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다, 이번에는 아저씨를 봤다
오늘은 새벽에 나가 오후 7시 30분쯤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뛰는 소음과 뭘 내던지는 소음을 듣는 중이다. 정말 소음이 끊이질 않고 들린다. 환장하겠다. 소음 자체보다 더 화가 나는 건 위층이 이사 오고 난 뒤, 원래는 애들 뛰는 소리만 가득이었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밤낮 안 가리고 너무 뛰길래 참고 참다가 윗집에게 너무 고통스럽다고 이야기하니 보복 소음을 낸 뒤 전에는 들은 적 없는 발망치와 뭐 굴러가는 소리, 내려치는 소리를 추가해서 한 가득 들려준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애들이 크면 조용해질 것이라 기대했으나 이제는 악의적으로 내는 소음을 감당하고 있으려니 윗집이 이사 가거나 우리 집이 이사 가는 게 아닌 이상 멈추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 너무너무 무섭다.
그냥 자려고 누웠는데 막판 스퍼트인지 미친 듯이 발 구르는 소리와 함께 윗집 애가 지르는 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려서 그대로 일어났다. 심장이 굉장히 빠르게 뛴다. 지금 시각은 오후 10시 04분이다. 도대체 어떻게 질러야 사람이 지르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인가!!! 이쯤 되니 뛰는 소리는 애들만 내는 게 아니라 부모가 같이 뛰는 것 같다.
아저씨를 만난 건 지난주 일요일이다. 윗집 아주머니를 봤던 기록을 찾아봤다. 8월에 봤으니 약 3개월 만이다. 나는 윗집을 되도록 마주치고 싶지 않다. 변하는 건 없을뿐더러 거짓말을 일삼으며 보복 소음을 오히려 본인들이 들려주는, 그런 뻔뻔한 얼굴을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윗집의 만행은 지난 글들이 말해준다. 거기에 100만 분의 1도 이 고통을 담지는 못했지만.
그날은 오전 7시쯤 집을 나섰다. 주말에는 집에서 쉬고 싶었으나 층간소음 가해자들이 내는 소음이 두려워서 언제나처럼 일찍 집을 벗어났다.
오후 6시에 집으로 들어왔다. 저녁을 먹으러 집에 왔다. 우리 가족은 다들 소음을 피해 각자 피신해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윗집 애들이 뛰는 소리가 한가득 울렸다. 정말 대문을 열고 들어설 때부터 우다다다다다 우다다다다다다다 우다다다다다 쿵쿵쿵쿵쿵 우다다다다다 소음이 가득이었다. 형광등을 뺀 자리에 형광등을 잡기 위해 달려있는 쇠붙이가 같이 울려서 징- 찡- 소리를 냈다. 방문이 발을 바닥에 찧고 달리는 진동에 같이 떨렸다. 이게 정상인가? 이렇게 울리는데 애들이 뛴다고 할 것인가? 이게 정녕 애들만 뛰는 게 맞을까? 여기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흡사 공사판 한가운데서 혹은 사방에서 포격이 날아오는 한복판에서 밥을 먹는 것 같았다. 냉장고에서 뭘 꺼내 먹을까 하다가 뛰는 소음이 미친 듯이 울려서 허기만 채우고 가자는 생각에 국에다 밥을 말았다. 밥을 먹고 씻은 뒤 도망치듯 집을 벗어났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을 현대판으로 한다면 원수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다고 바꾸는 게 맞겠다. 지난번 아주머니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했는데 이번에 아저씨도 엘리베이터를 통해 봤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앞에 사람이 있길래 자동반사적으로 "안녕하세요." 했다. 인사를 하며 고개를 들었다. 앞에 서 있던 사람의 발부터 얼굴까지 순서대로 보게 됐다. 상대방은 "안녕하세요." 하며 동시에 엘리베이터를 탔다. 분리수거를 했는지 바퀴 달린, 네모난, 요즘에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플라스틱처럼 생긴 카트에 비닐봉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윗집에서 뭐 구르는 소리가 자주 나는데 저것도 그중 하나인가 싶었다.
윗집 아저씨도 엘리베이터가 어디서 멈추고 내려오는지 봤을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을 것이다.
나는 지금 미친 듯이 뛰는 소음으로 가득 차 사람이 머물 수 없는 집을 나오는데 태평하게 본인들의 일상을 영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좋은 감정이 솟지는 않았다.
찰나의 순간 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아래층이라고 이야기한 뒤 층간소음에 대해 말해볼까? 하다가 여태 윗집의 만행이 스쳐 지나갔다. 오늘은 해맑게 인사도 했으니 아랫집에 사람이 산다는 걸 인지하길 바라며, 그러니 제발 배려해주길 바라며 그대로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아주머니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을 때처럼 층간소음의 'ㅊ'도, 소음의 'ㅅ'도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이런 기대가 무색하게도 엊그제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억지로 잠을 청하다가 23시에 키즈카페 버금가는 뛰는 소리에 강제로 일어나야 했다. 이게 윗집이 우리 집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듯싶다. 정말, 여기에 쓸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난다. 화가 난다, 라는 말로는 이 모든 걸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차오른다. 나의 작문 실력에 통탄할 뿐이다. 일상적인 생활이 도저히 되지 않고 있다. 농락당하는 기분. 어차피 네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걸 알아. 이런 메시지가 위층으로부터 들리는 느낌이다.
방법이 없다. 뭐 어찌해야 좋을지 도저히 모르겠다.
윗집의 소음을 온몸으로 감내하고 있으면 신에 대해, 종교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오늘 언제 집에 들어오냐는 가족의 물음에 오후 9시쯤 들어간다고, 일찍 들어가면 윗집이 또 뛸까 봐 무섭다고 답장을 했다. 결국은 배고파서 일찍 들어오게 됐지만. 9시에 들어왔어도 10시 넘어서까지 뛰는 소음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밖에 있어도 집 생각이 난다. 아늑한 집보다 윗집이 내는 소음에 가득 차 버린 우리 집을 걱정하게 된다.
이제는 마주친다면 얘기를 해야겠지? 그렇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현명하게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야 나의 고통을, 우리 가족의 아픔을 전달할 수 있을까. 애초에 이걸 고민하고 있는 일부터가 괴롭다. 도대체!!!!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뭘 더 어떻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과연 내가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일인지.
난 정말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많이 많이 많이 지친다. 벗어날 수 없는 구석에 몰아세워진 채 사정없이 패는 걸 맨몸으로 맞으면서 나의 최후를 바라는 누군가의 시선을 견디는 기분이다.
피해자가 멈춰달라고 하면 그만하면 안 되는 것인가? 뭐가 그리 싫어서 소음을 내는지 모르겠다. 지금 나는 정말 피곤하다. 요새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어깨 부근이 너무 아프다. 나는 내일 일찍 일어날 예정인데 이대로 가다가는 6시간도 못 잘 것 같다. 마치 달리기를 하고 온 사람처럼 심장이 아직도 빠르게 뛴다.
글을 쓰느라 벌써 30분이 훌쩍 넘었다. 자고 싶다. 그리고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