 강조했다. 이는 잭 레비(Jack Levy, 2008)라는 학자의 가설 생성과 사례 연구에 대한 논문을 인용한 덕이었다. 위원장도 나의 생각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렇게 둘은 마지막으로 수정에 대한 의견을 적어서 학술지 편집진에 보냈고, 논문은 최종적으로 투고가 되었다. 그렇게 최종 논문은 2017년 6월이었을까,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던 중이었다. 이메일로 최종적으로 학술지가 출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난 너무나 기뻤다.


논문 쓰기 과정에 대한 회고


  정말 운이 좋은 때에, 좋은 사람을 만나 논문을 쓸 수 있었다. 학부를 마무리하고 석사를 막 시작한 사람으로서 좋은 시작을 만났다. 그러나 지금은 논문을 되돌아보면 나의 능력에는 맞지 않는, 생각보다 높은 수준의 결과가 나온 것 같아서 의아하다. 이는 분명 당시 박사과정이었던 위원장의 덕이었으리라. 이론의 분석 토대가 된 논문도 그가 제시해주신 것이고 사실 내가 한 것은 읽고 토론한 것밖에 없어보이니까. 또한, 나의 영어 작문 실력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서 그가 많이 고쳐줬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


<참고 문헌>

Levitsky, Steven and Lucan Way, 2005, "International Linkage and Democratization", Journal of Democracy, 16(3), pp.20-34.

Levy, Jack, 2008, "Case Studies: Types, Designs, and Logics of Inference", Conflict Management and Peace Science, 25(1), p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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