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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Nov 14. 2020

엘리베이터 타는 게 두렵다

누군가의 지혜가 나에게 닿기를. 마법처럼 좋아지기를.


오늘 새벽에 2번 일어났다. 처음 눈을 뜬 시각은 새벽 1시 37분. 새벽에도 깜깜하길래 5시나 6시쯤 된 줄 알았다. 위에서 마늘을 빻는지, 줄넘기를 하는지, 운동을 하는지 둔탁하게 쿵- 쿵- 소리가 났다.


새벽 3시 30분에 갑자기 눈이 떠졌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이때는 고요했음에도 불안했다. 이유 없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만나지 않을 때는 한 번도 안 보이더니 약 3개월 간격으로 엘리베이터를 통해 윗집에 사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만났다.


층간소음 얘기를 한다 - 보복 소음을 낸다.

얘기를 하지 않는다 - 변함없거나 심하게 낸다.


윗집은 이 두 가지를 몇 년 동안 반복했다.


이 선택지 중에서 난 이번에 후자를 택했다. 왜냐하면 그냥 소음도 견디기 어려운데 보복 소음은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원래 애들 뛰는 소리만 한가득이었다가 물건 집어던지는 소리, 뛰는 소리, 가구 끄는 소리, 바퀴 구르는 소리, 발망치 소리 등이 추가되었다. 예민하네~ 하면서 다음 날 새벽까지 뛰는 소리를 견뎌야 했고 갑자기 대청소를 시작했다는 말을 들으며 미친듯한 소음을 들어야 했다.


나는 여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도 두 분 중에 한 분은 층간소음에 대해 아래층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두 케이스 전부 나의 오판이었다. 뭐 무릎만 안 꿇었다 뿐이지 저자세로 나가니 바보로 보였나 보다. 소음은 더 심해졌으며 엊그제는 밤 11시까지 뛰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야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갔으나 변하는 게 없다. 그렇다면 이제는 말을 해야 한다.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예민해서 그래요, 이 소리와 함께 얼토당토않는 변명을 들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찔하다. 지칠 때도 미쳐버린 나는 전투력 0. 이대로 가다가는 그 앞에서 실신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고 불안하다. 밖에서도 집에 들어가 마주칠 상상을 하며(안 하고 싶어도 요즘 자주 봐서 그런지,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이런 생각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머리도 너무너무 아프다. 커다란 손으로 뇌를 쥐었다 폈다 하는 기분이다.


뭐라고 얘기해야 하지? 말은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말하지? 고통을 뭐라 전달하지? 쪽지도 소용없었는데. 읽어보셨냐고 물어나 볼까. 안 봤다고 거짓말하면 어떻게 하지. 애들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하면 그때는?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또 한다면 반응은 어떻게 하지? 


차리리 마주치지 않았으면, 그냥 어떤 기적이 일어나 윗집이 이사 가거나 우리 집이 이사 가거나 사람을 괴롭히는 이 소음이 멈췄으면 이런 생각도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런 생각이 들면 앉아있다가도 100m 전력질주를 한 것처럼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호흡이 가빠졌다. 이렇게 미쳐가는 건가 싶을 정도로 며칠 사이에 눈물이 왈칵 솟아오르기도 했다. 진짜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완전히 갈기갈기 찢겼다. 층간소음 때문에 우리 가족이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고 있으려니 밖에 나가 있을 동안에도 마음이 너무 힘들다.





밖으로 나가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문을 빼꼼 열고 층수를 확인한다. 위층 복도에 불이 켜져 있는지도 확인한다.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나는 겁쟁이인가? 이런 내가 싫다. 이렇게 또 내 탓을 하게 된다. 이게 뭐라고!


집으로 들어오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제발 아무도 없어라, 기도하며 들어간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만나서 차라리 얘기를 하자. 아예 평생 우연히라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두 생각이 충돌한다. 보복 소음만 아니었다면, 말하자!로 당연히 마음이 기울었겠으나 그러지 못해 더 고통스럽다.


이 괴로움에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나는 도대체 뭘 선택해야 하는가. 누군가의 지혜가 나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우리 가족이 마주한 이 현실이 마법처럼 좋아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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