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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Apr 11. 2021

일상을 다 망친 것도 아닌데 과장하지 마세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일상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 당장이라도 찾아오길

일상을 다 망친 것도 아닌데 과장하지 마세요.


위층에게 들은 말이다. 내가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정중하게 대하지 않았다면,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이었다면 달랐을까. 이후 아무리 애써도 아래층이 계속 아래층인 이상 어찌할 수 없구나, 하는 무력감이 찾아왔다. 인생의 자율성을 박탈당한 채 타인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느낌 때문에 몸과 마음이 시리다.


집에서 하고 싶은 소소한 소망을 나열해보자면 실컷 늦게까지 자는 것, 시간에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머무르는 것, 가족들과 함께 식사 시간을 갖는 것, 평범하고 평온하게 뒹굴거리는 것 등이 떠오른다. 집은 거의 잠만 자는 공간이 돼버렸고 생활의 균형이 많이 무너졌다. 아파도 집에서 쉬는 게 최선이라는 처방을 받을까 봐 병원에 가기도 꺼려진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괴리감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더 힘들 것 같아 쓰러지지 않으면 더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참게 된다. 전후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모욕적인 언사도 잊히지 않아 마음에 있는 걸 죄다 끄집어내서 털어버리고 싶지만 그럴만한 충분한 시간도, 에너지도 부족하다.


집에서는 소음이 들리면 들리는 대로 미친 듯이 불안하고 심장이 빨리 뛰고 당장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고(실제로 살려고 벗어나게 된다.), 들리지 않으면 언제 또 소음이 시작될까 너무 불안하고 심장이 빨리 뛰고 두렵다. 집이 아닌 공간에서도 똑같이 느껴진다. 여기서 오는 무력감이 나를 슬프게 한다. 오랜 시간 고통받아서 그런지 자극이 분별되지 않고 내 삶을 갉아먹는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고통은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좀비처럼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그래도, 그나마,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떠한 점은 다행이라고 거듭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지만 매일 눈을 뜰 때마다 온몸을 짓누르는 무력감에 지친다.


글을 쓰면서 문득, 어떤 낭만에 기댔던 나를 발견했다. 이 글이 더 나은 내일로 나와 우리 가족을 이끌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마법처럼 글을 끝맺음과 동시에 소음이 떠나가지 않을까, 하는 낭만. 어처구니없겠지만 뭐라도 믿고 싶고 붙잡고 싶은 마음으로.


쫓기듯 도망쳐 나오면서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오늘을 살아가야 하기에 실망하면서도 계속 기대하게 된다. 평온한 일상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 당장이라도 찾아오기를 말이다.


일상을 검색하면 이런 뜻이 나온다.


일상(日常):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생활을 원한 적이 없다. 그 누구도 이런 일상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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