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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Sep 07. 2020

층간소음 피해자는 계절의 변화가 두렵다

계절이 바뀌는 냄새를 좋아하는데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위층에서 우리 집 천장을 미친 듯이 두드리는 소리가 심해지면 창문을 열었다. 날씨에 관계없이.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춥든 덥든. 열린 창문으로 차 지나다니는 소리, 바람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새소리, 매미소리, 개 짖는 소리, 오토바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어오면 소음이 중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완전 희석되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소리가 섞여 아주 조금 나아졌다.


소음을 막으려 이어폰을 귀에 꼽고 노랫소리를 크게 트는 것과 텔레비전 볼륨을 높이는 것보다 그나마 귀가 받아들이기 편했다. 어딘가로 도망하지 못하는 날이면 그렇게 견뎠다.


그런데 이제 가을이 온다. 가을이 오면 날씨가 추워지고 날씨가 추워지면 여름보다 창문 열기가 머뭇거리게 된다. 집에서 옷을 불편하게 껴입고 찬바람을 맞고 있으면 이게 정녕 편안해야 할 집인지,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내 인생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위층이 따뜻하게 보일러를 때고 우리 집 천장을 놀이터처럼 마음껏 뛰어다닐 때 아래층은 지옥이 따로 없다.


소음이 심해지면 계단에 앉아 있었다. 꿉꿉하고 꼬릿 꼬릿 한 냄새가 날 때도, 아파트 전체가 페인트칠로 인해 독한 페인트 냄새가 가득할 때도 계단에 앉아있었다. 앉아있다 보면 위층이 나오고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럴 때면 없는 척 숨을 죽이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다 같이 어딜 가면 좋으련만 그러지 않고 일부만 나갈 때면 집으로 들어가려는 마음을 접고 계속 앉아있었다. 현관에서부터 전력질주를 하는지 현관문 밖에서도 울림소리가 가득했다.


여름은 더워도 견딜만했는데 이제 가을이 온다. 여름에는 계단에 책이나 박스를 가지고 가 앉으면 됐는데 날씨가 추워지면 엉덩이가 시리다. 손도 춥고 입김도 나오고. 다른 사람들은 따뜻한 곳으로 향하는데 밖에 앉아있다 보면 마음이 답답해지고 눈물이 나온다. 괜히 쓸데없는 눈물만 많아졌다. 어떤 날은 가슴을 있는 힘껏 크게 마구 두드려도 체한 듯한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 


어제 종일 뛰는 소리를 들었다. 근래에 좀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며칠 전 층간소음에 대한 스트레스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인사를 건넨 일이 위층 아주머니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이젠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계절이 바뀐다는 건 시간이 흐른다는 거니까, 시간이 흐르면 아이들이 성장한다는 거니까, 시간이 아주 빨리 흐르면 아이들이 집에서 뛰어노는 것보다 공부하거나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일이 많아진다는 거니까 좋아해야 하는 걸까?

위층에 아이가 셋이 산다. 그 아이들이 더 이상 집에서 뛰어놀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려면 몇 년을 더 고통스러워야 하는 걸까.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름도 견디기 어려웠다. 벌레와 날아다니는 이름 모를 곤충과 끈적함과 습기. 찌는 듯한 열기에 뭔가 부패하는지 꼬릿 하고 썩는 듯한 냄새들. 앉아만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불쾌한 기분.


여러 이야기를 들어도 층간 소음을 해결하는 방법은 이사밖에 없다고 한다. 이사가 최선이라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가. 이럴 때면 자아 성찰을 넘어 자기비판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내 능력은 왜 이것뿐이어서 여기서 우리 가족을 구출해내지 못하는가. 그러다가 이런 시련을 주는 사람들이 미워지다가 싫어지다가 다시 또 나의 가까운 사람들을, 나를 탓하게 된다.


날씨가 춥다. 계절이 바뀌는 냄새를 좋아하는데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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