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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Sep 13. 2020

파블로프의 개 같은 소음

반복되는 소음 패턴

요즘 위층은 시간표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시간부터 이 시간까지 이 소음 만들어내기. 오늘 새벽 5시 30분쯤 줄넘기하듯 바닥에 뭔가가 내리 찍히며 울리는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지금 시각은 오전 7시 20분이다. 뭘 열심히 구르고 던지고 내리치는 소리가 천장을 울리고 있다.


새벽 4시-6시 사이에 발 망치를 찍으며 열심히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는 소리가 천장을 울린다. 그리고 드르륵드르륵 바퀴 달린 뭔가를 끄는 소리도 중간중간 들릴 때도 있고 들리지 않을 때도 있다. 추측하자면 장난감 자동차나 수레 혹은 카트이지 않을까 싶다. 설마 퀵보드나 인라인 스케이트나 자전거는 아니겠지..?


지난번 위층 아주머니를 엘리베이터에서 뵀을 때 손수레에 쓰레기봉투를 가득 싣고 있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걸 끌고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새벽부터 분주하게 매일 청소하시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전 7시 30분 - 8시부터 슬슬 뛰는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는 어떻게 된 게 오후 2시까지 이어진다. 교대로 뛰는지 조금씩 쉬었다가 뛰는지 알 수 없다. 기계를 돌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 그러기에는 소음이 불규칙적이다.


바닥을 찍으며 분주히 뛰고 어디서 뛰어내리는지, 제자리 뛰기를 하는지 몸무게를 힘껏 싣고 바닥을 내리찍는 소리도 간간이 들린다. 창문을 열어도 다른 방으로 대피해 있어도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뛰는 덕분에 소음을 피할 수 없다. 창문을 모두 열고 밖에서 들어오는 소리와 중화시키려고 해도 천장 전체가 누군가의 발소리에 맞춰 쿵- 쿵- 대며 떨린다.


어제는 창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 소리와 버스 지나가는 소리와 자동차 소리와 알 수 없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종이 업무를 봤다. 날씨가 추워져서 계단으로 대피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현관에서부터 달리기를 시작하는지 거기도 쿵- 쿵- 거리며 두 발로 내리찍는 소리가 크게 울려서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약 오후 2시 전후로 소음이 잦아진다. 그 많던 소음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의문일 정도로 고요하다. 아무도 없나? 나갔나? 싶지만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복도에서 기다리다 지쳐 들어왔을 때도, 위층에 아무도 나가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 때도 이때쯤이면 고요했다. 참 신기하다.


어느 날은 이 시간에도 소음이 끊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뛰는 소리에 맞춰 욱여넣은 밥이 목구멍에 다시 걸리는 느낌이다.


오후 6시쯤 되면 슬슬 다시 뛰기 시작한다. 밥 먹고 소화시키려고 뛰는지 열심히 운동하고 밥을 많이 먹으려는 건지. 문제는 우리 집도 이때쯤 저녁을 먹는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비슷한 시간에 식사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집은 이때 텔레비전 소리를 키우거나 요리할 때 들리는 음식 만드는 소리를 이용해 소음을 차단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아래에서 뭘 한들, 위에서 몸무게를 힘껏 싣고 내리찍으며 달리는 소리와 진동을 막을 수는 없다.  

 

이후 좀 조용하다가 오후 7시 30분 - 8시부터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이때는 화장실에 있으면 애들 소리 지르는 소리를 덤으로 들을 수 있다. 추측하건대 밥 먹고 열심히 땀을 뺀 다음에 씻는 시간인 것 같다.


하루치 못 뛴 소음이 더 있는지 정말 온 가족이 뛰는지 미친 듯이 달린다. 사람이 갑자기 더 불어난 것처럼 소음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달리는 소리가 화장실에서 이 방 저 방 이어진다. 어디서부터 어디로 뛰는지 너무나 명확하게 소리와 진동으로 알려준다. 화장실에서도 뛰고 나와서도 뛰는지 우리 집 화장실 문이 징- 징- 거리며 떨릴 정도다.  


운이 좋으면 오후 9시쯤 뛰는 소리가 멈춘다. 그리고 공기를 빼듯, 버튼을 누르듯 푸쉬푸쉬 푸쉬푸쉬 하는 소리도 매번 들린다.


어제는 9시 전에 멈췄다가 10시, 11시쯤 두 번 바닥으로 뭘 내리치는 소리가 울려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랬는데 새벽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소리에 강제 기상을 했다.


위층은 소음을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나 보다. 이 시간까지 이 소음을 만들어도 된다고 적극 권장하거나 같이 시간표를 보며 행동하는 것 같다. 사람이 거주하고 있어도 소음이 들리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걸 생각해보면 일부러 소음을 만들어 낸다는 생각도 든다. 애들 뛰는 걸 말리지 않는 건 기본이요, 걸을 때 내는 거대한 발 망치 소리도.


암묵적으로 본인들은 아침 몇 시부터 밤 몇 시까지 뛰어도 된다고 정해놓은 걸까? 주로 밤 9시 이후로 평소에 자주 뛰지는 않으니 아파트에 사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들 있는 걸까? 몇 달 전에는 밤 9시는 무슨, 더 늦게 까지 뛴 적도 많은데 이게 본인들이 양보한 최선의 시간이라고 여기고 있는 걸까? 오늘은 언제까지 뛸까? 예상치 못한 소음이 생기지는 않을까? 내일은 어떻게 될까? 도대체 뭘 하는 걸까!


요즘은 이렇다. 예외가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 이런 식이다. 그렇다 보니 시간을 확인하고 비슷한 시간이 되면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뛴다. 위에서 뛰는 소음에 맞춰 심장 박동도 변하는 것 같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에서 개는 반복되는 실험을 통해 음식 없이 종소리만 들려도 침을 흘린다. 집에 있으면 시간을 자꾸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뛸 시간이 다가오면 불안했던 심장이 더 불규칙적으로 박동한다. 이때쯤 뛰겠지, 싶으면 어김없이 뛴다. 반복되는 패턴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또 언제 바뀔지도 모르는데 익숙해질 필요도 없고 소음에 익숙해진다는 게 너무 슬픈 일이지만.


글을 쓰다 보니 벌써 오전 7시 50분이 넘어가고 있다. 지금도 머리 위에서 뛰는 소음이 울린다. 견디기 버겁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버스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간간이 고요하다. 매일 아침 소망한다. 오늘은 층간소음없는 고요함을 오랫동안 즐기고 싶습니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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