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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Jun 06. 2020

던킨도 배달이 되는구나

근거 없는 희망은 언제쯤 버려야 할까.

편의점 음식으로 저녁을 먹으며 버티다가 오랜만에 퇴근 시간에 맞춰 집으로 왔다. 걸으면서 이대로 주저앉아 쓰러지고 싶다고 느낄 정도로 몸이 너무 피로했고 바깥 음식이 아닌 집밥이 먹고 싶었다.


아파트 현관문 앞에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고 적힌 검은색 오토바이에서 흰 봉투를 들고 사람이 내렸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 문구가 붙은 오토바이를 처음 봤다. 요즘 배달 오토바이는 다 저런 문구가 적혀있나? 음식을 아이에 비유해서 그만큼 주의해달라는 뜻인가? 아이 음식을 배달하는 업체인가? 궁금했다. 어쩌다 보니 엘리베이터를 같이 기다렸다. 흘깃 본 봉투 속에 던킨도너츠 상자가 보였다. 던킨도 배달이 되는구나, 생각과 동시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배달해주시는 분이 우리 집 바로 위 층수가 새겨진 버튼을 눌렀다. 나는 시간 상관없이 쿵쾅되는 집에 들어오는 게 두려워서 편의점 음식이나 먹으면서 버티는데. 집에서 뭘 배달시켜 먹을 만큼 여유롭구나. 나는 잠만 자고 집에서 나오는데. 가해자들은 편하구나. 뭘 먹으니까 조용하지 않을까. 제발 가만히 앉아서 먹었으면. 조용했으면 좋겠다. 제발.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발망치 소리가 들렸다. 손을 닦고 저녁을 먹으러 부엌으로 가자 꿍꿍! 꿍꿍꿍! 꿍! 거리는 발망치 소리와 잔잔하게 뛰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위층도 배달된 도넛을 먹고 있나 보다. 먹으면서 뛰나 보다. 따뜻한 밥과 국과 반찬을 느긋하게 먹으려고 했는데 둥둥둥둥둥 울리는 천장의 울림이 식탁 의자에 앉아있는 내게도 느껴졌다. 의자가 떨렸다. 음식을 마시듯이 후르륵 먹었다. 뭘 떨어뜨리는지 쇠사슬처럼 촤르륵 뭔가 바닥으로 쏟아지는 소리와 바퀴 끄는 소리가 몇 번 들렸다. 밖으로 나갔다. 집에 있던 시간은 1시간 남짓 됐을까? 집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음 날, 몸이 긴장하고 있는지 새벽 3시 반, 4시, 5시 반, 6시에 눈이 떠졌다. 주말에는 쉬는지 이른 새벽부터 울리던 발망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7시부터 다시 시작됐지만. 이번에는 잔잔하게 뛰는 소리.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을 내리치는 쌩 소음이 아니라 잔잔하게 뛰는 소리가 계속 울렸다. 듣기 괴로워서 눈 뜨자마자 또 바로 나갔다.


저녁 7시 반쯤 집에 돌아왔다. 꿍! 꿍! 거리는 발망치 소리와 새벽에 들었던 뛰는 소리보다 좀 더 커진 뛰는 소리와 함께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왔다. 소음을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창문을 열었다. 밖에서 들리는 자동차 소리와 바람 소리가 남의 집 발소리로 가득한 우리 집을 조금 낫게 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저녁 8시 20분까지 높은 곳에서 점프하는지, 제자리에서 점프하는지 달리는 소리와 함께 쿵!! 꿍!! 쿵쾅!! 쾅쾅쾅!! 하는 소리가 천장을 계속 울렸다. 너무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뛰어서 경비실에 말씀을 드릴까 고민하다가 그냥 노래를 크게 틀었다. 경비실에 말하면 또 아닌데요, 하면서 보복 소음으로 뛸 게 뻔하니까. 천장을 울리는 울림을 노래가 막아주기를 기대하면서 볼륨을 높였지만 뛰는 소리와 노랫소리는 서로 전혀 어우러지지 않아서 더 괴롭다. 언제쯤 멈출까.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은데 그럼, 언제쯤 괜찮아 질까.


지금은 공 튀기는 소리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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